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도연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지금은 사라진 어떤 소에 대한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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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도연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지금은 사라진 어떤 소에 대한 이야기 1

    • 입력 2020.08.05 00:01
    • 기자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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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연 소설가
    김도연 소설가

    소가 있었다.

    소가 사는 곳을 우리는 마구, 마구간이라 불렀다. 아마 옛날에는 말이나 나귀도 함께 살았던 모양이다. 외양간이라고도 한다. 마구는 보통 집과 붙어 있거나 정지와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 소의 방인 마구에는 무엇이 있고 어떤 형태를 하고 있을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여물이나 꼴을 넣어주는, 소의 밥그릇인 구성(구유)이다. 우리 집 구성은 아름드리 통나무의 안쪽을 파서 만들었는데 마구의 한쪽 면을 다 차지할 정도로 길고 컸다. 덩치 큰 소 네 마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사람의 밥그릇과 비교하자면 아마 백여 명도 넘는 양의 밥과 국, 반찬을 담을 수 있을 정도였다. 소가 워낙 대식가이기 때문이었다. 간혹 어떤 소는 밥을 빨리 주지 않는다고 구성에 앞다리를 올려놓고 울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와 아버지는 싸리 빗자루를 들고 달려가 소머리를 후려치곤 했다. 소의 덩치나 무게 때문에 발굽에 구성이 망가지면 큰일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고삐를 바치(바짝) 당겨 매어놓는데 어린 우리들은 그게 안쓰러워 길게 매었다가 벌어지는 일이었다. 구성에 금이 가거나 깨어지면 당연히 물이 새기에 어쩔 수 없이 다음부턴 바치 묶어야만 했다. 그 큰 소 밥그릇을 다시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사실 소의 방인 마구에는 구성 외에는 눈에 띄는 특별한 가구가 없다. 마구는 보통 문이 두 개다. 소들이 들어가고 나가는 문, 그리고 먹을 것을 주기 위한 구성과 연결된 문. 그런데 소는 서서 여물을 먹기 때문에 구성이 문의 중간 조금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그 문으론 사람이나 소가 드나들 수가 없다. 덩치가 작은 개나 닭, 쥐야 가능하지만. 구성이 있는 문 상단에는 고삐를 묶을 수 있게 팔뚝 굵기의 장대를 가로질러 놓았다. 소의 코뚜레와 연결된 고삐를 구성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빼서 장대에 묶어야만 저지레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대관령의 추운 겨울밤이 찾아오면 두 개의 나무문을 모두 닫아준다. 마구에는 전등조차 없어 캄캄한 밤이면 소는 구성 앞에 앉아 저녁에 먹은 여물을 되새기다가 잠이 들 것이다.
     
    마구의 벽에는 사람이 사는 방처럼 벽지를 바르지는 않지만 대신 거친 송판을 붙이기도 한다. 소의 힘으로부터 벽을 보호하자는 뜻도 있지만 가려울 땐 옆구리를 긁을 수도 있고 겨울엔 보온의 역할도 한다. 마구 바닥엔 사람의 방처럼 장판을 까는 게 아니라 풀가리에서 풀이나 솔가리(마른 솔잎)를 몇 삼태기 담아와 깔아준다. 소는 그 풀을 깔고 앉아 잠을 자고, 네 개의 발로 풀을 밟고, 풀 위에 똥과 오줌을 눈다. 그러면 마구 바닥의 풀은 점점 두껍고 딱딱해지는데 시기가 되면 청소를 해줘야 한다. 그걸 마구 친다고 말하는데 힘이 어마어마하게 들뿐더러 온 집안에 소똥냄새가 진동하는 날이다. 소의 배설물과 뒤섞인 풀은 거름테미(두엄자리)로 옮겨졌다가 봄이 되면 밭으로 나갔다. 그러고 보니 스스로 제 방 청소를 하는 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긴 소만 그렇겠는가. 개, 닭, 돼지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필요에 의해 가축으로 길들였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끔 그 일이 내게로 돌아왔을 땐 여간 힘들고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때마다 나는 떡이 된 소똥을 치며 이렇게 투덜거렸다.

    “참 많이 먹고 많이 쌌다!”

    겨울엔 추위를 피해 닭들도 마구에 세 들어 살았다. 마구 뒤편 벽 상단에 장대로 시렁을 설치해 놓으면 밖에서 놀던 닭들은 저녁 모이를 먹은 뒤 날개를 퍼덕여 그곳으로 올라가 잠들었다. 한 번에 올라가지 못하는 닭들은 먼저 소의 등에 올라가 서성이다가 이어서 시렁을 향해 날개를 퍼덕거렸다. 소는 겨울날 마구의 다락방 같은 시렁에서 잠을 청하는 닭들과의 동거를 싫어하지 않았다. 깊고 깊은 겨울밤 오히려 적적하지 않아서 반겼던 것 같다. 닭들이 잠자는 시렁 아래에는 소가 눈 오줌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든 작은 구멍이 있었다. 마구 밖에 만들어놓은 확에는 늘 오줌이 고여 있었는데 오지랑물(쇠지랑물)이라 불렀다. 오지랑물도 거름으로 쓰였으니 소는 참 훌륭한 가축 중의 가축이었다. 어린 내 입장에서 보면 소는 상전(上典) 중의 상전이었다. 

