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쓰는 산문] 축하해, 한턱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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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쓰는 산문] 축하해, 한턱 내

    • 입력 2020.08.24 00:01
    • 수정 2020.08.25 13:26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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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향아 시인·수필가
    이향아 시인·수필가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 되었다.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던 우리나라 유학생의 논문이, 그해 졸업생 중 최우수논문으로 평가받았다는 뉴스가 실렸었다. 이 기사는 국내의 여러 일간신문에 크게 보도되었고, 방송국에서도 큰 화제로 취급하였다. 그리고 어떤 TV 프로그램에서는 학생과 함께 부모를 불러서 인터뷰까지 했었다. 

    그 소식은 하버드유학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시청자들까지도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 기뻐하게 하였다. 그것은 주인공 청년이 타국에서 성취한 결과가 특별히 크고 우수하다는 것에 감동했기 때문이고, 그가 한국의 청년이라는 것, 우리도 같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용모, 교양이 넘치고 세련된 매너가 TV 화면을 가득 채웠을 때, 청년에 대한 칭찬의 소리는 다시 한바탕 항간에 화려한 물결을 일으켰다.  
        
    “우리 딸애하고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다는군요.”
    “나도 그 애를 잘 아는데 원래가 공부를 잘하는 애였어요.”

    성공한 그 청년과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딸을 둔 것만도 자랑이 되는 듯 흥분해서 말하는 엄마도 있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다음 우리를 실망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청년에게 관심(?) 이 대단한 사람들이 하버드대학에 직접 조회를 해 보았더니, 신문에 보도된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최우수논문이 아니라 우수논문 정도였다고 하는 말도 들리고 그냥 보통보다는 잘 쓴 논문 정도였다고 하는 말도 들렸다.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문의와 조회가 쇄도했는지 하버드대학 당국에서는 긴장하기에 이르렀고, 나중에는 불쾌하게 여기면서 조회에 응하는 것조차 꺼린다는 말까지도 들렸다. 

    우리는 위의 사실을 바라보면서 몇 가지의 어두운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과장된 보도에 관한 것이다.

    누가 좀 어떠네 하면 확실하게 알아보지도 않고 얼싸절싸 떠드는 것 말이다. 그냥 떠드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살을 붙이고 날개를 달아서 본 모양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식을 하는 것이다. 과장으로 내용을 크게 보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과장은 오히려 있는 진실까지도 훼손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 반장을 한 번만 했어도, “우리 애는 늘 반장을 했어요.”라고 자기 아이를 부풀려서 말하는 부모들이 많다.

    늘 반장을 했으면 어떻고 한 번도 안 했으면 어떤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중요한 것 아닌가? 위에서 청년에 대한 일을 과장한 것이 부모인지, 아니면 보도자들인지, 모르겠으나 그 어느 편이 되었든 당사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이다. 

    둘째는 주변 사람들의 호기심을 능가하는 질투심이다. 

    남이 잘했다고 하면 축하할 일이요, 축하를 못 하겠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칠 일이다. 남이 크게 잘 되었다는데 국제전화까지 해서 사실 여부를 조회할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아무리 선의로 해석을 해도 조회까지 한 심사는 순수한 것이라고 볼 수가 없다. 

    정말일까? 거짓말일 거야. 내가 한 번 직접 알아볼까? 하는 마음에서 전화까지 했을 것이다. 그의 논문이 설령 최우수논문이 아니고 우수논문, 아니 우수논문이 아니라, 가작이나 장려상에 해당하는 논문에 그쳤다고 하여도 청년은 뛰어난 수재임에 틀림이 없다. 그는 성실히 공부하여 부모의 이름을 떳떳하게 드높였고, 조국의 명예도 이국의 하늘에 높이 휘날리게 한 장한 청년이다. 

    하버드대학이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인가? 거기에 유학하여 공부하는 것만도 장한 일인데 좋은 논문을 써서 칭찬을 받았으니 자랑스러운 일이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훌륭한 수재의 가슴에 만회할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이다. 애초부터 과장은 필요 없었다. 있는 그대로도 충분했다. 과장을 했기 때문에 모자란 것만도 못하게 되었다.

    있는 대로만 말하기에도 우리 앞에 할당된 여유가 부족하다. 타인의 성취를 부러움 없이 순수하게 기뻐하는 마음, 거기에는 아무런 조건이 따르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곧잘, “축하해. 한턱 내!”라고 한다. 

    그러나 설령 악의가 없이 한 말이라도 이것은 결코 세련된 축하의 인사가 아니다. 우리는 따뜻한 악수 부드러운 눈길만으로도 가슴에 넘치는 우정과 사랑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웃의 경사를 진심으로 축하할 수 없는 세상이라면, 그것은 메마른 세상이며 무서운 세상이며 슬픈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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