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네마] 영화 ‘신문기자’, 어떤 정부를 지향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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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 시네마] 영화 ‘신문기자’, 어떤 정부를 지향해야 하는가!

    • 입력 2020.03.23 10:21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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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지난 6일 일본열도로부터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배우 심은경이 제43회 '일본아카데미영화제'에서 영화 '신문기자'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다.

    기자로서 소명을 지키려는 요시오카(심은경 분)와 정부의 명백한 비리를 목도하고 내부 고발하려는 내각 정보실 요원 마츠자카, 두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개의 갈등라인이 상대적이기 마련이지만 '신문기자'에서의 갈등은 절대적이다. 다시 말해 타인이 개입되지 않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묻고 있다. 요시오카의 책상에 붙여있던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믿고 의심하라'라는 모순된 명제 앞에 우리는 어떤 선택지를 택할지 고민하게 된다. 

    영화에는 일본의 수반인 아베 총리가 연루된 사학 비리 스캔들과 개헌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준비하는 일본 극우의 준동 등 일본사회의 크나큰 이슈들이 잘 버무려져 있다. 극중 설정은 일본 내각의 수뇌부와 공안이 극비리에 바이러스 연구에 특화된 신규대학설립을 가장해 생화학 무기를 연구하는 기관을 운영하려는 공작을 벌이는데서부터 출발한다. 플롯에 녹아있는 일본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국가적 차원의 초법적 비리에 대한 상징은 은유적이라기보다는 직접적이다.

     

    영화 '신문기자' 스틸컷
    영화 '신문기자' 스틸컷

    이는 이른바 혼내라는 일본의 정서를 배반한다는 면에선 전복적이다. 하지만 그 결말은 주인공의 응시를 통해 그 책임을 시민사회에 묻는다는 점에서 매우 우회적인 태도를 취한다. 짜릿한 결말을 통해 실체를 가리는 것보다 열어놓음으로써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쪽을 택했다. 예의 일본영화 특유의 경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 시민사회의 입장에선 만만치 않은 질문에 적잖이 당황케 하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 다시 말해 지각 있는 일본의 시민이라면 다 알아챌 수 있는, 쉽지만 쉽지 않은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자신을 의심하고, 주권자로 스스로 자기 자신을 믿기를 주문한다. 이로써 시민들이 손을 잡고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열린사회의 적들과 싸울 준비가 돼 있는지를 묻고 있다.

    그런데 주인공 요시오카가 유력일간지 미국주재 특파원이었던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는 설정은 극중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미숙한 일본어를 구사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배역을 염두하고 쓴 시나리오로 보는 게 좋을 듯싶다. 왜냐하면 영화 곳곳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일본사회 특유의 위계적 관계가 그들 시민사회 내부의 동력만으론 그 외피를 깰 준비가 멀었다는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시오카가 신문사 편집국장을 설득하는 과정조차 등장인물들 간의 팽팽한 부딪힘보다는 허락을 득하는 수순을 밟아간다는 점에서 가부장적으로 비춰졌다.

     

    영화 '신문기자' 스틸컷
    영화 '신문기자' 스틸컷

    또한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임에도 레거시미디어인 일간신문에 활자로 올라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하는 기자들의 모습에서 일본사회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았다. 이미 관변기관 역할을 하는 일본의 여러 보수신문 매체가 쏟아내고 있는 왜곡된 뉴스들을 우리는 이미 온라인을 통해 보고 듣고 있기 때문일 게다.

    어떻게 보면 투명하지 않은 일본 정부의 국정운영과 궤를 맞춰 가짜와 거짓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수구매체와의 짬짜미가 일본사회 전반에 눈가리개를 씌운 형상은 아닌지 의심케 한다. 영화에서 내부 고발인이 신문사에 보낸 서류의 맨 앞장에 암호처럼 양 한 마리를 그려 넣은 그림에 눈 부분이 까맣게 칠해져 있는 이유에 대한 해석이다.

    밀실의 정치가 민주주의와 궁합이 맞을 수 없다. 투명하지 않게 운영되는 국가를 의심하게 되는 것은 시민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가져야할 소양이다. 때문에 우리사회는 촛불을 들어 배후에 숨어 국정을 농단한 세력을 몰아낸 경험이 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형식으로만 존재하면 된다"는 영화 속 섬뜩한 대사처럼 한 국가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선 부단한 성찰은 물론 투명한 정부운영이 기반이 돼야 한다. 따라서 어떤 어려운 일에 직면하더라도 투명하게 일을 풀어나간다면 그 정부는 시민사회로부터 믿음을 잃지 않으리라본다.

    여하튼 '신문기자'는 영화가 아니라 르포에 가까워 보였다. 국가라는 그늘 밑에서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잃고 자기 자신을 의심하며 살지, 아니면 뜨거운 땡볕아래 서로를 믿고 가림막이 돼주는 민주주의를 곁하고 살지, 코로나 사태와 방사능 피해가 예상되는 불투명한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향후 일본 정부와 시민사회가 어떤 결정을 할지 몹시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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