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도연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지금은 사라진 어떤 소에 대한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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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도연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지금은 사라진 어떤 소에 대한 이야기 2

    • 입력 2020.08.12 00:01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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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연 소설가
    김도연 소설가

    집에서 소를 기르면 감당해야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농가에서 기르는 소는 거의 일소(일하는 소)다. 젖소나 육우는 드물었다. 그런 소들은 목장에서 대규모로 사육했는데 어린 시절 막 생겨난 대관령의 목장들에서나 볼 수 있었다. 농가에서 소를 키우는 일차 목적은 일 잘하는 소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 목적에서 탈락하면 거의 대부분 소장수에게 팔아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식욕을 자랑하는 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수소, 수송아지가 마구를 떠나고 그 다음엔 암송아지, 암소였다. 소 값은 다른 가축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기에 소를 판 돈은 집안의 목돈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하여튼 농가의 마구간에 마지막으로 남는 소는 언제나 일하는 암소였다.

    마구간의 암소도 생명을 지닌 존재인지라 언제까지 살 수는 없었다. 또 나이 들면 소 역시 힘이 떨어지기에 더 이상 밭을 갈 수 없어지면 새 일소를 찾아야만 하는 게 마구간의 현실이었다. 자, 그럼 시골 농가의 마구간에서 어떤 흥미진진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소똥 냄새가 진동하겠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자. 소들의 일생에 대한 이야긴데 지금은 이 땅의 농가에서 거의 대부분 사라진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일소인 암소는 농사철에 쟁기를 끌고 밭을 가는 게 가장 큰 일이지만 그게 끝나면 사실 거의 놀고먹는다고 볼 수 있다. 일 년 내내 밭을 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암소에게도 발정기가 찾아온다. 아버지와 엄마는 매일 소에게 여물을 주며 상태를 살피기 때문에 소가 말을 하지 않아도 하루 이틀 지속되는 소의 발정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지금은 인공수정사가 있어 쉽게 수정을 시키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수소를 직접 집으로 끌고 와야만 했다. 교미를 시키기 위한 수소는 마을에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다른 마을에 가서 데려와야만 했다. 그런데 보통 수소는 성질이 사나워서 부리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교미를 시키는 건 더 힘든 일이었다. 암소가 수소의 거친 행동을 거부할 수도 있기에 아버지는 만일을 대비해 소를 키우는 동네 남자들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그 일도 품앗이였다. 소마장에서 벌어지는 덩치 큰 소들의 교미를 훔쳐보거나 지켜보는 건 조마조마한 일이었다. 더불어 묘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침을 흘리는 수소는 암소의 등에 올라타려 하고, 암소는 자꾸만 돌아서고, 어른들은 고삐를 잡고 그 둘레를 빙빙 돌고…… 우리 집 암소가 왠지 불쌍해 보였지만 말릴 수도 없었다. 그것은 어른들의 일이었고 그렇게 교미가 끝나고 임신을 한 뒤 송아지가 태어나면 큰 재산이 되었으므로.

    암소는 임신한 뒤 보통 270~290일이 지나면 송아지를 낳았다.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역시 부모님은 소를 유심히 살폈다. 소는 혼자서도 새끼를 낳지만 혹시 모를 만약의 일을 대비해 늘 지켜봐야만 했다. 어느 여름날 부모님은 다른 집에 일을 가고 나 홀로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소마장에 나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소가 새끼를 낳고 있었다. 내 가슴은 쿵덕쿵덕 뛰고 있었지만 정작 무엇을 해야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소는 서서 새끼를 낳았다. 아무렇지 않게 탯줄을 먹어치웠다. 혀로 송아지를 핥아주었다. 소나기에 쫄딱 젖은 듯한 송아지는 소마장에 앉아 눈만 말똥거렸고. 그동안 갓 태어난 송아지를 본 적은 많았지만 송아지가 태어나는 장면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모습은 한 마디로 경이로웠다. 어미 소가 대견해 마구 옆에 세워놓은 지게의 바소구리에서 꼴을 한 아름 안아서 가져왔는데 오, 송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비틀거리다가 주저앉고,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나 몇 걸음 걷다가 주저앉고,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이윽고 한 걸음 두 걸음 걷는 송아지는 두 번째 경이로움이었다. 어미 소와 송아지 모두 한없이 위대해 보였다. 

