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쉼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가진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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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연예쉼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가진 힘

    • 입력 2020.06.03 06:50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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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tvN 2020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지난 28일 12회를 마지막으로 시즌 1이 끝났다.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익준(조정석 분), 정원(유연석 분), 준완(정경호 분), 석형(김대명 분), 송화(전미도 분) 등 40대 5인방 의사들의 병원 생활과 우정이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었다. 
     
    여기에 등장한 의사들은 휴머니즘 냄새가 물씬 났다. 이런 의사들만 있다면 나는 매일 병원에 가고 싶다. 그 정도로 환자들이 믿고 의지할만한 의사들이었다. “우리 동네 병원에는 저런 의사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통해 좋은 힐링이 됐다.

    20년지기 의사들을 통해 소소한 이야기가 가진 진정성의 힘을 잘 보여줬다. 특히 20년 지기 친구들로 등장한 다섯 배우의 시너지와 빈틈없는 티키타카 대화는 현실감을 극대화하며 몰입을 높였다. 주 1회 방송됐는데도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지 않았고, 시청자들을 한주동안 기다리게 했다.

    ‘굿 닥터’의 정의는 여러 각도에서 내릴 수가 있는데, ‘슬의생’ 5인방처럼 환자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환자 편에 서서 치료와 이야기를 해주는 의사가 ‘굿 닥터’인 것만은 사실이다. 아마 의사와 환자간 ‘라뽀(rapport)’(관계 형성, 깊은 신뢰감)가 가장 좋은 의사일 것이다.
     

    ‘슬의생‘에 등장하는 착한 의사 5인방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의사는 아니다. 신원호 PD-이우정 작가팀은 오랜 기간 병원과 의사를 취재했다. 그렇게 해서 실제 의사를 바탕으로 상상을 덧붙여 캐릭터를 만들어냈으니 현실과 판타지의 조화라고 할 수 있겠다. 병원에 저런 의사 한 명이 있을 수는 있어도 5명이 한곳에 모여 있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배경이 바탕이 된 것 같다.
     
    마지막회에서 최고 감동의 순간을 한번 보자. 산부인과 의사 양석형(김대명)에게 진료를 보기 위해 기다리던 산모들이 문진 시간이 길어지면서 대기시간도 점점 길어지자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산모가 사산해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고, 의사는 “다 울고 가시라”고 기다려준다. 복도의 임산모들이 자신의 배를 만지며 숙연해진다. 아기를 잃은 엄마의 고통을 공감하는 산모들이 묵묵히 기다리는 모습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슬의생’의 특이한 점 한가지는 장르물임에도 멜로라인이 풍성했다는 점이다. ‘요즘 장르드라마에서는 로맨스를 잘 넣지 않는다. 극중 남녀가 사랑을 하는 게 자칫 장르물의 깊이나 흐름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극중인물들이 사랑을 할 때, 극의 흐름이 뚝뚝 끊어지는 경우가 있다. ‘스토브리그’에서는 남궁민과 박은빈은 러브라인 형성 없이 장르물로서 호평받았다.
     
    하지만 장르물에서 멜로를 하면 안 된다는 법칙은 없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학드라마지만, 멜로 풍년이다. 병원에서 치료도 하고 연애도 하는 드라마는 ‘외과의사 봉달이’(2007)나 ‘뉴하트’(2008) 정도에서 이미 제대로 소비됐다. 그럼에도 ‘슬의생’은 연애물과 장르물을 병립시켜도 문제가 없었다.

     

    정원(유연석)-겨울(신현빈), 준완(정경호)-익순(곽선영), 민하(안은진)-석형(김대명), 익준(조정석)-송화(전미도)-치홍(김준한) 삼각라인에서 익준-송화로 정리돼 가는 모습을 풀어냈다. 이쯤 되면 멜로 이야기만 풀어나가도 벅찰 정도다. 하지만 ‘슬의생’은 의학 드라마로써의 깊이와 감성을 충분히 담고 있었다. 사랑 이야기를 풀어도 장르물로써 손상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슬의생’이 인간에 대한 차분하고도 진지한 관찰, 그 속에서 드러나는 가감없는 진솔한 모습, 거기서부터 인물의 매력을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이를 휴머니즘이라 할 수도 있다. 의사건, 검사건, 야구선수건, 야구 구단직원이건 사랑도 삶의 일부분이다.
     
    익준이 송화에게 멜로의 감정을 털어놓는 장면만 해도 그렇다. 익준은 열이 나는 어린 아들 우주(김준)를 송화에게 맡기고 병원 근무를 하러 갔다. 송화는 새벽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열 내리는 방법을 물어, 우주 상의를 벗기고 찬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는 같이 잠이 들어버렸다. 당직 근무 후 아침에 집으로 돌아와 이 모습을 본 익준은 송화를 위해 누룽지를 끓인다. 비가 온다. 이때 배경음악으로, ‘그대 고운 내사랑 오월의 햇살 같은 꿈이여/그댈 기다리며 보내는 밤은 왜 이리 더딘 건지(중략)/그대를 쉬게 하고 싶어 내 귀한 사람아’라고 부르는 어반자카파의 리메이크송 ‘그대 고운 내사랑’이 흘러나온다.

     

    이건 장르물, 로맨스물 이전에 우리의 삶을 잘 보여줘 공감하게 한다. 이렇게 인물 간 감정선을 잘 연결해 시청자로 하여금 계속 보게 만든다. 바람 피는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 석형모(문희경)는 남편 석형부(남명렬)가 의식이 없는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와 수술을 받자, “이혼은 없는 걸로 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사 등 병원 종사자들인 극중인물들이 사랑을 해도 흐뭇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또 하나,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반가운 소식은 내년 시즌2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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