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도연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야들아, 미역감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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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도연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야들아, 미역감으러 가자!

    • 입력 2020.07.15 04:45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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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연 소설가
    김도연 소설가

    “요번엔 어데로 갈까?”
    “얕은 덴 재미없으니까 이번엔 깊은 데로 가자.”
    “그럼 월정거리로 가자!”

    오전 수업만 있는 토요일이면 우리들은 더위를 참지 못하고 학교에서 곧장 개울로 달려가 미역을 감곤 했다. 해가 지글지글 끓고 있는 여름 오후의 무더위를 조금이라도 식히려면 물속으로 들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보통 학교와 집 사이에 있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막아놓은 보 근처에서 미역을 많이 감았다. 그곳의 물이 그나마 깊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이 마을에 서너 군데 있었기에 우리들은 돌아가며 이용했고 가끔 지루해지면 다른 동네로 원정을 가는 경우도 있었다. 미역을 감으러 가는 까닭은 우선은 더위를 식히자는 데에 있지만 많은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사교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었다.

    특히 다른 동네에 가면 그 동네 여자아이들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또 한 가지는 물의 양과 깊이도 중요하지만 미역 감는 곳의 전반적인 풍광이 좋아야 인기가 있었다. 자기 마을에 이런 조건을 구비한 곳이 있으면 뿌듯한 마음으로 다른 마을 아이들에게 자랑을 하고 초청도 할 수 있으니까. 우리 마을의 공식 장소는 서낭당 근처였는데 뒤로는 절벽과 숲이 그늘을 만들었고 가까운 곳에 보가 있어 물이 어느 정도 깊고 넓었다. 마을 쪽으로는 모래사장과 자갈밭이 있어 그런대로 부끄럽지는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미역감는 곳을 총괄해서 지칭하는 낱말은 무엇일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인터넷을 쏘다녀도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목욕탕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수영장도 좀 그렇다. 바다가 아니니 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빼고 수욕장이라 했을까? 국어사전에는 수욕장에 대해 수영하면서 놀거나 수영 경기 따위를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곳이라 풀이하니 수영장과 가까운 낱말이다. 아마 어린 시절 우리는 미역 감는 곳의 명칭을 그대로 썼을 것이다. 쿵쿵소, 가마소처럼. 그것마저 없으면 그 동네 지명을 사용했던 것 같다. “8반에 미역감으러 가자.” 물론 이렇게 말해도 외지인이 아닌 이상 그곳이 어디인지 모두가 알았다.
     
    또 하나는 어원이 어디에서 왔는가이다. 미역(멱), 미역(멱)감다, 라는 낱말은 어디서 왔을까 알아봤는데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목욕에서 왔다고 하는데 그러면 뒤에 붙는 ‘감다’가 애매해진다. ‘목욕감다’라는 표현은 없다. 미역의 준말인 ‘멱’이 목의 앞쪽(멱살)을 의미하니 머리를 감을 때 얼굴 목을 모두 씻듯이 ‘멱감으러 가자’는 말이 나왔다고 하는 이도 있는데 뭔가 부족해 보인다.

    또 어떤 이는 해산물인 미역이 바닷물에 이리저리 쓸리는 모습이 사람이 머리를 감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에서 유추해 ‘미역감다’의 어원을 주장한다. 내 생각으론 세 가지 모두 어딘가 조금씩 부족해 보이는데 그 가운데에 바로 ‘감다’가 있기 때문이다. ‘미역하러’ 가는 아이들은 내 기억에도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인지 학교에서 표준어를 배우는 어린 우리들도 조금씩 혼란스러워 했던 것 같다. 대굴령(대관령)을 넘어 바다에 해수욕하러 갔다 온 아이들이 먼저 말을 더듬거렸다. 도시의 목욕탕에 갔다 온 아이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 아이들 중 하나는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미역감으러 가자는 말 대신 개울에 목욕하러 가자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목욕은 왠지 정지에서 커다란 고무구박에 물 받아놓고 때를 씻는 게 연상되기도 했다. 수영하러, 헤엄치러 가자고 말하는 아이도 생겨났지만 개울이 너무 작았다. 하여튼 우리들은 자라나면서 ‘미역감다’와 ‘목욕하다’를 주로 사용하며 무더위를 달래려고 마을의 개울로 달려갔다.

