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달, 저녁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달, 저녁

    • 입력 2020.05.12 06:50
    • 기자명 칼럼니스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달, 저녁
                                     박해림
     
    엄마는 늘 불을 끄셨네
    설거지를 하면서 불을 켜지 않았네
    어둠 속에서 무얼 하나 몰라
     
    그릇들이 어둠을 삼켜도 어둠은 줄어들지 않았네
     
    엄마는 늘 불을 켜지 않았네
    불이 어둠에 빠질까 걱정되었을 것이네 그리하여
    딸깍, 딸깍 방이 꺼지고
    딸깍, 딸깍 마루가 꺼지고
    딸깍, 딸깍 부엌이 꺼졌네
     
    붉은 창호지에 번진 엄마의 눈빛이 형광등보다 밝은 것을 그때 처음 알았네
     
    엄마는 늘 불을 멀리 밀어놓으셨네
    60촉 백열전구도 눈이 시려 30촉으로 바꿔놓으셨네
    마침내 전구가 나갔을 때, 품속의 달을 켰네
     
    달빛이 스러지고
    엄마의 눈빛이 스러지고
    마침내 발이 스러질 때
    달그락, 달그락 부엌이 일어나 혼자 어둠을 켰네 

    아버지는 이 날도 돌아오지 않으셨네

    *박해림:1996년『시와 시학』등단. *2001년『서울신문』신춘문예 시조 당선.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가정의 달 5월, 지난주엔 어버이날이 지나갔다. 해마다 돌아오는 날이지만 이토록 가슴 싸아 하게 아픈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일까? 이 세상 부모님의 사랑만큼 절대적인 것은 없다. 부모에게 자식은 최후의 희망이고 절망의 존재다.
     
    올해 1월 설날의 이야기다. 요양원에 맡겨진 어떤 할머니는 아들들이 찾아올 것이란 기대로 매일 휠체어를 타고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연휴 나흘이 다 지나가도록 자식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밥도 드시지 않고 침대 모서리에 모로 누운 채 마냥 울기만 했다는 보도기사다. 최후의 희망이 절망으로 눈물 머금게 하는 순간이다. 가슴 울컥하여 먼 창밖에 눈길을 던지고 덧없는 구름 한 조각을 망연히 바라볼 뿐이다.
     
    이 시의 대상인 어머니의 사랑이, 깊은 침묵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전기 값을 아끼시느라고 불도 켜지 않는다. “딸깍 방이 꺼지고/ 마루도 꺼지고/ 부엌이 꺼졌다”고 역설적 화법으로 승화시킨다. 불보다 환한 어머니의 가슴 속 사랑을 “품속의 달을 켰네”라는 상징적 표현으로 극대화 하여 우주공간에 꽉 차게 그려 놓는다. 그런 어머니의 사랑은 캄캄한 밤에도 등불보다 환하다.
     
    가족을 위하여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치듯 “달빛이 스러지고/엄마의 눈빛이 스러지고/마침내 발이 스러질 때/ 달그락, 달그락 부엌이 일어나 혼자 어둠을 켰네”라는 청각과 시각적 이미지로 어머니의 일터, 그 부엌을 형상화 한다. 고요히 잠든 부엌의 적막을 이토록 감각적 이미지로 어머니의 영상과 오버랩 시킨 그 공간에 우리들 어머니는 늘 거기 계신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날도 돌아오지 않으셨네”라고, 긴 기다림의 애증을 암시한다. 이렇게 지아비를 기다리고 자식들을 기다리며 한(恨)으로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오늘따라 가슴을 아프게 때린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