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네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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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 시네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입력 2020.05.04 09:56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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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코엔 형제감독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뛰어난 작품이다. 사실 정교한 연출과 스토리라인,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강하게 밀어붙이는 사회비판의식은 그들 영화가 보여주는 보증수표다. 학생들과 여러 차례에 걸쳐 세미나를 진행했음에도, 할 때마다 연출의 여러 층위를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되는 특별한 영화다. 

    이야기에는 끔찍한 요소가 많다. 다름 아닌 킬러의 행보를 쫓아가는 일종의 로드무비이기 때문이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멕시코국경을 접하고 있는 황무지, 마약 거래를 하려던 갱들은 무슨 수가 틀렸는지 서로 총질을 해댄 끝에 모두 몰살된다. 우연히 사냥을 나섰다가 시체들이 널브러진 현장을 발견한 모스는 돈다발이 든 가방을 챙겨 현장을 떠난다. 그런데 문제는 돈다발 사이에 추적 장치가 있다. 갱들로부터 이를 추격해 돈 가방을 찾아오라는 의뢰를 받은 시거는 잔혹한 살인마다. 

    그런데 그는 돈을 독식하려는 속셈으로 의뢰자들을 모두 죽여 버린다. 한마디로 마약 갱스터보다 더 잔혹한 캐릭터다. 모스와 시거의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추격전 사이, 은퇴를 앞둔 지역의 노련한 보안관 톰과 부하들을 잃은 마약 조직 보스로부터 의뢰를 받은 웰스라는 청부업자가 다시 시거를 쫓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에는 기존의 범죄 스릴러처럼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는 이가 없다. 정작 보안관 톰마저 ‘쿨’하다못해 범인을 쫓는 일을 피하고 싶어하는 인상마저 준다. 극 말미에 가서는, 돈 가방을 두고 벌어지는 비열한 추격전과 거리를 두고자 애쓴 덕인지 늙은 보안관 톰만이 살아남고, 등장하는 메인 캐릭터 모두가 죽음을 맞이한다.

    제목처럼 영화엔 노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극이 시작됨과 동시에 경찰서에 체포됐던 시거가 탈옥하는 과정에서 차를 탈취할 목적으로 우연히 조우한 노인을 잔혹하게 살해한다. 이어서 주유소에 들른 시거에게 실없이 말을 걸었다가 목숨을 위협받던 주인장 노인, 모스의 행적을 쫓기 위해 캠핑촌에 도착한 시거가 정보를 캐낼 목적으로 위협적인 제스처를 취하지만 꿈쩍도 않던 사무실의 노파, 그 외에도 여러 노인이 단역으로 출연한다. 보안과 톰과 그 주변 인물들 역시 모두 노인이다. 영화 시작부터 노인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장면이 나오기에 노인들이 등장할 때마다 어떻게 살해될까 하는 공포감이 스며온다. 

    그러나 정작 노인이 살해되는 장면은 많지 않다. 추격을 피해 차량을 강탈하고 신고를 막기 위해 벌인 두 번의 살해 장면 외에는, 보안관 톰을 비롯해 모든 노인은 시거의 잔혹함을 피해 살아남는다. 예를 들면 동전 던지기로 주유소의 노인은 시거가 품은 흉기를 피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추격전에 몰입된 관객은 점차 영화 제목과 괴리가 생기는 자아를 경험하게 된다. 영화는 이를 통해 역설적인 방식으로 관객을 미끄러트린다. 

    타인이 어떻게 살해될지 묘한 기대감으로 장르 영화를 소비할 준비가 된, 관객의 심리에 강한 상처를 남긴다. 우리가 흔히 매체를 통해 범하는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관음증적 죄악에 스크래치를 가함으로써 내면의 잔혹성과 만나게 한다. 시거의 캐릭터가 결벽증적 모습을 자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에 묘사된 시거는 살인을 저지르면서 피해자의 피가 자신에게 한 방울도 튀어선 안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강박에 가까워 보이는 시거의 행동 패턴은 영화 내내 반복된다. 바로 이 부분이 관객에 대한 메타포처럼 읽혀지는 지점이다. 

    위와 같은 패턴 이외에도 영화에 반복되는 패턴이 또 하나 더 있다. 모스와 시거는 판이한 캐릭터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인물에 대한 묘사가 중첩되는 부분이 많아진다. 자기 자신의 기준이 강하다는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그들이 죽음을 맞게 된 지점에선 자신들의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청년과 소년들도 모스와 시거의 행동 패턴을 닮아 간다. 돈을 두고 ‘내 것 네 것’을 따지는 그들의 모습은 모스와 시거가 벌이는 혈투와 궁극적으론 동일 선상에 있게 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는 옛날 서부개척시대를 아버지 세대를 향수하는, 노인들로부터 모스와 시거라는 중년 세대가 돈을 놓고 벌이고 끔찍한 총격전, 그리고 그들이 우연히 조우한 청년과 소년들을 오염시켜가는 과정을 쫓고 있다. 모스가 추위를 피하고자 옷을 벗어달라고 요구하면서 그 대가로 지불한 500달러에 순박한 시골의 청년들은 그 돈을 두고 서로 으르렁거린다. 시거가 죽어가면서도 경찰에게 자신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해달라고 부탁하면서 건넨 100달러 지폐 한 장을 두고 소년들은 서로가 차지하겠다고 다툰다. 

    결과적으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의 ‘노인’은 현재 세대의 노인이 아니다. 제목에 경도돼 노인들이 어떻게 죽어 가는지를 보려 했던 관객들은 도리어 두 중년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이 돈을 두고 서로를 죽여 가는 과정의 혈투를 목도하게 된다. 동시에 그들에게 오염된 청년과 소년들이 그들처럼 돈을 두고 싸워나갈 암울한 미래에 대해 경고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영화는 마치 극 중 노인들의 아버지 세대가 서부개척시대에 벌인 일상의 총격전에서 현재 세대가 한 치 앞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의 메인 캐릭터인 모스와 시거는 노인이 되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된다. 또 그들이 오염시킨 청년들도, 소년들도 어쩌면 돈을 두고 경쟁을 벌이다가 노년 없는 이른 죽음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코엔 형제가 미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성찰 없이 과거를 향수하고 이 때문에 지속되는, 총기가 난무하는 현재의 폭력은 지금 세대가 노년이 되기도 전에 죽게 되는 암울한 미국의 자화상임을 직시하게 한다. 

    사족 하나! 작금의 코로나 사태로 집단면역을 주장하는 서구의 몇몇 국가들, 그리고 정부의 통제를 풀라고 무장시위를 하는 일부 국민의 행태가 난무하는 일련의 국가들, 모두 노인을 위한 나라가 못 된다. 미래가 없는 나라는 그 나라의 구성원들이 노인이 되게 두지 않는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모두가 일찍 삶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영화 속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현재 우리의 경우에도 코로나 사태를 잘 극복하고 있고, 수일 내 생활방역으로 전환한다는 국무총리의 발표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느슨해져서는 안 될 일이다. 마스크를 쓰는 행위만 하더라도 다른 이로부터 감염되지 않기 위함이라기보다 내가 다른 이에게 감염시키지 않기 위함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상호 간 배려가 우리의 노년을 보장할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되는 길은 현재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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