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의 딴생각] 악플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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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수의 딴생각] 악플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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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0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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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수 소설가
하창수 소설가

미국에 사는 흑인들이 즐기는 게임 중에 ‘다즌스(Dozens)’라는 게 있다. 사실 이 게임을 ‘즐긴다’고 표현하는 건 옳지 않다. 그들에겐 생존을 위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흑인들은 어릴 때부터 다즌스 게임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들을 공격하게 될 미래의 세상에 대한 면역력을 기른다. 두 사람이 마주 선 채로 대화를 주고받는 매우 단순한 형식이지만 중요한 건 대화의 내용이다. 오직 상대를 모욕하는 말로만 채워진다는 것 - 이것이 게임의 법칙이다. 모욕의 대상은 당연히 상대이고, 상대의 가족, 특히 상대의 어머니와 관련된 것이 가장 저질스럽고, 추악하며, 입에 올리는 자신조차 모욕이 느껴질 만큼 더럽고 야비하다. 화면에다 표시를 한다면 온통 X로 가득할 게 뻔한. 어쨌든, 더 이상 ‘모욕적 언사’를 이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패자가 되는 게임 - 갱스터랩으로 ‘승화’된 이 서늘한 생존전략은 지금도 여전히 할렘의 골목들에서 진행되고 있다. 

말〔言〕은 인간을 여타의 동물들과 구별하게 만드는 특성 중의 하나다. 이 특성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별명이 호모로퀜스(Homo loquens)다. 이것 말고도 인류에겐 그럴 듯한 별명들이 여러 개 붙어 있다. 직립보행의 특성을 빗댄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 이성적 사고를 가진 존재라는 뜻의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 놀이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루덴스(Homo ludens), 뭔가를 뚝딱거려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졌다고 붙여진 호모파베르(Homo faber), 이즈음 가장 핫한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가 명명한 ‘신이 되고 싶은 인간’ 호모데우스(Homo deus)까지. 그러나 ‘언어의 인간’은 많이 특별하다. 가령, 인간에게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호모에렉투스는 한낱 걸어 다닐 수 있는 짐승일 뿐이다. 말을 할 수 없다면 인류가 이성적 사고를 가졌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 말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자신이 하는 놀이의 즐거움을, 자신이 만들어내는 도구의 기막힌 가치를 설명할 재간이 없다. 그리고 신이 되기 위해 인간이 축적해온 ‘데이터’는 결국 말로 이루어져 있다. 말은 그저 인간이 가진 수많은 특성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조건이다.

그러나 소중한 것들이 대개 그렇듯, 말 또한 그다지 소중하게 여겨져 왔다고 보기 힘들다. 넘치도록 흔한 물이나 공기처럼, 혹은 한번 쓰고 버리면 그만인 일회용품처럼, 말은 남용되고 오용되어왔다. 남용과 오용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이다. 말의 남용은 물을 마구 써버려 물 부족에 시달리듯 쓸 만한 말의 기근에 시달리게 만들고, 잘못 쓰인 말은 초미세먼지로 뒤덮인 공기가 우리의 허파를 공격하듯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져 우리의 가슴을 도려낸다. 별생각 없이 쓰고 버린 일회용 쓰레기들이 산을 이루듯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의 쓰레기들은 악취를 풍기며 무시로 날아든다. 사랑과 신뢰, 온화와 친절이 사라져버린 죽은 언어가 난무하는 ‘온라인’은 다즌스의 모욕적인 욕설로 넘쳐나는 할렘의 후미진 뒷골목과 다를 게 없다. 거기에 넘쳐나는 ‘말’은 바닥을 드러낸 물, 더럽혀진 공기, 썩은내를 풍기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말이 품고 있는 치명적인 독성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기 힘들다. 아주 어릴 때부터 다즌스 게임으로 단련된 사람만이 겨우 버텨낼 수 있는 호모로퀜스의 ‘말’은 더 이상 인간을 짐승과 구별해주는 특성이 아니다. 구별은커녕, 차라리 그걸 잃는 것이, 그래서 말을 가지지 않은 채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짐승’이 훨씬 떳떳하고 나은 존재임을 증명하는 특성이다. 더럽고 야비한 욕설을 주고받으며 면역력을 키워야만 생존 가능한 호모로퀜스의 뒷골목과 익명이라는 검고 두꺼운 담요를 뒤집어쓴 채 악플이나 지껄이는 비겁한 ‘언어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온라인 - 지금·이곳에 기록되는 인류학은 인류의 서글픈 자서전이다. “칼로 입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영원히 치유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뒤집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자서전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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