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쉼터] 새로운 코미디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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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연예쉼터] 새로운 코미디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 입력 2020.06.09 14:57
    • 수정 2020.06.09 15:44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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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KBS2TV ‘개그콘서트’의 마지막 녹화는 지난 3일 KBS 신관 공개홀에서 열렸다. 21년 동안 방송된 ‘개콘’은 이날 녹화분을 6월중 방송함으로써 사실상 문을 닫는다.
     
    마지막 녹화는 ‘개콘’ 회의실이 있는 KBS 연구동의 화장실 몰카 사건에 KBS 공채 출신 개그맨의 이름이 용의자로 올라오는 바람에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진행됐다.
     
    KBS는 오랜 기간 코미디 장르의 메인 자리를 차지했던 공개 코미디 형식의 ‘개콘’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코미디의 가능성을 타진해왔다. 그중 하나가 작년 추석 파일럿에서 적지 않은 반응을 얻었던 본격 19금(禁) 성인물 코미디인 ‘스탠드 업’이다.
     
    ‘스탠드 업’은 지난 2월 정규로 편성돼 지난 5월 26일 10부작으로 시즌1이 종영했다. 소재 제약이 있는 지상파에서 시도됐지만,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새로운 코미디에 대한 욕구를 담을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겠다는 노력으로 받아들여진다. 차별화도 확실하고 반응도 괜찮은 편이어서 시즌제로 정착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스탠드 업’은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이 겪은 경험담·고백 등을 과감하고 위트있게 쏟아내는 본격 스탠드업 코미디쇼로, 형식은 서양에서 들어왔다. 슬랩스틱과 콩트 코미디가 성행했던 1990년대의 한국에서 자니 윤이 1인 토크쇼를 할 때만 해도 어색함 반, 호기심 반으로 봤다. 미국 자니 카슨쇼에서 방송했던 자니 윤이 한국에서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의 특징인 성(性)·욕설·폭력에 관한 토크를 할 때, 시청자 입장에서는 가끔 어색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유병재와 박나래가 스탠드업 오프라인 공연을 열고, 이를 넷플릭스로 방송하면서 조금씩 익숙하게 됐다. 미국식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 상황에 맞는 이슈로 만들어 기존 코미디 장르와는 다른 색깔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렇다고 스탠드업 코미디가 완전히 정착한 게 아니라, 여전히 시작 단계다.

     

    ‘개콘’이 온 가족이 보는 코미디라고 한다면, ‘스탠드 업’은 유튜브의 원샷 느낌이 난다. 그래서 조용히 혼자 보기가 좋다. 성인들이 귀가 후 밤 11시에 맥주 한 잔 놓고 보면, 한 명이 나와 자신의 얘기를 하니까 집중도는 올라간다.
     
    무대가 처음에는 서울 강남의 클럽이나 바를 빌려 술 먹으러 왔다가 참가하는 형태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객석이 없어지면서 리액션이 약화된 것은 어쩔 수 없다.
     
    매회 7명의 다양한 출연자가 나와 7분 정도 이야기를 들려준다. 재밌는 것은 매회 연예인이나 셀럽이 한두 명 나오는데, 유명도가 객석 반응에 큰 영향을 못 미친다는 점이다.
     
    연예인이 나오면 처음에는 집중도가 생기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없다면 주목받기 힘들다. 기존 코미디 연장선은 안 된다. 오히려 상황극, 분장쇼, 캐릭터 플레이에 익숙해 대본을 외우듯이 하고 나오는 사람은 딱딱하게 여겨질 수 있다. 연예인이 비연예인보다 더 많이 떨 수 있는 게 ‘스탠드 업’ 무대다. 박미선, 허경환, 김영희라고 해도 자기 이야기를 자기화해서 풀어내지 못하면 인기를 얻을 수 없는 공간이다. 
     
    마이크 하나로만 웃긴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7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이 아니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선 자신의 이야기가 확실히 있어야 하고, 이를 인상적이고 재미있게 풀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선 케니가 단연 돋보인다. ‘90년대생이 온다’는 콘셉트로 기존 권위에 도전하며, 반말로 하는 게 참신하다. 기존 코미디 문법과는 다르다는 점, 무엇보다 젊은 감각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수영계 BTS’로 불리는 송하빈은 뻔뻔하게 잘한다. 자신의 팬 이름까지 거론하며 ‘남친짤’ 이야기로도 흥미를 만들어낸다.
     
    엄청난 말 실력의 소유자인 이용주와 ‘연반인(연예인+일반인)’으로 트렌드와 흥을 잘 보여주는 재재 같은 출연자도 기억에 남는다. 변호사로 활동하는 서동주도 토크 자체로 귀 기울이게 한다. ‘현실판 부부의 세계’를 발설하는 김미려-김경아 2인조는 한국식 스탠드업을 가미한 형태로 보인다.

    한기명(뇌병변) 신강수(저신장) 같은 코미디언들의 경험담과 ‘셀프 디스’는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다. 터키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기자 알파고 시나 씨의 이야기도 귀 기울일 만하다. 그동안 방송에는 표준화되고 정형화된 이야기만 주로 들을 수 있었다. 좀 더 다양한 사람이 등장해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보면 점점 익숙해지고 거리감 대신 친근감이 생긴다.
     
    물론 제작진이 출연진을 취사선택하기는 쉽지 않지만,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동안 방송에 흔히 볼 수 없는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런 분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이 참가해 그동안 쉬쉬했던 시사·인종·장애·성(性) 등 우리 사회의 터부를 웃음으로 시원하게 긁어주는 게 진짜 어른들을 위한 방송이다. 

     

    매회 선보이는 성인 아이템 ‘박나래의 19금 고민상담소’도 다듬어나가야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김수정 언론학 박사는 “고민상담 중에서 좋았던 점은 서로 다른 입장인 사람들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딸을 둔 박미선 씨는 자녀와 성에 관한 이야기나 피임하는 방법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스탠드 업’은 계급장을 떼고 싸우는 공간이다. 따라서 스타보다는 자질을 보이는 신인을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 부산코미디페스티벌에서 취재할 때 만난 몽트뢰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 이사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부코페는 1년에 7~9일 정도만 열리고, 나머지 350여일은 아무것도 안 한다. 몽트뢰는 페스티벌 기간 외에도 각자 코미디 동영상을 올려 주·월·년 단위로 온라인에서 경쟁과 심사가 이뤄지니, 일 년 내내 열린다고 볼 수 있다고. 주 1회의 방송을 하지 않을 때도 온라인에서 코미디가 열리고 있다. 말하자면 덕후들의 근거지를 만들어주는 전략이다. 이런 점을 ‘스탠드 업’이 활용해 신인을 발굴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개그콘서트’를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대학로 소극장 무대라는 인프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스탠드 업’은 아직 풍부한 자원을 공급해줄 소스가 부족하다. 그래서 스탠드 업에 ‘오픈마이크’ 제도 같은 걸 둬 경쟁과 도전의 장벽을 낮추면서 코미디 자원의 인프라도 구축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멋진 ‘스탠드 업’ 시즌2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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