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네마] 세상에 없는 영화 '28개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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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 시네마] 세상에 없는 영화 '28개월 후'

    • 입력 2020.03.30 11:01
    • 수정 2020.03.30 11:32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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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영화 '28개월 후'는 '세상에 없는' 영화이다. 소문은 무성했으나 아직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다. 영국의 대니 보일 감독은 저예산 좀비영화 '28일 후'를 성공시키고 나서 후속 작으로 '28주 후'를 제작한다. 전작 못지않은 작품성으로 흥행은 물론 비평시장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았다. 이에 고무되어 '28개월 후'를 제작하겠다고 천명했으나 더 이상 이 시리즈가 진행된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팬심의 기대를 저버린 '28개월' 후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무형의 전설로 남아있다. 아마도 좀비바이러스 창궐 28개월 후를 상상하는 것이 세상의 종말 이후를 그리는 것보다 더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비극을 직시하기엔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일개 대상으로서 숙주이지 아닐까라는 자각이 영화를 만드는데 주저하게 하고 있는 듯싶다.

    좀비 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 '28일 후'의 주인공들은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주인공 짐은 대담하고 용감한 모습이기보다는 비겁하고 때론 비열하다. 서서히 변해가긴 하지만 여타의 영화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영웅적인 면모는 아무래도 약해 보인다. 

    여자 주인공 셀레나도 일반적이지 않긴 마찬가지다. 생사의 기로에서 일반화할 수 있는 게 어디에 있겠는가. 그녀의 원칙은 '서바이벌' 자체에 있고, 사랑하는 이라도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가차 없이 20초 내에 죽여 버린다. 이내 좀비로 변해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를 숙주를 미리 처단해야만 자신의 생존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생존자들을 만나고 또 희생되기를 반복하다가 끝내 살아남은 이들은 짐과 셀리나, 그리고 중학생쯤 되는 여자아이 해나 세 사람뿐이다. 이들은 마침내 사태를 수습하러 현장에 급파된 군대에 의해 구조된다. 그러나 밤이 되자 군인들은 태도가 돌변한다. 주인공들을 겁박하고 겁탈하려든다. 이제 좀비로부터 벗어나나 싶었는데 새로운 적을 만난 것이다.

     

    사진/영화 '28일 후' 스틸컷
    사진/영화 '28일 후' 스틸컷

    영화의 결말은 짐이 기지를 발휘해 셀레나와 해나를 구해내지만 그만 복부에 총상을 입고 만다. 여러 날이 지나고 셀레나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사경을 헤매나 짐은 깨어난다. 드디어 그들은 생존자를 찾는 헬기에게 구조신호를 보내고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결말 외에도 세 개의 엔딩이 더 있다. 대니 보일 감독과 각본의 알렉스 가렌드가 쓴 최초의 의도는 주인공 짐이 죽는다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사람들에게 모니터를 해 본 결과, 최종적으로 희망적인 결말로 끝내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말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감독은 세 가지 버전을 극장개봉 후 출시한 DVD에 집어넣었다. 관객들이 선택에 맡긴 것이다. 저자의 의도보다 혹은 투자에 자유로울 수 없는 제작자의 뜻 같은 것은 배재한, 말하자면 '선택적 열린 결말'을 시도했다. 일종의 포스트 모던 전략인데, 독자들에게 주체를 넘김으로써 살아있는 텍스트를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사진/영화 '28일 후' 스틸컷
    사진/영화 '28일 후' 스틸컷

    이러한 형식 실험은 어쩌면 코로나 사태로 우리가 직면한 상황과 맥락이 상통한다. 팬데믹(대유행)이 선언된 코로나19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급진전하고 있다. 이미 대유행 이후 이미 감염자는 50만이 넘어섰고 3월 말 현재, 사망자수 만도 3만에 육박한다. 

    그런데 세계 각국의 상황은 저마다 다르다. 이탈리아는 전 세계 사망자수의 삼분의 일을 넘는 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유행 초기, 중국 다음으로 확진자가 많았던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9천여명을 상회하지만 희생자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물론 숫자가 중요하지는 않을 수 있다. 몇 명이 죽던 당사자로선 '세상의 종말'이기에 이미 비극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서 '28일 후'처럼 전혀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올림픽을 개최해 경제적 손실을 줄이려 통계를 조작해 바이러스확산을 방조하고 있었다는 의심을 받던 일본의 경우 IOC가 올림픽개최연기를 발표하자마자 확진가와 사망자 수가 급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투명하지 못한 결과이다. 한 나라의 정부와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서 결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인류의 60%가 감염돼 면역력이 생겨야 종식된다는 기사를 접한다. 이러한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28개월' 후는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현재의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사태로부터 28개월 후는 반드시 온다. 그 때 전 세계 각국이 맞이하는 '결과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가능한 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하고 신속하게 감염자들을 치료해 사람을 살리고, 그 사이 백신개발에 성공해 보다 많은 사람을 살릴 것인가는 바로 우리의 몫이다.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우리가 주체로서 일상과 삶을 올곧이 영위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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