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의 세상읽기] 인류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한, 라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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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의 세상읽기] 인류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한, 라이엘

    • 입력 2020.05.27 06:50
    • 수정 2020.05.27 12:52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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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성 강원대학교 명예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김학성 강원대학교 명예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찰스 라이엘(1797~1875)은 다윈만큼 알려지진 않았지만 다윈의 진화론에 결정적 영향을 준 진화론의 숨은 공로자다. 그의 동일과정설은 우주, 지구, 생물의 기원 역사를 다시 쓰게 했다. 그 대가로 웨스트민스터에 묻혔다. 그는 과학을 모세로부터 해방시켰다고 호언장담할 정도로 겸손을 모르는 인물이었다. 라이엘은 스코틀랜드의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났으며 옥스퍼드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변호사였지만 지질학에 관심이 많았다. 1827년에 법조인의 삶을 포기하고 지질학에 몰두했다고 하는데, 3년여 공부하고 만든 작품이 1830년에 출간된 ‘지질학 원리’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았고, 1831년과 1833년에 제2권과 제3권을 출간한다. 당시 세계의 중심은 ‘영국과 런던’이었기에, 이 책 한 권으로 그는 세계의 지성으로 자리매김한다. 지질학원리는 40년간 11판을 거듭했다.

    지질학은 두 입장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데 격변설과 동일과정설이다. 전자는 산과 강의 형성과 소멸 등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격변의 결과로 보는 반면, 후자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됐다고 한다. 동일과정설은 과거의 지질 활동을 해석하는데 지금 일어나는 강도와 규모의 지질변화과정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의 계곡을 흐르는 물이 수 천만년 동안 지면을 깎고 깎아 계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시루떡같이 평행으로 누워있는 지층은 쌓이고 쌓여서 됐다고 해, 퇴적암으로 불린다.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배웠다. 이게 동일과정설이다.

    동일과정설은 첫째, 라이엘의 “현재는 과거의 열쇠이다.”에 기초하고 있다. 역사적 시간 내에서 관찰되고 있는 매우 느린 속도가 과거의 지질학적 과정에도 동일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퇴적층은 쌓여서 됐다고 하지만, 수 천만년의 풍화작용을 감안하면 ‘평평하고 평행하게’ 만들어질 수는 없다. 이러한 ‘극단적 점진주의’는 20세기에 들어가기도 전에 많은 지질학자, 아니 모든 인류에게 지구가 수억 년 됐다는 패러다임을 갖게 했다. 그러나 지구는 격변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반대증거를 보이고 있다. 휘어져 뒤틀린 퇴적지층이나 대양 바닥에 있는 수백의 해저 캐니언들이다. 심지어 어떤 것은 그랜드 캐니언보다 3배나 깊다고 한다. 또 수많은 화석 역시 ‘점진적’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화석은 동식물이 갑자기 매몰되고 공기가 차단돼야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명백해 보이는 것을 라이엘은 뒤집고 있다. 그의 뒤집기는 ‘실증’이 아니라 ‘추측·짐작’이었음에도, 역사는 라이엘의 승리라고 한다. 오늘날까지 교과서에 남아 전파되고 있다.

    둘째, 모세로부터 과학을 해방시켰다고 한다. 그는 지질학을 창세기의 ‘시간 틀’로부터 벗어나게 함으로써 성경의 초기 역사를 제거하려고 했다. 자연현상에서 초자연적인 것은 없다며 과학적 조사도 없이 자신의 주장이 결코 검증될 수 없다는 점을 십분 활용했다. 자신을 지질학의 영적 구원자라고 자화자찬한 오만한 인물이며, 성경을 의도적으로 멸시한 다분히 악의적 인물이다. 지구의 나이는 ‘모세의 글’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성경을 비웃었다. 다윈은 진화를 믿었다고 보지만, 라이엘은 동일과정을 믿었다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성경에 저항했다. 성경은 믿음이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했지만, 라이엘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셋째, 라이엘이 말년에 제시한 지질계통표는 망상의 정점을 찍게 된다. 지질계통표는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에다 각 시대에 살았다는 표준화석을 연계한 지구의 ‘진화역사표’다. 지층의 연대도, 화석의 나이도 ‘각각 모두’ 측정한바 없는 상황에서 이런 상상을 어떻게 ‘과학의 영역’에서 ‘문서’로 나타낼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교회가 이에 고개를 떨구었고, 진화와 창조를 결합한 유신 진화론이 태동했으니, 가슴을 칠 노릇이다.

    넷째, 라이엘의 오만과 자기모순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재현됐다. 나이아가라는 엄청난 수량에 따른 침식으로 매년 약 1m의 속도로 ‘뒤로’ 물러나고 있다. 지금은 수력 발전소가 밤에는 폭포를 열지 않는 등 폭포의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1841년 라이엘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찰하면서, 1년에 1m씩 후퇴했다는 40년 동안의 ‘실제 측정 수치’(이 수치는 후에 정확한 수치로 증명됨)를 무시하고, 과거에는 3배 정도 느리게 후퇴했을 거라고 하면서 폭포의 연대를 3만5000년으로 만들었다. 라이엘은 현재 작동 중인 ‘1년, 1m’의 침식속도 대신 다른 속도를 과거에다 적용했는데, 이는 자신의 동일과정설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 된다. 3만5000년이라는 연대는 지질학 문헌에서 오래전에 폐기됐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연대는 대략 3800년으로 보고 있다.
     
    지질학에 실험이 도입된 것이 1960년대부터였으니, 그 전까지의 지질학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까웠다. 격변설의 암흑시대였다. 1970년부터는 격변설을 지지하는 논문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지질형성과 지질구조는 대격변의 기록이라고 한다. 특히 1980년 미국 세인트 헬렌산의 폭발은 ‘수백 개’의 지층들이 ‘짧은 시간’ 안에 ‘평평하게’ 퇴적·형성됐음을 보여 줬다. 이에 힘입은 미 콜로라도대학의 1994년 실험은 퇴적층이 쌓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음을 입증했고, 지층이 차례로 형성된다는 ‘지층누적의 원리’가 잘못된 것임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퇴적학의 기념비적 성과로 불린다.

    라이엘이 인류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준 것은 아니다. 인류의 인식범위를 대폭 확대했고, 인식능력을 담대하게 해줬다. 신문, 방송, TV 등에서 우주 이야기가 나오면 기본 단위는 수십억에서 수백억이고, 지구는 수억에서 수백억이다. 협곡이 깎이고 깎이는 데는 주로 7~8000만년을 선호하며, 쌓이고 쌓여서 됐다는 곳에는 조금 더 쓴다. 억대로 올라간다. 3~4000만년에 이뤄졌다는 말은 별로 없다. 성에 차지 않는 게다. 그러면서 스토리 텔링 능력도 향상시켜 줬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호랑이와 사람이 맞담배 했다고 할 것도 같다.
     
    다윈의 진화는 성경을 위협하지 못하지만, 라이엘의 시간은 선악과와 같이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워 보여 성경의 기초를 흔들고 있다. 동일과정의 패러다임은 너무 강력해서 단 수십 년 안에 세계를 휩쓸어 버렸다. 동일과정설과 이에 연계된 진화론은 이 패러다임 안에서 사고하지 않는 과학자들을 상식이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어, 진리 수호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라이엘은 다윈에 비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사이비 제품을 판 죄과는 다윈보다 크면 컸지 결코 못하지 않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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