    어린 송아지의 재롱을 보는 일은 무척 즐거웠다. 호기심이 많은 송아지는 수시로 마구에서 나와 마당을 기웃거렸다. 닭장을 살피고 개에게 다가가기도 하며 내가 꼴을 내밀어 유혹하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가 급하게 도망쳤다. 어미 소는 송아지가 오래 눈에 보이지 않으면 길게 울며 송아지를 찾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송아지는 마당 탐험을 멈추지 않았다. 암탉들이 꼬꼬댁거리며 도망가고 수탉은 못마땅하다는 듯 송아지를 노려보았다. 든내놓고(풀어놓고) 키우는 강아지라도 있으면 둘의 장난질이 한층 더 재밌어졌다. 짖고, 뛰고, 도망치고, 되돌아서고……

    하지만 송아지의 봄날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조금 더 크면 부리기 쉽도록 머리와 목에 굴레를 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뿐인가. 부모님은 송아지를 계속 길러야 될지 팔아야 될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수송아지는 거의 팔게 되지만 암송아지는 셈법이 조금 복잡해진다. 어미 소의 나이를 헤아려 일소를 키울 것인지, 아니면 지금 송아지 값이 좋으니 팔고 다음 송아지를 기약할 것인지……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가축들 중 아마 소가 가장 새끼를 아끼는 동물일 것이다. 송아지를 팔면 어미 소는 거의 사흘을 꼬박 채워서 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서. 먹이를 줄 때만 겨우 울음을 멈췄다가 다 먹으면 다시 운다. 너무 울어 목이 쉴 때까지. 그 슬픈 울음을 듣고 있노라면 나 역시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였다. 한밤중에 마구로 나가 울고 있는 소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이제 그만 울라고 타일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미 소는 밤을 새워 울겠다는 눈빛이었다. 

    어미 곁을 떠나는 아픔을 겪지 않은 송아지도 때가 되면 코를 뚫어야 한다. 목장에서 자라지 않는 소의 운명 중 하나가 코뚜레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랄수록 소의 힘이 점점 세지기에 굴레에 맨 고삐만으로는 부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코를 뚫는 일도 혼자서는 하지 못하고 역시 마을의 어른들 서넛이 달라붙어야 가능했다. 마구의 구성 앞에서 소의 목과 네 다리를 밧줄로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미리 준비한 코뚜레의 날카로운 한쪽으로 코청을 뚫어야만 했으니…… 소의 두 콧구멍 사이를 막고 있는 코청은 신체 부위 중 가장 약하고 아픔에 민감해서 거기에 구멍을 뚫고 코뚜레를 끼우는 것이었다. 농가에서 자라는 소들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마지막 관문이 바로 코 뚫기였다. 인간이 장식을 위해 코를 뚫는다면 소는 인간의 일을 하기 위해 코를 뚫리고 코뚜레를 걸어야 한다. 그게 태어나 몇 년 살지도 못하고 도축장에서 소고기로 변하는 소보다 행복한 일생일까……

    겨울이 되면 아버지는 소를 눈 덮인 밭으로 데려가 밭가는 법을 가르쳤다. 소의 목에 멍에를 걸고 쟁기를 연결해 집 옆 눈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소 모는 소리를 외쳤다. 이랴! 워! 올라서! 내려서! 워워! 이놈의 소새끼! 처음 쟁기질을 해보는 소는 당연히 서툴게 눈밭을 삐뚤빼뚤 걸어갔다. 쌓인 눈을 가는 것이니 힘은 들지 않겠지만 그래도 재미있지는 않을 것이다. 마구로 돌아가 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코뚜레와 굴레에 연결된 고삐가 아버지의 손에 쥐어져 있으니. 소와 아버지는 그렇게 한 몸이 되어 백지 같은 밭 위에다 길고 긴 이야기를 써나갔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이야기가 궁금해 눈밭으로 들어가 소와 아버지가 걸어간 길을 가만히 따라가 보았다. 

    이제 우리 집 마구에는 소가 살지 않는다. 구성에는 잡동사니만 가득하다. 폭설이 내리는 대관령의 겨울밤 나는 이제 더 이상 소의 깊고 그윽한 숨소리를 들을 수 없다. 가끔 고향집에 가면 마구의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지금까지 이 마구에서 몇 마리의 소가 살다가 떠나갔을까. 당연히 꽤 많은 소들이 살았겠지만 나는 왠지 그 소들이 모두 한 마리의 소로 느껴진다. 그 소의 크고 맑은 눈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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