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에 맞는 술맛 따로 있다? 사계절 전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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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에 맞는 술맛 따로 있다? 사계절 전통주
  • 객원기자
  • 승인 2020.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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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별 제철 음식이 있는 것처럼 조상들은 계절에 따라 전통주도 다르게 마셨다. 계절마다 술맛이 다른 걸까? 전통주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가양주는 계절성이 강한 ‘절기주(節期酒)’다. 계절 변화에 따라 명절과 세시풍속이 생겼으며 계절에 맞는 제철 재료를 이용하거나 날씨 변화에 맞춰 술빚기가 발달한 문화가 바탕이 됐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상들이 즐겨 마셨던 전통주들을 살펴보자.

 

면천두견주. (사진=네이버스토어 '두견주')
면천두견주. (사진=네이버스토어 '두견주')

◆ 봄, 진달래 향기가 일품인 두견주와 청명주

화창한 봄날이면 갖은 음식과 가양주를 들고 야외로 나가 꽃과 함께 술과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봄날에는 꽃을 담은 전통주를 마셨는데, 그중에서도 진달래꽃을 넣어 만든 '두견주', 복숭아꽃을 넣은 '도화주', 소나무 새순을 넣은 '송순주' 등이 유명하다.

삼짇날이 되면 광주리를 하나씩 들고 산에 올라 진달래를 땄다. 이렇게 딴 진달래로 화전을 빚고 봄의 절기주인 두견주도 빚었다. 찹쌀로 고두밥을 짓고 진달래꽃잎을 버무려 빚는 진달래술은 그 향기가 일품이라 알려졌다. 두견주는 고려시대부터 전래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알코올 도수가 18도 정도로 센 편이지만, 술맛이 좋아 취하는 것도 못 느끼고 계속 마셨다고 해서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불렸다. 

2018년 4월 당진의 ‘면천두견주’가 남북 정상회담 만찬주로 선정돼 화제가 된 바 있다. 면천두견주는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 제86-2호로도 지정될 만큼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술이다.  

청명, 한식일에는 찹쌀로 청명주를 빚었는데 향기와 맑은 빛깔을 자랑한다. 조선말 농업기술서 '농정회요'에는 "술을 빚을 때 물이 맑고 달아야 하는데, 청명이나 곡우 때 물로 술을 빚으면 맛과 색이 특히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청명주는 한식날 성묘의 제주용으로 사용했다. 

◆ 여름, 백성부터 임금까지 즐긴 창포주

음력 5월 5일 단오에는 임금뿐 아니라 선비, 일반 백성까지 다양한 계층이 즐기던 술이 있다. 바로 창포의 향기가 한창일 때 빚는 술 ‘창포주(菖蒲酒)’로, 창포 뿌리를 썰어 찹쌀과 누룩을 섞어 빚는다. 

창포는 향기가 뛰어나 악병을 쫒을 수 있다고 믿었다. 정신을 맑게 하고 혈액순환을 개선하며 중풍 증상을 완화하고 식욕을 돋우며, 피로회복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더워지는 여름을 대비해 건강을 도모하기에 탁월한 술이다. 창포주는 양기가 강한 낮 12시경에 마셔야 효력이 있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낮부터 마셔 술에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우리 조상들은 음력 6월 보름 유두일에 산속 폭포에서 시원하게 머리를 감고 계곡에서 술을 마시는 '하삭음'(河朔飮)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당시 연꽃으로 술잔을 만들어 마셨다고 전해진다. 이때는 동동주, 막걸리를 대부분 마셨으며 단오날 마시고 남은 창포주를 걸러 만든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다. 더위가 한창인 7월 7일에는 더위를 피해 술을 마시는 ‘칠석음(七夕飮)을 즐겼다. 

 

국화주. (사진=네이버 지식백과)
국화주. (사진=네이버 지식백과)

◆ 가을, 햅쌀로 빚은 신도주와 국화주

추석에는 햅쌀로 빚은 '신도주'(新稻酒)로 제사를 지내고 마셨다. 홍석모가 1849년에 쓴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한가위에 술집에서는 햅쌀로 술을 빚어 팔고 떡집에서는 햅쌀 송편과 무와 호박을 넣은 시루떡을 만들었다고 한다. 추석을 전후로 잘 익은 벼와 수수, 조 등을 한 줌 베어 기둥이나 대문에 묶어 걸어놓고 이웃을 초대해 술을 대접하기도 했다.

