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큰물이 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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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큰물이 나가셨다

    • 입력 2020.09.02 00:01
    • 수정 2020.12.10 14:09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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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물이 나가셨다

                                         

                                              문태준

    큰비 지나간 개천은 가리워진 곳 없어서 마름풀들은 
    얽히었다
    작은 소에서 놀던 물고기들은 소식 없이 흩어졌다
    들길에는 띠풀이 다보록해졌다
    무너진 고랑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맛살에 주름이 들었다
    젖은 집으로 어물어물 돌아가는 저녁 거위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큰물이 나가셨다, 했다

    *문태준:1994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당선*시집「맨발」외 다수. 현: 불교방송PD로 활동.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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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여 일이 넘는 장마가 지나갔다. 그러고 태풍 ‘바비’가 얼마 전 전국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런데 이번 주엔 제주도를 중심으로 바비나 루사보다도 더 강한 마이삭이란 태풍이 또 예고된 상태다. 어디 그뿐인가! 코로나19는 또 다시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왜 이렇게도 시련을 많이 주시는지? 하느님도 참 무심하시다. 옛날 같으면 임금님의 부덕의 소치라고 입을 모을 수도 있겠으나 세계적 추세이니 어느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참 딱한 운명의 시련이다.

     위의 시는 「큰물이 나가셨다」고 천지를 운영하는 정령(精靈)을 공손히 받들어 모시는 어투를 사용하고 있다. 맞다. 우리는 항상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자연은 우리를 지배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큰비 지나간 개천은 가리워진 곳 없어서 마름풀들은 얽히었”듯이 “작은 소에서 놀던 물고기들은 소식 없이 흩어졌”듯이  우리네 인정도 민심도 많이 얽히고 흩어져 있다.

     저마다 다른 소리들을 내고 있다. 다른 소리뿐만 아니라 서로 상대방을 탓하고만 있다.
    위기 앞에서 하나로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서로 정쟁적으로 싸우고 있으니 우리 선량한 백성들은 누구를, 어느 쪽으로 따라가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무너진 밭고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맛살에 주름이 들었”듯이 50여 일 이상 계속된 장마에 피해를 입은 분들의 가슴은 다 멍들고 타들어가고 있단다. 언제쯤이면 그분들의 목탄(木炭)  같이 탄 가슴을 씻어드릴 수 있을까? 어디 그뿐인가! 의료진들은 매일 방호복 속에서 숨이 막힐 지경이란다. 참으로 아득하고 아득하다. “젖은 집으로 어물어물 돌아갈 수 있는 저녁”이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 나라 천지에 살고 있는 큰 정령이 우리를 구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큰물이 나가셨다”고 신을 겸손하게 모시듯이, 그 정령도 우리를 모셔 주었으면 좋겠다. 하늘이여,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는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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