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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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연탄을 잊지 말자

    • 입력 2020.12.19 00:00
    • 기자명 이세현 전 춘천시경제인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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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현 전 춘천시경제인연합회장
    이세현 전 춘천시경제인연합회장

    경자년 한 해도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저물어 가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로 도심 가로수들도 얼어붙었다. 새벽을 여는 재래시장의 따스한 어묵 국물이 그나마 상인들의 시린 볼을 녹인다. 옛날 이맘때는 연탄이 사랑받던 시기였다. 동네 골목마다 연탄 배달 트럭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1960~80년대 우리나라 대다수 가정의 난방연료는 나무와 연탄이었다. 연탄은 그나마 살림살이가 나은 집의 땔감이었다. 살림살이가 궁한 집은 초겨울이 되면 땔나무 하기에 바빴다. 필자는 학교에 다녀오면 지게 지고 뒷동산에 올라 나무를 해오곤 했다. 학교에 가면 조개탄 난로 위에 도시락이 층을 이뤘다.

    따스하게 데워진 도시락을 열고 김 나는 밥과 김치를 비벼먹던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포장마차 선술집마다 주객들이 연탄난로에 굽는 양미리 냄새가 진동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 시절에는 새마을운동 산림녹화로 땔나무를 못하게 단속했다. 돈이 여유롭지 못하면 연탄을 낱장으로 사다 땔 때도 있었다. 새끼줄에 연탄을 두어 장씩 끼워 팔았다. 가치담배 팔듯이 연탄도 낱장으로 팔던 시절이다. 연탄 한 장이라도 아끼려고 아궁이 공기 구멍을 막아 방바닥 냉기만 간신히 가시게 하고 지냈다. 그렇게 어렵사리 추운 겨울을 견뎌냈다.

    지금은 고맙게도 연탄을 후원받아 어려운 가정에 지원해주는 연탄은행이 있다. 연탄이 지금도 어려운 서민들의 겨울나기를 돕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렵다 보니 후원의 손길도 줄고 있어 안타깝다. 

    연탄은 탄광에서 캐낸 석탄으로 만든다. 그런데 많은 광부들의 애환이 서린 탄광들이 공해의 주범이라는 죄명을 쓰고 하나 둘 폐광되고 있다. 탄광 일로 식솔을 먹여 살리던 광부들은 진폐라는 훈장 아닌 훈장을 가슴에 안은 채 퇴역하고 있다. 탄광지역 주민들의 눈물 어린 삶이 깃든 일터는 탄광 유물들이 전시된 박물관으로 변모해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적지 않은 광부들의 목숨도 잠들고 있는 희생의 현장으로 우리들 마음을 찡한 감동으로 휘감는다.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큰 동력이었던 석탄산업은 이제 토사구팽 처지에 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80년대 호황을 누렸던 석탄 산업 현장에 동양 최대 민영탄광 동원탄좌가 있었다. 23개 광구(3.609헥타, 1100만평)를 소유한 우리나라 대표탄광으로 45년간 사북과 함께 하며 강원도 경제를 이끌었다. 그 동원탄좌도 2004년 10월 폐광됐다. 과거 깊은 지하갱도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청춘을 불사른 광부들의 노고에 찬사의 박수를 보낸다. 그 당시 광부들 채용 과정에는 체력 테스트가 있었다. 오늘날 환경미화원 채용 테스트와 비슷했다. 갱목을 등에 업고 무릎으로 기어서 달리기였다. 남보다 뒤처지면 탈락이었다. 지금은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당시 지원자들에게는 일자리를 얻느냐 못 얻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시험이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공해없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화석연료는 뒤로 떠밀리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광부들의 땀방울과 범벅됐던 검은 탄가루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초석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수많은 세월 속에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광부 여러분들과 그 가족분들께 위로에 말씀을 전하고 싶다. 저물어 가는 경자년은 코로나19 치유의 해넘이가 되고, 다가오는 신축년 새해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희망찬 해돋이로 시작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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