    마구 밖에도 소와 관련된 것들이 꽤 있다. 헛간에는 소가 밭을 갈 때 쓰는 쟁기가 있는데 소의 목 뼈 부분에 멍에를 걸어서 사용한다. 소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이 바로 밭을 가는 것이다. 농가에서 소를 기르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경운기며 트랙터도 없는 세상에서 소는 가장 힘이 센 일꾼이었다. 소 한 마리가 장정 다섯 명의 일을 하니 그 위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소가 없으면 사람이 소가 되어 쟁기를 끌어서 밭을 갈아야 하기 때문이다. 벅(정지, 부엌)에 가면 사람이 먹을 밥은 자그마한 솥에다 짓지만 소가 먹을 여물은 커다란 가마솥에다가 끓였다. 여물은 말려서 작두로 썬 짚이나 옥수수 대궁, 콩깍지 등등을 끓여서 만드는데 겨울 저녁 버강지(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고 있으면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마구의 소는 그 냄새를 맡고 구성 밖으로 머리를 내민 채 길게 울고. 우리 집은 항상 소에게 먼저 여물을 퍼주고 나서야 식구들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으니 어린 내가 볼 땐 소가 틀림없이 상전이었다. 

    마구 근처에는 깍짓가리(여물간)가 있었다. 그 앞에는 늘 작두가 놓여 놓고.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일주일에 한 번쯤은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다 불려나가 아버지와 함께 작두로 깍지를 썰어야 했다. 근데 왜 아버지가 깍지를 썰 때는 꼭 재미있는 프로가 방영될 때와 맞아떨어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나는 번갈아가며 작두를 밟아 일주일치 정도의 소여물을 썰었는데 일을 마치고 들어가면 이미 내가 보던 프로는 끝이 난 뒤였다. 나는 다시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놈의 소 새끼 때문에 테레비도 마음껏 못 보다니!”

    울타리 안 마당 귀퉁이나 울타리 밖 텃밭 근처에는 소마장이 있었다. 소의 야외 별장이라고 보면 된다. 겨울철 마구에만 있으면 답답할까봐 만들어놓은 곳인데 소마장 가운데에는 말뚝을 박아놓아 거기에다 고삐를 묶었다. 마구를 칠 때도 소마장에 소를 묶었는데 눈이 많이 내린 겨울날엔 거기의 눈도 쳐야 했다. 보통 낮에는 소마장에 소를 묶어놓았다가 밤이면 마구로 들였는데 무더운 여름에는 그냥 소마장에다 소를 재우는 때도 많았다. 

    어린 시절 일이 바쁜 아버지는 가끔 내게 마구에 소를 들여 매라는 심부름을 시켰는데 이 일 역시 하기 싫은 일 중에 하나였다. 심성이 순한 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소도 많았다. 더군다나 소는 어린아이를 얕보기도 했다. 나 역시 소가 무서웠다. 그 큰 덩치며 이마의 뿔이 어찌 무섭지 않았겠는가. 더군다나 소의 고삐에는 소똥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아버지가 말뚝에 단단하게 묶어놓은 고삐를 푸는 일도 쉽지 않았다. 저녁인지라 소는 빨리 마구에 들어가 여물을 먹고 싶어 했고 나는 말뚝에 묶인 밧줄과 씨름하며 혹시 소가 뿔로 들이박지 않을까 계속해서 돌아다보아야 했다. 소를 끌 때는 말 그대로 소의 앞에서 고삐를 잡고 가야 하는데 무서움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물러나면 결국 힘센 소한테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코뚜레와 연결된 고삐를 아무리 당겨도 소용없었다. 결국 몇 걸음 끌려가지도 못하고 내동댕이쳐질 뿐이었다. 

    나는 소똥이 널려 있는 소마장에 쓰러져 눈물만 흘렸다. 눈물을 훌쩍거리며 마구에 가면 소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게작대기를 휘둘러보았지만 묶여 있지 않은 소가 순순히 매를 맞을 일도 없었다. 일이 거기서 끝난 것도 아니었다. 소가 뛰쳐나오지 못하도록 마구문을 닫아 밖에서 걸고 어떻게 해서든 소의 고삐를 잡아 장대에 묶으려고 용을 써야만 했다. 내게 있어 소는 어린 시절의 가장 하기 싫은 숙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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