[서병기 연예쉼터] 설민석 ‘방송 하차 선언’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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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연예쉼터] 설민석 ‘방송 하차 선언’이 의미하는 것

    • 입력 2020.12.30 10:37
    • 기자명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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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역사강사 설민석이 지난 29일 자신의 SNS에 “출연 중인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겠습니다”고 입장을 밝혔다. 수능 인기 역사 강사에서 요즘은 TV 지식예능에서 잘나가고 있던 그가 왜 갑자기 이런 선택을 하게 됐을까.

    역사를 강의하면서 보여준 오류 때문이다. 설민석은 그동안 잘못된 팩트와 해석을 한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자신이 진행하는 tvN 새 프로그램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2회만인 클레오파트라 편이 문제가 됐다. 자문에 참가한 학자에 의해 오류 투성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역사에서 사실 관계가 틀린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결국 설민석은 지난 2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이번 일로 불편해하셨던 여러분들, 그리고 걱정해주셨던 많은 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제작진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내 이름을 건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모든 잘못은 나한테 있다고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석사학위논문이 한 매체에 의해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디스패치’는 지난 29일 설민석의 석사 논문을 입수해 ‘카피킬러’에 의뢰한 결과 표절률은 52%였으며 일부 문장은 ‘복붙’했고 일부 단락은 ‘짜깁기’를 했다고 보도했다.
       
    설민석은 이 보도가 나간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재빨리 석사 논문 표절 의혹을 인정하고 프로그램 하차 의사를 전했다.

    “금일 보도된 석사 논문 표절 사태로 많은 분에게 불편과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저는 2010년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과 석사 논문으로 제출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서술에 나타난 이념 논쟁연구’를 작성함에 있어 연구를 게을리하고 다른 논문들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인용과 각주 표기를 소홀히 했음을 인정합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내 과오입니다. 교육자로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안일한 태도로 임한 점,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제 강의와 방송을 믿고 들어주신 모든 분들, 학계에서 열심히 연구 중인 학자, 교육자분들께 누를 끼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든 일에 더 신중히 임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게 보내주셨던 과분한 기대와 신뢰에 미치지 못해 참담한 심정입니다. 저는 책임을 통감하며 앞으로 출연 중인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겠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더 배우고 공부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공식입장을 전했다.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세는 좋지만 개운치가 않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시청자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사람이 돌연 하차하는 모양새가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설민석 외에도 이런 사례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방송 시스템 때문이다. ‘선을 넘는 녀석들’ ‘책을 읽어드립니다’ 등 소위 지식을 예능화하는 ‘교양 예능’ 프로그램들은 설민석 같은 인기 강사만 섭외한다면 인기가 높다.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만 해도 시청률이 5,2%(1회)-5.9%(2회)-5.5%(3회)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 부분에서 제작진(PD)과 지식소매상 사이의 공모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양측은 이해관계가 정확하게 일치한다. PD는 강사를 띄워 시청률을 높이고 강사는 그 유명세를 바탕으로 더 많은 방송에 출연할 수 있다. 제작진에게는 클레오파트라편의 오류를 지적한 곽민수 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의 자문보다는 설민석이 훨씬 더 중요하다. 

    예능 PD들은 기자에게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섭외의 어려움이 있다. 전문성이 있으면 TV를 모르고 TV를 알면 전문성이 없다.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고.

    여기서 제작진 사이에 일종의 타협이 발생한다. 전문성도 있고 TV의 문법(흥미)도 알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해당 분야를 흥미있게 말해줄 사람이 선택된다.

    역사를 콘텐츠로 하는 지식예능이라 해도 역사적 사실은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역사적 사실관계가 확증되지 않고 논란이나 논쟁중에 있다면 그것까지도 함께 말해줘야 한다. 전국민이 보는 미디어를 통한 역사 강의는 특히 그렇다. 설민석은 “이성계는 귀화한 여진인이다”라고 말하는 등 이전에도 역사 강의에서 오류가 있어왔다. 

    설민석은 자신의 유튜브에서 “재즈가 초심을 잃어 R&B가 탄생했다”며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까지 건드려 음악평론가로부터 “허위사실유포나 마찬가지”라는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번에도 이 프로그램에 자문한 곽민수 소장이 밝혔듯이 지도도 틀리게 그렸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알렉산드로스가 세웠다는 말이나(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 세워졌다는 것이 정설), 클레오파트라 같은 이름이 무슨 성이나 칭호라며 ‘단군’이라는 칭호와 비교한다던가 하는 것들은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그것은 설민석이 너무 방대한 역사를 혼자 강의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통상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전공이 따로 있다. 또 한국사는 선사시대(고고학), 고대사, 중세사, 근현대사 전공자로 나눠지고 동양사도 중국사, 일본사, 서양사는 서양고대사, 중세사, 근세사, 현대사에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사 전공을 따로 두고 있다.

    하지만 설민석은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를 모두 다룬다. 어떨 때는 제법 깊게 전문적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설민석이 하차하지 않고 계속 방송을 했다면 사과 영상에서 밝힌 “제가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서 생긴 부분인 것 같다”는 말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 한 사람이 모든 역사를 꿰뚫는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런 예도 지금은 고인이 된 재야역사저술가 남경태를 제외하면 별로 없었다.

    물론 설민석의 역할과 강점은 분명히 있다. 그는 역사를 흥미있게 가르친다. 전달법이 좋다. 역사를 연기한다고 할 정도다. 그의 역사 관련 방송은 거의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역사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역사에서 교훈을 느끼게 한다면 그런 순기능도 없다.

    하지만 그의 역사 강의 방송은 예능은 아니다. 현대화된 교양물에 가깝다. ‘아니면 말고’식이 되서는 곤란하다. 잘못된 역사지식이 시청자에게 들어가게 해서는 안된다. 

    곽민수 소장은 “역사적 사실과 풍문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 이야기를 할 때 관심을 끌기에 분명히 좋은 전략이지만 하고자 하는 것이 그냥 ‘구라 풀기’가 아니라 ‘역사 이야기’라면 사실과 풍문을 분명하게 구분해 언급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설민석이 좀 더 엄밀하게 사실을 확인해야 하고 고증에 더욱더 충실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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