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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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꼭지

    • 입력 2020.04.08 09:48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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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지

                                            문 인 수
     
    독거노인 저 할머니 동사무소 간다. 잔뜩 꼬부라져

    달팽이 같다

    그렇게 고픈 배 접어 감추며 생生을 핥는지, 참 애터지게 느리게

    골목길 걸어 올라간다. 골목길 꼬불꼬불한 끝에 달랑

    쪼그리고 앉은 꼭지야,

    걷다가 또 쉬는데 전봇대 아래 그늘에 웬 민들레꽃 한 송이

    노랗다. 바닥에, 기억의 끝이

     

    노랗다.

     

    젖배 곯아 노랗다. 이년의 꼭지야 그 언제 하늘 꼭대기도 

    넘어 가랴

    주전자 꼭다리처럼 떨어져 저, 어느 한 점 시간처럼 

    새 날아간다

    *문인수:1985년『심상』등단 *시집「적막 소리」외.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독거노인은 151만명으로 65세 이상 노인인구 711만명 대비 21.2% 달한다고 한다. 노인 4명 중 1명이 독거노인이란다.

    이렇게 혼자 살고 있는 노인들이 오늘 이 시간에도 코로나 사태로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을까? 어떤 노인은 하루에 한 번씩 배달되던 도시락이 끊겨 어려움을 겪는다는 뉴스도 있었다. 또 어떤 노인은 주민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점심을 매일 먹을 수 있어 행복했는데 요새는 먹을 수 없어 몸과 마음이 더 아프고 슬프다고 했다.

    이 시의 “꼭지”는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다. ‘꼭지’란 말은 경상도 지방에서 쓰는 가난한 집안의 맨 꼴찌로 태어난 여자 아이를 뜻한단다. 맨 막내로 태어나 젖배를 곯아 민들레처럼 노랗게 된 얼굴을 어린 날가난의 기억으로 매치시킨다. 그 아이가 어느 새 노인이 되었다. 그것도 독거노인이 되어 “잔뜩 꼬부라져 달팽이 같은 몸을 이끌고 동사무소에 간다.” 식사를 하러 가는 것인지 기초수당을 받으러 가는 것인지 상상으로 여운을 남긴다. 시적 침묵이다.

    “그렇게 고픈 배 접어 감추며 참으로 애 터지게 느리게 골목길을 걸어 올라간다” 꼬불꼬불한 골목길 끝에 달랑 쪼그리고 앉은 노인! 숨이 차다. 그녀가 걸어온 배고픔과 상처와 아픔으로 더 작아진 ‘꼭지‘다. 달팽이처럼 꼬부라진 허리로 애 터지게 느린 걸음으로 동사무소 찾아가는 이 독거노인!

    “주전자 꼭다리처럼 떨어져, 저 어느 한 점 시간”에서 지금은 새처럼 날아가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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