    사실 미역은 발가벗은 채 감아야 제격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렇게 하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들은 조금씩 부끄러움을 배우고 여자아이들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삼각 빤스(pants의 일본식 발음)를 입고 물에 들어갔다. 얕은 물에서부터 시작해 키를 넘는 깊은 물까지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러려면 개헤엄이라도 배워야 했다. 헤엄치지 않으면 깊은 물에 빠져 물을 먹을 수도 있고 극단적으론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귀신이 될 순 없었다. 헤엄을 잘 치는 아이들로부터 물에 대해 하나씩 배워야만 했다. 언제까지 꼬맹이들처럼 얕은 물에서만 놀 수는 없었으니까. 거기에다 가끔 여자애들이 놀러와 우리가 깊은 물에서 헤엄치는 걸 저만치서 구경하기도 했으니까.

    개울에서 미역을 감는 건 매력적인 일이었으나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퍼렇게 깊은 물은 언제나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물이 목까지 차오르면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물속의 무엇인가가 발을 잡아당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여름 내내 중간 깊이의 물에서 연습을 하며 아주 조금씩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워나갔다. 잠수해서 숨을 오래 참는 법. 잠수해서 눈을 뜨는 법(눈 뜨는 법은 정말 배우기 힘들었다. 잠수하면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으니까). 물 위에 누워 힘을 빼면 몸이 뜬다는 것은 알았지만 힘을 빼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헤엄을 치다 팔과 다리에 힘이 빠졌을 때 잠수를 하면 어렵지 않게 물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깊은 물 위에서 그걸 받아들이는 일 역시 어려웠다. 그러하니 물살을 헤치며 건너편으로 자연스럽게 헤엄쳐 건너가는 아이들이 무조건 부러웠다. 어린 시절 개울에서의 내 수영 실력은 바위 위에서 뛰어드는 힘으로 삼 미터, 안간힘으로 팔과 다리를 휘저어 삼 미터, 그 다음은 거의 죽을힘을 다해 삼 미터, 모두 합해서 십 미터였으니 차마 체면이 서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깊은 물이 무서웠다. 그 까닭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보의 깊은 물에서 죽을 뻔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헤엄을 치다 깊을 것이란 생각도 없이 헤엄을 멈췄는데 발이 금방 바닥에 닿지 않았다. 발을 허둥거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내 몸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을 먹었고 다시 떠올라 팔을 허둥거렸다. 다행히 친구가 내 상황을 눈치 채고 보 위로 달려와 손을 내밀어주어 물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그 기억은 의외로 오래 몸과 마음을 지배했던 것이다.

    하지만 뜨거운 여름날 어찌 개울에서 미역감는 일을 멀리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만큼 시원하고 재미난 일은 없었다.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날 때까지 물놀이를 하고 난 뒤 우리들은 저마다 큰 바위 뒤에 숨어 빤쓰를 벗었다. 빤쓰의 물을 짜고 물기가 마저 빠지도록 하기 위해 그것을 뜨거운 바위에다 계속해서 내리쳤다. 여기저기서 퍽퍽거리는 소리가 피어났다. 그 빤쓰를 다시 입고 개울가의 뜨겁게 달궈진 바위를 옮겨 다니며 엎드리거나 누워서 건조를 시켰다. 살이 발갛게 타는지도 모른 채. 여름은 그렇게 깊어지고 있었다. 그 각자의 바위 위에서 우리들은 약속을 했다. 중학생이 되면 꼭 대굴령 너머 경포대에 해수욕을 가자고. 헤엄을 쳐서 오리바우, 십리바우까지 가자고.

    여름 낮이 아이들의 시간이었다면 여름 저녁은 농사일을 마친 마을어른들이 미역을 감으러 나가는 시간이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남자들은 우리가 미역을 감은 장소를 사용하고 여자들은 좀 떨어진 상류에서 함께 모여 목욕을 한다고 했다. 여자들이 목욕한다는 장소를 어쩌다 지나칠 때면 그 장면을 상상하며 조금씩 야릇한 기분에 휩싸인 채 어린 우리들은 여름을 건너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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