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쉼터]부부 민낯 드러낸 ‘부부의 세계’, 김희애 원숙미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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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연예쉼터]부부 민낯 드러낸 ‘부부의 세계’, 김희애 원숙미의 재발견

    • 입력 2020.04.06 15:09
    • 수정 2020.04.06 17:21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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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요즘 단연 화제다. 강렬하고 뜨겁게 휘몰아친다. 부부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 19금(禁) 드라마는 영국 BBC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리메이크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부부의 연이 배신으로 끊어지면서 소용돌이에 빠지는 이야기다.

    단 2회 만에 시청률 11%를 돌파했다. 김희애가 짜릿하고 서늘한 역습을 시작한 4회는 14%를 돌파했다. 남편을 향한 반격의 결정타를 예고한 김희애의 살기 어린 눈빛이 치열해질 전개를 암시하고 있다.

    김희애는 김수현 작가의 ‘내 남자의 여자’(2007)에서 절친 여고 동창생의 남편과 불륜에 빠진 미망인 ‘화영’을 연기했다. 친구의 뒤통수를 친 격이다. 이번에는 남편한테 뒤통수를 맞는다. 완벽한 환경에서 산다고 믿는 김희애는 남편이 젊은 여성과 바람이 난 상황을 맞닥뜨리며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이냐가 앞으로 전개될 양상이다.

    한마디로 ‘김희애의 복수극’이다. 다소 뻔할 것 같은데도, 재미있다. 그것은 ‘심리’와 ‘관계’ 중심으로 텐션을 높여나가기 때문이다. 대본은 부부라는 관계의 본질을 꿰뚫는 밀도를 갖추고 있고, 배우들은 내밀한 감정을 치밀하게 풀어낸다. 전작 ‘미스티’에서도 발휘된 모완일 감독의 감각적이고 세련된 연출도 한몫한다.

    ‘내 남자의 여자’(2007) ‘아내의 자격’(2012) ‘밀회’(2014) 등에서도 이미 증명됐듯이 불륜 이야기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자극성에 고급 이미지가 있는 김희애를 갖다놓으면 ‘세련된 속물성’ 또는 ‘고급 막장성’이 생기는데, 그 점도 김희애판 불륜극의 강점이다.

     

    심리 묘사에 탁월함을 보이는 김희애는 가정의학 전문의이자 종합병원 부원장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지선우’를 연기한다. 남편 이태오(박해준 분)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영화감독이자 제작자다. 집안의 무게추가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는 빤히 보인다. 어린 아들(준영)도 한 명 있다. 이런 가정의 불륜은 가족에 대한 로망이 누구보다 강한 한국 시청자에게는 그 자체로 좋은 ‘떡밥’이다.

    게다가 이태오의 불륜에는 그의 친구부부와 김희애 직장 동료의사 등 평소 자주 함께 지내는 주변인도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그들은 ‘공모자들’이다. 이쯤 되면 김희애 부부에 대한 감정이 질투이건 선망이건 사람들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고 타인의 평판에 신경 쓰는 한국 시청자에게는 딱이다. 또한 거짓 위에 쌓은 행복이라는 모래성과 현대인의 불안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더욱 흥미로운 건 김희애가 남편이 바람났다고 해서 정신이 나가 울고불고 상대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무식한(?) 여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떻게 해서 거기까지 올라갔는데…’ 김희애는 그러면서도 감정의 밑바닥까지 보여줄 수밖에 없다.

    부부의 믿음이 배신으로 끊어지면서 펼쳐지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극강의 흡인력을 선사한다. 특히 숨 막히는 파격적인 전개와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는 비틀린 진실들. 복수를 위해 뚜벅뚜벅 나아갈 김희애에게 감정이입을 안 할 수 없다.

    55세 여배우가 원숙한 연기를 펼치는 것은 실로 오래간만에 본다. 제작진들이 연기가 안 되는 젊은 여배우를 쓰는 것보다, 연기 잘하는 중년 여배우를 제대로 활용하면 훨씬 더 효과적임을 보여주는 캐스팅이다.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를 연기하는 김희애는 중년여성의 원숙함이 주는 지적이면서도 성적인 매력이 가잘 잘 활용되고 있는 사례다. 이런 시도가 자주 있어야, 나이 든 여성 캐릭터도 당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다. 이건 단순한 ‘누나미(美)’ 정도로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국 대중문화에서 50대 주부가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부각된 전례는 별로 없었다. 젊고 예쁜 배우는 많아도 멋지게 나이들어가는 배우를 찾기 힘든 현실에서 우아함과 함께 지적이고 단호한 이미지를 함께 풍기는 김희애라는 존재는 단연 도드라진다. 지성미와 원숙미 관능미, 이런 단어들이 지선우를 연기하는 김희애에게 썩 잘 어울린다.

    대중문화계는 나이가 들면 잘 안써주는 문화가 있다. 그러니 여배우의 이미지는 30대로 넘어가면 드센 아줌마 등 희화화된 캐릭터나 약화된 이미지, 다시 말해 개인적 자아를 상실한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에서는 젊은 배우라면 김희애처럼 열일 하는 감정 연기를 보여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게 여배우의 명줄을 누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세월의 농익음이 연기력으로 묻어나고 있다.

     

    김희애는 감정 소모가 엄청난 지선우의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다. 사랑, 배신을 둘러싼 감정들에 대해 더 깊어진 김희애의 표현력은 특히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끊임없이 터지는 반전과 변수 속에서 배신감과 절망, 슬픔과 불안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지선우의 감정을 예리하게 조율한 김희애의 연기는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들었다. 지선우의 감정에 이입하며 분노하고, 울고 웃었다. 이처럼 몰입도가 장난이 아닌데, 이것도 상당 부분 김희애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배신이 남긴 뜨거운 분노의 감정을 더욱 날카롭지만, 전략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지선우의 거침없는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마디로 심리극의 진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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