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금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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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금을 긋는다

    • 입력 2020.08.11 00:01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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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을 긋는다

                         

                                    이향아

     

    '반듯하게 긋는구나'
    이제는 칭찬 할 사람도 없는데
    돋보기를 쓰고서 금을 긋는다
    다시는 돌아설 수도 없고
    뒤집을 수도 없게
    못을 박은 시늉이다

    진종일 쫓아다니던 그림자도 잦아들고
    피어오르던 안개도 차분한 저녁
    나만 외롭게 두드러져서
    확실한 대답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금을 긋는 일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럭저럭 참을 걸
    발 딛을 언덕 하나 남아 있지 않은데
    눈을 감고 부엉이처럼 얼버무릴 걸
    죽고 사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삐뚤삐뚤 기를 쓰고
    금을 긋는다 

    *이향아:1963년『현대문학』등단.*시집「어머니 큰산」외. 호남대학교명예교수.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
     자성의 목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지금 우리는, 아니 나는 얼마나 많은 금을 긋고 있는가? 나 자신에게, 혹은 이웃에게, 가족에게, 금 긋기가 심해져 “다시 돌아설 수도 없고/뒤집을 수도 없게/못을 박은” 세상이다. 법 제도까지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져 붉은 줄, 파란 줄로 못을 박는다. “못을 박은 시늉”이라면 차라리 좋겠다. “그럭저럭 참을”수 있는 아량과 헤아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발 딛을 언덕 하나 남아 있지 않은데” 그 언덕을 위해 그냥 그렇게 “눈을 감고 부엉이처럼 얼버무릴” 수 있는 금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곳곳에 금이 너무 많다. 그것도 ‘붉은 금’이다. 그 금(線)으로 하여 너와 나 사이에 금이 가고, 가족끼리도 금이 가고 이웃 사이에도 금이 가고 사회 곳곳에서 금이 가고 틈이 생겨 무너지고 깨지는 소리 요란하다.
    그 금, 너무 굵고 높은 장벽이 되어서 허물 수도 없다. 그것은 높은 사람들이 만든 금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마음의 금이 가지 않는다면 이보다 높은 성벽도 우리는 허물어 낼 수가 있다. 그런데 마음의 벽, 마음의 금이 문제다.

     화자persona의 말 대로 날마다 “죽고 사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삐뚤삐뚤 기를 쓰고/금을 긋는다” “삐뚤삐뚤 그은 금”은 제대로 된 금이 아니고 제대로 된 법이 아니다. 언제가 되어야 우리는 서로 바르고 반듯하게 금을 그은 선(線) 안에서 한 마음으로, 한 울타리 안에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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