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추석달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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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추석달을 보며

    • 입력 2020.09.30 00:00
    • 수정 2020.12.10 14:04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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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달을 보며

     

                                 문정희  

    그대 안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보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 봄의 온갖 가시덤불 속에서도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올랐구나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 
     
    참으로 옥양목같이 희고 맑은 
    우리들의 살결로 살아났구나.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오늘은 한가윗날,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 
    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다 
     
    가혹한 짐승의 소리로 
    녹슨 양철처럼 구겨 버린 
    북쪽의 달, 남쪽의 달 
    이제는 제발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 놓고 
    나의 추석 달은 
    백동전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고 싶다

     

    *문정희:1969년『월간문학』 등단 *시집 『남자를 위하여』외 다수*고려대명예교수.현)동국대석좌교수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추석선물 같은 아름다운 시입니다.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그런 ‘한가윗날’이 찾아왔습니다. 그럼에도 올해는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온갖 가시덤불”보다 더 참혹한 코로나 열병으로 우리들은 참 많이 아팠고 참 많이 슬펐습니다. 지금도 그 아픔과 슬픔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우리 어머니의 마음 같은 보름달은 떠오릅니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겠지요! 추석 달, 그 달 속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봅니다.” 정한수 같이 맑은 신神이 빚어 놓으신 추석달입니다. “솔 향내 푸르게 베인” 우리 어머니의 사랑 같은 달입니다.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참으로 옥양목 같이 희고 맑은” 어머니의 둥근 사랑이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은” 추석달입니다. “북쪽의 달, 남쪽의 달/이제는 제발/크고 둥근 달 하나로 띄워 놓고” 온 민족이 한 마음으로 추석 달을 맞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올해는 그런 소망은 더욱 아득해지고, 내 가족 내 부모님 만나는 것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막고 있으니 참 애석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 같은 ‘추석 달’은 어김없이 둥그렇게 떠오를 것입니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나마 신이 빚어놓으신 달에게 서로의 소원을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 이웃에 혹시 부모 없는 아이들, 얼마 전에 어린 두 형제가 라면을 끓이려다가 화재로 인해 아직도 혼수상태에 있는 그런 아이들은 없는지? 혹或, 끼니도 제대로 못 잇는 환과고독(鰥寡孤獨)한 어르신들은 없는지? 둥그런 달처럼 둥그런 마음으로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참 어렵고도 어려운 올 추석이지만 “나의 추석 달은/백동전 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는” 그런 달 하나씩을 가슴속 등불로 달아 올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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