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한 문이 닫히면 다른 한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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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의 뒤적뒤적] 한 문이 닫히면 다른 한 문이 열린다

    • 입력 2020.10.05 09:39
    • 수정 2020.12.08 11:47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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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거의 모든 병은 스승이 하나뿐인 데서 온다.”

    여기서 병은 육신의 병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스승’ 또한 지식을 전하는 특정인이 될 수도 있지만 종교나 정치적 신념, 출신 학교나 지역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참으로 새겨들을 만한 이 구절을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최성현 글, 불광출판사)에서 만났습니다.

    책은 일본의 선승(禪僧)들의 일화 301건을 중심으로 엮었습니다. 자연농법을 가르치는 ‘지구학교’를 운영하며 여러 권의 책을 짓고, 옮긴 이가 썼습니다. ‘일본’ ‘승려’들 이야기란 점이 혹 거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구원(舊怨)이나 종교를 가리지 않고 지혜를 구한다면 이 책은 꽤 읽을 만합니다. 무엇보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이 종교적 깨달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거울’이 될 만한 일화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지은이의 해설이 더해져 책은 쓸모 있는 ‘인생론’으로 읽힙니다.
     
    앞에 든 구절은 책의 첫 머리에 실린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란 제목의 글에 나옵니다. 스승이 하나뿐이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다는 뜻이지만 이는 자기들 것만이 최고인 줄 안다는 맹신에 대한 따끔한 죽비와 마찬가지입니다. 지은이는 이 글 말미에 “하나만 아는 이는 무지하다”며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종교를 모르는 사람이다”란 종교학의 핵심 명제를 보탭니다. 사랑, 평화, 용서, 자비, 관용으로 살아야 한다는 종교가 서로 싸우는 이유도, 전쟁과 살육의 원인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어지는 ‘평가는 죽은 뒤에’란 글에서는 다이규 소큐(大休宗休)라는 스님의 일화를 소개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악인이기만 한 사람도 없는가 하면 선인이기만 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지은이에 따르면 “어떤 이는 제 똥은 보지 않고 남의 똥 이야기에 바쁘고, 어떤 이는 열심히 자신의 똥을 닦아간다. 그 결과 앞의 사람은 점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뒷사람은 현인이 되어간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모진 현실을 외면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이야기로 들리나요? 그러나 팍팍한 세상, 막막한 현실에 부딪치곤 할 때 잠시 숨을 고르고 돌아가는 여유도 삶의 버팀목이 될 수 있습니다. 

    책 제목이기도 한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란 글을 볼까요. 일본에서는 한국의 원효만큼 유명하다는 잇큐(一休)란 선승이 주인공입니다. 왕실의 서자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출가해서 큰 덕을 쌓았다는 이 스님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제자들이 앞날을 불안해합니다. 그러자 그는 제자들에게 편지 한 통을 주며 “정말 힘들 때 열어봐라. 조금 힘들다고 열어봐서는 안 된다”고 당부합니다. 세월이 흘러 그 사찰에 큰 문제가 생겼으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힘들자 마침내 승려들이 모여 잇큐의 편지를 개봉했습니다. 그 편지에는 뾰족한 수, 만능 해법 대신 딱 한 줄,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든 된다”고 써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지은이는 여기 더해 ‘한 문이 닫히면 다른 한 문이 열린다’는 말이 있다며 “받아야 할 일은 받아야 하고, 치러야 할 일은 치러야 한다. 하지만 그치지 않는 비는 없나니, 마음 고생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라. 오늘을 감사하며 알차게 살라”는 잇큐의 말을 소개합니다.

    마음속에 이런 편지 하나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네 삶이 그래도 살 만하지 싶습니다. 

    책 속 한 구절

    “지혜는 사랑을 근본으로 하는 덕에 미치지 못한다”

    “적적한 산간의 사찰/ 더욱이 뒤를 이을 승려 하나 없네/ 하지만 바람이 절을 쓸고/ 달이 대웅전을 밝히거늘/ 무엇이 걱정”

    “예로부터 ‘(자식은) 어버이는 말대로 안 되고, 어버이 하는 대로 된다’하고 ‘어버이 뒷모습을 보면 자식은 자란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다. 어떻게 살고 있느냐다.)

    “또 한 번/ 실수를 했다/ 실수를 할 때마다/ 눈이 뜨여/ 세상이 조금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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