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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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의자

    • 입력 2020.04.21 09:14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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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자

                        이 정 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이정록:1993년「동아일보」신춘문예. *시집『어머니 학교』외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의자’의 함의적 의미는 다양하다. 상·하 서열을 상징하기도 하고, 만남과 떠남의 자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이 시에서는 배경이나 배후를 상징하는 받침대를 의미하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누구에게 얼마나 편안한 ‘의자’가 됐던 적 있었던가를 반성한다.

    이 시의 작자는 평소에도 어머니의 말을 잘 받아 적는 시인으로 유명하다. 그 어머니의 말씀 속에는 인생의 진리가 있고 참 교훈이 담겨져 있다. “꽃도 열매도, 그게 다/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인”다는 그런 진리다. 

    그리고 작자는 어머니 말씀으로 환유한다. “주말엔/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그래도 큰애 네가/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라고 의자의 역할을 환기시킨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우리들의 ‘의자’였으나 늙으면 반대로 아들이 아버지의 ‘의자’가 되는 역순환의 진리다. 

    또한 가정에서는 부부가 서로의 ’의자’가 되라고 암시한다. 아니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사는 게 별거냐” “싸우지 말고 살아라” 라고  ‘의자’의 역할을 일깨워 주는 진리다.

    21대 국회의원 선거도 끝났다. 그들도 자기들 혹은 자기편의 ‘의자’를 찾기에만 급급하지 말고 진정 국민을 위하여, 국민들에게, 편안하고 안락하고 따뜻한 ‘의자’ 역할을 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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