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의 딴생각] 요령이라는 필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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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창수의 딴생각] 요령이라는 필요악

    • 입력 2020.12.20 00:00
    • 기자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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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창수 소설가
    하창수 소설가

    무턱대고 영어단어를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시험 볼 때 외엔 그다지 효과가 없는 이 방법이 영어공부의 전부인 줄 알던 때였다. 그때는 단어만 많이 외우면 영어가 저절로 될 거라는 믿음을 거부하기가 힘들었다. 영어선생님도 쪽지시험까지 봐가면서 몰아붙였고 지독한 친구들은 사전을 찢어 꼭꼭 씹어 먹기도 했다. 물론 단어를 많이 아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내가 아는 동갑내기 현직 교수 한 분은 학창시절 베스트셀러였던 ‘버케뷰러리 22,000’을 샅샅이 외웠는데 덕분에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본토사람들보다 더 많은 단어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다 보면 우리 뜻에 딱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적절한 뜻을 끝내 찾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가 않다. 최근에 읽은 명지현의 ‘파커’라는 단편은 한 영어번역자가 parker와 rapture의 적절한 우리말을 찾지 못해 빠지게 되는 ‘고뇌’를 흥미롭고도 진지하게 그려낸 소설인데 나 역시 번역을 하면서 비슷한 곤욕을 겪어본 터라 남달리 공감했었다. 가령 언젠가 남북전쟁 무렵을 배경으로 한 미국소설을 번역하면서 negro라는 단어를 별 생각 없이 ‘깜둥이’라고 옮겼었는데 선배소설가 한 분으로부터 “그냥 ‘니그로’라고 옮기는 게 낫지 않았나?”라는 얘기를 듣고 크게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다. 

    영어단어 중에 hitch라는 게, 좀 묘하다. 무전여행을 하면서 남의 차를 얻어 타는 ‘히치하이크’의 그 hitch다. 동사로 “편승하다, 옷을 끌어당기다, 밧줄에 묶다” 등의 뜻을 가진 단어다. 그런데 hitch가 명사형으로 쓰이면 ‘문제’라는 뜻이 생겨난다. 정확히는 “잠깐 동안 진행을 멈추게 하는 약간의 문제나 장애(slight problem or difficulty which causes a short delay)”라는 의미다. 큰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예전에, 그러니까 영어과외 선생 노릇을 하던 대학생 때의 일이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다. 독해문제를 풀다가 “What's the hitch on this contract?”라는 문장이 나왔는데 여드름 송송 난 학생에게 이 문장을 해석해보라고 했더니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내놓은 대답이 기막혔다. “이번 계약에서 생기는 게 좀 있을까요?” ‘얻어탄다’는 hitch의 원래 뜻을 요리조리 굴려서 얻은 답이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아무나 차에다 태워주면 어떤 일이 생길까?”라고 되물었고 그 학생은 곧바로 “문제가 생기죠”라고 대답했고, 나는 “그래, 바로 그거야. hitch랑 problem이랑 비슷한 거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러니까 이 문장은 ‘이번 계약에서 문제가 뭐죠?’ 라는 뜻이지”라고 알려줬다. 그때의 그 학생은 내가 다니던 대학보다 훨씬 좋은 대학에 진학했던 걸로 기억한다. 비록 대학생 과외금지 시절이라 녀석의 부모로부터 상당량의 과외비를 떼어먹히긴 했지만.

    공부를 하는 데는 확실히 요령이 필요하다. 단어를 외울 경우 사전이 가르쳐주는 단어를 무턱대고 외우기보다는 그 단어가 활용되는 방식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인데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요령이다. 인도의 어학자 케브 나이르(Kev Nair)는 특정 단어가 어떤 단어들과 결합하는지를 연구해서 영어문장을 효과적으로 익히게 만드는 ‘요령’을 가르쳐준 영어가 외국어인 나라의 학생들에게는 참 고마운 선생이었다.

    ‘긴요한 골자’란 뜻의 요령(要領)도 참, 묘한 단어다. 사실 요령은 ‘적당히 넘기는 수작이나 잔꾀’라는 부정적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그래서 “요령이 있네, 요령 좀 부려, 요령껏 살아” 등의 말을 들으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형편없이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백 번을 읽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을 고집하면 진척이 더디게 되고 포기에 이를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공부에 있어 요령은 그야말로 필요악과 같은 존재다.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회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요구되는 악”이라는 뜻의 필요악(必要惡) - 한 해를 꼬박 시달려온 ‘코로나’를 종식시키지 못한 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필요악일지라도 이 우울한 시대를 좀 즐겁게 살아갈 ‘요령’이 생겨났으면 싶은, 무턱대고 견디기만 하다가는 어떻게 될 것 같은, 이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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