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이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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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이층

    • 입력 2020.04.28 06:50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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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층  

                                           최금녀

    계단에 서서 당신을 열어 볼 때가 있다
    이층은 소리와 햇살이 가득 찼다 
    멈춘 듯 저녁이 먼저 오고 멈춘 듯 내가 다녀간다

    가끔씩 기쁜 저녁도 지나간다 
    아래층 불빛이 이층까지 노오랗게 올라간다
    층계를 밟는 불빛들은 두근거린다
    내가 모르는 사이 베란다를 좋아하는 모과나무는
    노오란 잎새를 몰고 찾아온다
    첫눈 없는 크리스마스를 맨손으로 만진다 

    이층은 쉴 새 없이 흐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아래층과 이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를 끄듯 커튼들을 닫는다
    해가 뜨지 않는 일층에 
    없는 듯 
    내가 남아 있다

    *최금녀:1998년『문예운동』등단. *전,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이 시의 ‘이층’은 참으로 고요하고 고요해서 적막이 흐르는 공간이다. 낮에도 적막의 소리와 햇살이 가득 차 흐른다. 그리고 “멈춘 듯 저녁이 오면/ 아래층 노오란 불빛이 계단을 밟고 올라 간다” 노오란 불빛그림자들이 그림자로 일렁인다. 정원에 서 있던 한 그루 모과나무도 외로운 듯 “노오란 잎새들을 몰고 베란다”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 채의 고요가 고요로 흐르는 ‘이층’의 환상적 실루엣이다. 무형체가 형체로 흐르는 시적 환상이다.

    참, 적막하고 고요해서 창 틈새로 흐르는 노오란 불빛을 따라 시를 쓰기 좋은 공간이다. 아니, 시가 살아 돌아오는 공간이다. 이 시의 화자는 흐르는 시간과 정지된 시간의 불빛을 따라 조용히 움직인다. 시와 한 몸으로 흐른다.

    “나를 끄듯 커튼을 닫고/해가 뜨지 않는 일층에/없는 듯/내가 남아 있다”고 조용히 자신을 내려앉혀 놓고 사유한다. 나를 찾고 나를 발견하려는 사유다. 이 침묵 같은 공간에서 화자는 사유思惟와 함께 고즈넉이 앉아 있다. 이 이데아 속에는 시와 적막과 고요가 노오란 불꽃을 달고 화르르 살아나는 환상이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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