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네마] 투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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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 시네마] 투표의 시간

    • 입력 2020.04.13 10:05
    • 수정 2020.04.13 10:07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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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오래된 농담 하나, 초등학교 시험에 '다음 그림 중 가구가 아닌 것을 고르시오?'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사지선다형 문제지에 주어진 그림은 소파, 책꽂이, 침대, 냉장고가 제시됐다. 많은 초등학생들이 정답인 냉장고 대신 첫 번째 침대를 골랐다고 한다. 정말인지 조크인지 확실치 않지만 설득력이 있었다. 광고에서 신뢰의 이미지가 구축된 중견 배우 박상원이 나와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표상이 실체를 대체하는 이러한 현상을 자본주의사회를 해석하는 틀로 제시한 이가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이다. 그는 미디어에 의해 구축된 이미지의 영향력에 대해 '시뮬라시옹'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상의 이미지가 실체를 대체하는 현대사회의 미디어 현상에 대해 기호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요 배역인 모피어스가 들고 있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 대표적인 예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들고 있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들고 있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매트릭스'는 후기 구조주의 철학의 사유를 모티브로 삼은 SF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미래의 우리는 분명 가짜의 삶을 살아간다. 영화에서 인간은 기계에 전류를 공급하는 연료장치로 전락하고 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컴퓨터네트워크에 갇힌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끔직한 일이다. 그러나 후기 구조주의 철학이 진단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미래의 모습이 아니다. 현재의 우리가 그런 가짜의 세계에서 생존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말이 안된다 싶지만 맞는 말이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생활세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쇼핑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우리는 경제는 물론 정치영역에서까지 각종 홍보로 대변되는, 사실과는 괴리가 있어 보이는 이미지들을 너무나도 많이 접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개념을 영화가 아닌 일상에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만한 예를 교과서에서 찾아본다면 배우 최불암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최불암은 현재도 간혹 매체에 등장하는 원로배우이지만 14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비례대표로 선출돼 국회에 입성하자 농촌 민간 단체에서 로비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장수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농촌마을 이장님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미지 덕분에(?) 그의 국회 사무실엔 농업 관련 민원을 들고 온 농부들로 늘 넘쳐났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화 예술 상임위에서 활동했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10일 오전 서울역에 마련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최불암-김민자 부부와 박영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투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10일 오전 서울역에 마련된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최불암-김민자 부부와 박영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투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그가 15대 국회에 지역구로 출마했는데, 전략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문화예술분과에 맞게 그는 당시 방송국과 관련 사무실이 밀집한 지역인 여의도에 출사표를 낸다. 결과는 낙선! 최불암과 그의 선거를 돕던 이들이 간과한 점이 시뮬라시옹이었다. 만약 표상이 실체를 대체하는 현상에 대한 이해가 충분했다면, 최불암은 경기 북부나 강원 영서의 농어촌 지역에 출마했어야 승산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만약이라는 전제가 깔렸지만 분명 매우 수긍할만한 예시가 아닐 수 없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떨어지는 길을 선택했지만, 그러나 적어도 미디어의 이미지를 이용해 의원직을 연장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그는 당당해 보인다.

    새로운 선거제도로 연동형 비례제가 실시되는 첫 번째 선거이다. 그러나 본래의 취지와 달리 선관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듯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대표성에 기초해 가능한 소수정당에 배분돼야 할 비료대표제도가 누가 더 과반을 차지하는가의 문제로 전이되었다. 그러나 새삼 이 일을 들추는 것은 지적을 위한 지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기왕에 일은 벌어졌고, 당위로서 투표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우리는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 어떤 정당에 지지를 보내야 만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소수자로서 우리와 우리 이웃들의 이해를 위해 뛸 후보자를 국회로 보낼지 정밀하게 가늠해야 한다. 그리고 21대 국회에서는 선거법을 보강할 필요 또한 아니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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