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백 톤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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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백 톤의 질문

    • 입력 2020.07.07 08:00
    • 수정 2020.07.07 08:01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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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톤의 질문  

                                 서 안 나   
      
    뒤돌아보면
    가을이었다
    소주가 달았다
    내가 버린 구름들
    생강나무 꽃처럼 눈이 매웠다
      
    고백이란 나와 부딪치는 것
    심장 근처에 불이 켜질 때
    그렇게 인간의 저녁이 온다 
      
    불탄 씨앗 같은 나를 흙 속에 파묻던 밤
    죄 많은 손을 씻으면 
    거품 속으로 사라지는 두 손은 슬프다
    어떤 생(生)은 어떤 눈빛으로
    커튼을 닫고 밥을 먹고 슬픔을 물리치나 
      
    깨진 중국 인형의 눈동자 속에서
    울고 싶은 자들이 운다 
    죽은 꽃이 죽은 꽃을 밀고 나오는 
    부딪치는 밤이었다
      
    돌아누우면 
    물결이던 
    애월 

      
    *서안나:1990년『문학과 비평』등단.*시집「립스틱발달사」외*평론집「현대시와 속도의 사유」등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아, “백톤의 질문”이라니? 내 심장에 물음표 몇 개가 불을 켜고 달려온다. 그런데
    심장 저 밑바닥으로부터 싸-한 아픔이 밀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생’에 대한 ‘존재’에 대한 질문 때문일 것이다. 
    이 시의 서늘한 묘사와 같이 “뒤돌아보면 가을”같은, 가을 잎사귀 같은 서늘한 삶의 뒷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불탄 씨앗 같은 나를 흙 속에 파묻던 밤”, 그 밤은 또 얼마나 큰 아픔이었을까?  나 또한 얼마나 많은 나를 흙속에 묻은 밤이었던가? 자아인식의 절망과 존재 양식의 탐색으로 흙무덤을 파던 밤, 그런 밤이었을 것이다.

    인생은 많은 아픔을 동반한다. 그 아픔 속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수없는 질문을 던지며 살고 있다. 그런 인생의 질문을 던져주는 이 시의 발아와 발상, 내면 의식의 직관적 승화가 우리의 ‘존재’와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화자persona는 자의식의 존재 탐구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자신에게로 돌린다. “죄 많은 손을 씻으면/거품 속으로 사라지는 두 손은 슬프다”고 고백한다. 또 “어떤 생(生)은 어떤 눈빛으로/커튼을 닫고 밥을 먹고 슬픔을 물리치나”라고 현실적 존재론에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깨진 중국 인형의 눈동자 속에서/울고 싶은 자들이 울고/죽은 꽃이 죽은 꽃을 밀고 나오는 /부딪치는 밤이었다”고 역설한다. 이것이 인생이고 인생에 대한 해답이 아닐까?

    “돌아누우면/물결이던/애월”처럼 물결 흐르는 대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자인하는 모습에서 더욱 찡한 존재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인생이란 영원한 숙제다. 우리는 그 숙제 속에서 매일매일 자신에게, 세상에게, 인생에게, 질문을 던지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질문 속에 정답은 없다. 그 때 그 때 주어진 질문을 하나하나 헤쳐 나가며 사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싸르트르는 말한다. ‘시는 인생에 대한 질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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