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터미널 국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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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터미널 국밥집

    • 입력 2020.04.14 06:50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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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미널 국밥집

                                      류 미 야

    마음이 종착인 날은 터미널로 가 보자
    보따리에 실려 온 고향 내음도 맡고
    설렘과 아쉬움이 빚는 
    풍경에 젖어보자

    그래도 못내 허전커든 국밥집에나 들어
    소박한 허기가 부른 맑은 식욕을 느끼며 
    어느새 어깨에 내린 어둠까지 말아보자  
     
    마른 생도 젖은 생도 
    밥보다 뜨거울까 

    쩔쩔 끓는 국물에 눈콧물 다 쏟아내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삼키고 돌아오자

    *류미야: 2015년「유심」등단. *월간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발행인 겸 주간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6.25 후 터미널에서 국밥 장사를 했다는 한 여자를 생각한다. 열 명이 넘는 식솔에 곳간은 폐허였다. 
    땅속에 숨겨 놓았던 곡식도 다 약탈당했다. 궁리 끝에 터미널에서 국수와 막걸리와 국밥을 팔았다. 그런 그녀의 남편은 여자가 그런 장사를 한다고 술만 먹으면 행패를 부렸다. 전설 같은 이야기다.

    ‘국밥’과 ‘터미널’은 애수와 회한이 담긴 단어다. 낭만이 아니라 궁핍과 가난의 설움 같은 허무가 고개를 숙이게 한다. “마음이 종착인 날은 터미널에 가 보자"고 화자는 말한다. 종착역 같은 마음을 데리고 더욱 쓸쓸하고 허한 그곳을 가 보자고 중의적으로 독백한다. 거기서 풋내 같은 고향 내음도 맡고 그리움도 맡아 보려는 것이다. 그래도 다시 “마음이 못내 허전커든 국밥집에 들어가” “어깨에 내린 어둠까지 말아보자”고 한다. 참 쓸쓸한 자의식이다. 

    이 세상을 건너가는 우리의 생은 쓸쓸하다. 그러나 “마른 생도 젖은 생도/밥보다 뜨거운”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런 ‘밥’을 위하여 우리는 오늘도 동분서주, 뛰다가 저녁어스름을 안고 돌아온다. 또 때로는 종착지도 없이 방황한다. 겨우 터미널 허름한 국밥집에 들어가서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국밥을 앞에 놓고, 허한 마음을 달랜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삼키고 돌아오자”고 역설한다. 눈물 한 방울까지 다 흘려보내라고 역설한다. 국밥그릇을 앞에 놓고 부르튼 발을 들여다보는 우리들의 하루는 얼마나 쓸쓸하고 아득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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