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네마] 변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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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 시네마] 변곡점

    • 입력 2020.04.06 10:54
    • 수정 2021.04.05 18:34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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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일전에 필자의 지인이 SNS로 '이상한 나라 사람들 이야기'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보내왔다. 내용인즉슨 평범한 주부가 마스크 대란에 도움이 되고자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만든 수제마스크를 기부하고 코로나바이러스 폭발로 공황상태에 빠진 대구에 각 지방의 의료진들과 구급대원들이 열을 지어 자발적으로 몰려온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덧붙여 우리 국민의 이러한 태도는 과거 IMF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행렬에서부터 태안기름 유출사건에 해안가를 따라 길게 서서 기름 찌꺼기를 걷어내던 모습의 연장선이라고 소개했다.

    영상을 제작한 주체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이었다. 홍보목적의 영상답게 해외의 반응도 뜨거웠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필자 역시 마음이 뭉클해졌고 눈가가 시큰해져 왔다. 

    그럼에도 직업병인양 괜히 심술이 나서, 잘 기획된 영상에 마음을 뺏긴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해 보기도 했다.시쳇말로 '국뽕'에 취해 실체를 보지 못하고 엉뚱한 프레임에 내가 갇힌 것은 아닌가하고 되물었다. 그런데 결론은 아무렴 어떤가. 나열된 사례가 사실임이 분명하며 그 영향 또한 선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면 이미 그 자체로 훌륭한 텍스트라는 생각에 머물렀다.

     

    '참 이상한 나라' 동영상. 사진/해당 영상 캡처
    '참 이상한 나라' 동영상. 사진/해당 영상 캡처

    '재난 유토피아'라는 말이 있다. 재난으로 모든 것이 리셋된 상태, 먹을 것 또는 마실 것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서로서로 도와가며 난국을 이겨내는 현상을 일컫는다. 인류학자 리베카 솔닛의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 나온 말이다. 그녀는 종종 영화에서 묘사되는 재난 이후의 난무하는 폭력과 야만적 약탈은 일종의 '허구'라고 일갈한다.

    솔닛은 그것이야말로 엘리트들의 상상에 기인한 '그들만의 패닉'일 뿐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그녀가 인터뷰한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은 한결같이 이웃들의 선행이나 이름조차 모르는 이들의 도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생존자 중 많은 이들이 '재난 유토피아'를 고백하고 있었다.

    사실 재난과 유토피아는 의미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유토피아는 이상향으로서, 사람들 간의 비교우위 없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동산'쯤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난 상황은 모든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 직면하기 마련인데, 불확실한 미래에서 어떻게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녀의 연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풍요로움이 반드시 우리를 평화롭게 하는 절대적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웃과 공영하는 길이야말로 우리에게 행복한 마음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참 이상한 나라' 동영상. 사진/해당 영상 캡처
    '참 이상한 나라' 동영상. 사진/해당 영상 캡처

    그럼에도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솔닛의 연구의 대상이 되는 재난은 가난한 이들을 엄습했다는 점이다. 2005년 뉴올리언스의 대홍수만 해도, 도심에서 밀려난 저지대의 자리를 잡은 빈민들이었으며, 인종적으로도 대부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었다. 어쩌면 가난한 이들은 잃을 것이 없기에 나누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생존을 위한 투자이자 저축이기 때문이다. 내가 돕듯이 누군가도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이타적 행위라는 말이다.

    가까운 과거, 우리 민족은 지극히 극심한 재난의 연속에서 생존을 도모해 왔다. 조선 말기의 삼정의 문란에서 일제강점기의 수탈, 해방 후 곧바로 이어진 동족상잔의 비극, 두 차례에 걸친 군인들의 쿠데타, 독재정권의 폭압 정치, 이제 살만하니까 벌어진 외환위기, 그리고 현재 직면하고 있는 코로나 사태, 어디 쉴 틈이나 있었나 싶다.

    그러나 가만히 톺아보면 우리는 사회가 리셋된 경험을 여러 차례에 걸쳐 경험했고 한편 그것을 극복해 왔다. 성찰의 도구로 삼을만한 과거의 기억이 우리에겐 이미 '사회적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터전에서 오뚝이처럼 일어났고 독재정권과의 오랜 투쟁 끝에 빠르게 민주주의를 온몸으로 실천한 국민이 되었으며 경제위기 또한 현명하게 극복해 왔다. 현 상황도 극복할 것이라는데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경험한 수많은 난관은 우리를 강인하게 만들었고 한편 면역력을 키우게 했다. 가까이는 2012년 메르스 사태로부터 부끄러움을 배웠고, 멀게는 전쟁의 상흔을 딛고 공존의 길이 무엇인지 학습해 왔다. 그러나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어려웠던 과거를 호명하여 반면교사로 삼고 소환된 과거를 다시 미래에 투사했을 때야 만이 우리의 삶은 진보한다는 사실이다.

     

    '참 이상한 나라' 동영상. 사진/해당 영상 캡처
    '참 이상한 나라' 동영상. 사진/해당 영상 캡처

    지금 수많은 나라들이 코로나 사태로 패닉에 빠져있다. 평소 선진국으로 평가받던 국가들이 우리나라로부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솔닛의 표현을 빌리자면, 분명해 보이는 것은 그들은 여태껏 우월의식으로 자만에 빠져있던 엘리트국가들이다. 그들이 패닉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성찰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같은 사실 또한 우리는 거울로 삼아야만 한다. 아직 코로나 사태가 종식된 것은 아니기에 말이다.

    국민적인 자부심 못지않게, 빠진 부분이 무엇인지, 소외된 이들이 누구인지, 각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도모해야 할 때다. 성경 말씀처럼 이 또한 지나가겠으나,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재난 상황은 우리네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한 '미래의 역사에 지금 우리는 어떤 변곡점으로 기록'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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