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춘천 민주화운동 지도로 본 자유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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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춘천 민주화운동 지도로 본 자유의 함성
  • 윤왕근 기자
  • 승인 2020.11.23 0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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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원민주재단이 최근 발행한 춘천 민주화운동 지도.
(사)강원민주재단이 최근 발행한 춘천 민주화운동 지도.

흔히 한국의 민주화운동이라고 하면 대중은 1980년 전라남도 광주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4.19혁명이나 6월 항쟁이 가장 번성했던 서울, 그리고 부마민주화운동이 있었던 부산·마산을 민주화의 성지로 생각한다. 강원도는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사료 하나 제대로 찾아볼 수 없는 '변방'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이야기다. 1980년 광주로부터 불어온 폭압정권에 대한 저항의 역사는 춘천에서도 격렬했다. 우리가 아무 생각도 없이 오가던 팔호광장, 강원대 후문, 옛 터미널, 죽림동과 운교동의 성당들이 춘천 민주화 운동의 성지다. 본지는 사단법인 강원민주재단이 올해 최초로 펴낸 '춘천 민주화운동 지도'를 입수, 춘천의 민주화 운동 역사를 소개한다.<편집자 주>

춘천 팔호광장은 인근 후평동 주거단지, 대학가들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명동상권과 더불어 명실상부한 춘천의 최대 밀집상권이었다. 지금은 신흥상권에 밀려 구도심의 쇠퇴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팔호광장이지만 엄혹했던 1980년대 신군부 정권 시절 강원도를 대표하는 '민주화 운동의 성지'였다는 것을 아는 젊은 세대는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춘천 팔호광장 모습.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강원도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다. (사진=박지영 기자)
현재 춘천 팔호광장 모습.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다. (사진=박지영 기자)

◇춘천 민주화운동지도, 그날의 함성 상세히 담아
그 증거는 올해 사단법인 강원민주재단이 발행한 춘천민주화운동지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지도에 나와있는 팔호광장은 1987년 6월 항쟁이 전국적으로 벌어지던 6월19일 강원도 사상 최대 시위 인원인 1만여명이 모여 직선제 개헌과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친 곳이다. 당시 오후 6시쯤 명동에서 시작한 시위는 중앙로, 운교동, 도청 등지에서 산발적으로 이어지다 오후 9시쯤 재집결해 1만여명의 인파로 불어났다.

이날 민주화를 부르짖던 시위대에 의해 도청이 점거되기도 했고 경찰과 시위대가 물리적으로 충돌, 시위대가 경찰의 진압장비를 빼앗아 불태워버리거나 효자동파출소, 운교동파출소, 후평동파출소 등이 파괴되기도 했다.
 

(사진=사단법인 강원민주재단 제공)
(사진=사단법인 강원민주재단 제공)

◇학생운동 1번지 춘천
춘천 민주화운동의 근간은 곧 학생운동이다. 강원대, 한림대 등 강원도 대학1번지였던 춘천에서 학교를 다녔던 1970~80년대 대학생들은 12·12사태(1979년) 이후 등장한 신군부의 폭력적 탄압, 1980년 광주에서 벌어졌던 참상, 1987년 박종철 열사의 죽음 등을 목격하고 거리로 뛰어나와 엄혹한 시대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춘천 민주화운동 지도에도 이 같은 학생운동의 성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강원대 천지관은 총학생회와 신문사, 방송국 등 학생자치활동의 중심지이자 학생운동의 거점이었다. 1985년 학원민주화 운동시 김래용(자원공학과 80학번) 군과 1990년 이미희(과학교육과 89학번) 양이 분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이유로 1980년대 학생운동 첩보를 수집하려는 정보경찰의 주된 활동지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1980~90년대 각종 학내외 집회가 열렸던 도서관 계단과 미래광장, 가두시위 시 최루탄을 쏘며 진압하던 경찰과 보도블럭을 깨부숴 집어던지며 저항하던 학생들이 대치하던 강대 후문 등도 담겨 있다.

또 죽림동 성공회성당 인근에는 흥사단, 기독교인권위원회 등 수많은 민주화운동을 진두지휘하다 옥중 얻은 지병으로 작고한 고(故) 박인기 추모비와 박헌구 추모비, 한림대 출신 노동운동가 권오복 추모비, 1987년 6월 항쟁 당시 학생회장 김요섭 추모비 등을 만날 수 있다. 강원 운동권 학생들의 이념 전파자 노릇을 했던 '춘천서림'은 현재 떡볶이전문점으로 변해 있다.

하광윤 강원민주재단 민주시민교육위원장은 "1987년 봄부터 항쟁의 전운이 감돌다가 6월로 접어들면서 당시 춘천지역 학생운동권을 넘어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일반시민들까지 직선제 개헌과 호헌철폐 구호를 외치는 상황이 전개됐다"며 "이에 경찰의 진압은 더욱 거세져 구타는 물론 최루탄을 시위대에 직접 겨냥해 발사, 파편에 자상을 입은 학생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하 위원장은 "이 같은 진압분위기에 민주화 열망은 더욱 거세져 6월19일 팔호광장에 1만명의 대규모 군중이 집결했고 경찰의 진압에 맞서 도청을 점거하는 등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사진=사단법인 강원민주재단 제공)
(사진=사단법인 강원민주재단 제공)

◇옛 보안사 터 등 서슬퍼런 시절의 기억
현재 근화동 두미르2차 아파트 인근에 있었던 옛 보안사 터는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에게는 끔찍한 기억을 안겨준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980년 5월18일 신군부 보안대가 강원대 학생들과 교수를 불법 연행해 무자비한 고문을 자행하던 곳이다. 또 현 교대부설초 인근에 있는 강원도경 대공분실은 1979년 긴급조치 위반 사건, 1982년 반미시위 등을 벌였던 운동권 학생들이 경찰 조사를 받던 곳이다.
이 대공분실에 다녀오기만 하면 학생들과 민주인사에게는 '빨갱이' 딱지가 붙었다.
 

(사진=사단법인 강원민주재단 제공)
(사진=사단법인 강원민주재단 제공)

지도에는 잔인한 기억 외에도 학생들과 민주인사들의 안식처들도 소개되고 있다. 운교동성당은 1980년대 중반 소양로 성당과 더불어 춘천과 강원도 민주화운동의 큰 버팀목이었다. 1986년에는 '광주민중항쟁 희생자 추모 미사'가 이곳에서 열렸고 1987년 3월 '고 박종철군 추모 및 고문 종식을 위한 기도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교동교회, 성공회성당, 죽림동 성당 등은 엄혹한 시절 시대에 저항했던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던 극소수의 피난처였다.

하광윤 위원장은 "흔히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1980년대 초반 광주나 후반 서울 혹은 그 이전 부산·마산 등 타지역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며 "그러나 강원도의 수부도시인 춘천에도 학생운동권과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폭압정권에 대한 치열한 저항의 역사가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 위원장은 "춘천의 민주화운동 세대들이 점점 나이가 들고, 사료도 부족해 훗날 아이들이 춘천에도 이런 엄혹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모를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지도를 제작했다"며 "올해 지도에 이어 영상자료 제작 등을 통해 현재 도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민주시민교육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강원민주재단은 춘천 민주화운동지도 외에도 향후 원주권 민주화운동지도와 사북 사태 등 치열한 노동운동과 저항의 역사가 서린 태백, 정선 등 탄광지역 민주화운동 지도도 제작할 계획이다.

[윤왕근 기자 wgjh6548@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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