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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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찔레꽃

    • 입력 2020.06.09 06:50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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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유 금 옥

    산골 마을도서관 회원들은 
    하얀 틀니를 끼고 오십니다 

    오늘은 한글기초를 배우는 김순덕 할머니가 지각하셨는데요 사유인즉, 세수 깨깥이 하고 농협에 돈 삼만 원 찾으러 갔는디, 그동안 배운 이름 석 자 써먹을라고 펜대를 쓱- 잡았는디, 아, 글쎄! 손가락이 벌벌 떨리고 기가 칵 막헤서리, 그만 내 이름을 잊어뿌랳지 뭐야! 푸하하하 

    도서관 바닥으로 하얀 틀니가 떨어지는 중입니다 
    유리창 밖, 찔레꽃잎이 하얗게 흩날리는 중입니다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산새들이 가갸거겨 지저귀는 봄날입니다 

    *유금옥: 2014년『현대시학』등단. *2011년「조선일보신춘문예 동시」당선.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요즘 들에 나가면 찔레꽃이 한창입니다.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시골 들판에는 항상 가난했던 ‘어머니’란 이름이 존재합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어머니는 나물을 캐러 들(野)에 나가시면 돌아오실 때는 찔레순과 싱아(강원도에서는 시금)를 꺾어 오셨습니다. 장에 갔다 오실 때 사탕 항 봉지를 사 오시듯이---.그렇게 가난했던 시절, 어머니의 상징과도 같은 찔레꽃이 한창인 계절입니다.

    이 시의 ‘찔레꽃’은 참 재미있네요. 그러나 글자를 모르고 살았던 우리네 어머니들, 할머니들 에 대한 생각이 아프게 겹칩니다. 2000년대 초에 각 지방자치복지센터에서 창설한 ‘문해반文解班‘이란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문학반’을 잘못 들은 것인가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한글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반이었습니다.  
     
    이 시의 화자인 할머니도 한글을 처음으로 깨쳐 “세수 깨깥이 하고 농협에 돈 삼만 원”을 찾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배운 이름 석 자 써 먹을라고---” 했지요. 그러나 “팬대를 쓱 잡는” 순간  “손가락이 벌벌 떨리고 기가 칵 멕헤서” 그만 자기 이름을 “잊어뿌랳지”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푸하하하”하고 웃었습니다. 할머니들의 하얀 틀니가 곧잘 “도서관 바닥으로  떨어지던” 영상과 겹치는 순간입니다.

    할머니가 계면적은 듯, 하얗게 웃는 그 모습을 “유리창 밖 하얀 찔레꽃”과 겹치도록 오버랩시켜 놓았습니다. 이 시, 묘미의 절정입니다. 그리고 지은이가 굳이 사투리를 차용借用한 것도 할머니의 ‘어투’를 빌어 더욱 예스러운 시의 맛과 여운을 감돌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 주위, 혹은 내 주위에도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새들이 가갸거겨로 지저귀는 분”은 없는지? 잘 살펴 배려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찔례꽃처럼 환하게 번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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