또 가을이면 국화주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음력 9월 9일은 중양절이라 부르는데,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간다는 날이기도 하다. 중양절에 서민들은 꽃놀이와 단풍놀이를 즐겼다. 객지에 사는 사람은 높은 곳에 올라가 고향과 가족 생각을 하면서 국화주 한 잔을 마셨다고 한다. ‘동의보감’, ‘임원십육지’, ‘규합총서’ 등 옛 문헌에 국화주 제조 방법이 두루 등장할 정도이니 많은 이가 국화주를 즐긴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청주에 국화를 넣어 직접 술을 빚기도 하고 독성이 있을까 염려해 국화 송이를 주머니에 담아 술 항아리 위쪽에 매달아 향만 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가을에 들국화는 향기가 매우 강한 편으로 술을 빚기 제격이다. 작고 노랗게 핀 들국화는 감미가 있어 감국(甘菊)이라고도 한다. 국화주는 엷은 암갈색 빛깔을 띠며, 그윽한 향기가 나서 지금도 사랑받는 대표적인 절기주다. 또 뼈와 근골을 튼튼히 해주며, 몸이 가벼워지고 말초혈관 확장과 ‘청혈해독(淸血解毒)’ 효능이 있어 먹으면 장수한다는 ‘약용약주류(藥用藥酒類)’에 속한다. 

◆ 겨울, 한 해 건강을 기원하는 도소주와 이명주

겨울철 대표적인 술은 설날에 온 가족이 마시는 '도소주'(屠蘇酒)와 '이명주(耳明酒, 귀밝이술)'가 있다. 도소주는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술이라 믿으며 산초와 방풍, 백출, 길경 등의 약재를 붉은 주머니에 담아 마을 우물에 넣었다가 꺼내어 담근 도소주를 마심으로써 한 해 괴질이나 나쁜 병을 물리치고 건강과 장수를 빌었다.

도소주는 ‘나이가 어린 사람부터 먼저 마시는 술’이라는 특이한 특징을 지닌다. 이는 어릴수록 질병에 잘 걸리고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건강하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배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도소주는 어른들에게 술 마시는 예절을 배우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도소주는 약재를 함께 넣고 끓여 아이도 마실 수 있을 만큼 맛이 순하고 부드럽다.

보름 뒤인 정월대보름은 세시풍속에서 가장 중요한 날로 설만큼 비중이 크다. 오곡밥, 보름나물, 부럼 등 다양한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이 날에만 먹는 특별한 술이 있다. 바로 “한 해 동안 귓병 없이, 귀가 더 밝아지며, 기쁜 소식만 들어라”는 의미를 가진 이명주(耳明酒)다. 이명주는 따뜻하게 데우지 않은 청주를 일컬었는데 ‘귀밝이술’이라는 또 다른 이름처럼 귀와 관련된 소원을 빌며 먹었다. 이명주는 식전에 석 잔을 마시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모두 옛날부터 전해 오는 풍속으로 남녀노소 모두가 마시는 술이었다. 맑은 술일수록 귀가 더 밝아진다는 속설이 있다.

Tip. '머슴의 날'에 머슴은 어떤 술을 마셨을까? 

세시풍속에는 음력 2월 초하루가 '머슴의 날'이었다. 겨우내 쉬었던 머슴들이 다시 농사를 시작하는 날이라 해서 ‘머슴날’이라 불렸다. 이 날에는 주인이 한 해 농사를 짓느라 수고할 머슴들을 위해 잔치를 열고 술과 음식을 장만한다. 장터에 가서 실컷 쓰라며 용돈을 두둑하게 주기도 했는데, 이때 서는 장을 '머슴장'이라 불렀다. 머슴들은 이날 탁주 즉, 막걸리를 마셨다고 한다. 

/김성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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