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슬픔의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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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슬픔의 비화

    • 입력 2020.03.11 09:45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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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의 비화 

                                              문 현 미

     

    어떤 슬픔도 거짓 슬픔은 없다

    온몸으로 밀쳐내고 싶은 슬픔
    나도 모르게 나를 짓누르는 슬픔
    너에게서 밀려오는 또 하나의 슬픔

    어제는 슬픔의 속도로 날아가고 싶었고
    오늘은  미친 듯 슬픔과 강을 건너고 싶고
    어느 때라도 피하고 싶은 야생의 슬픔이
    들숨 날숨 가운데 점령군처럼 포위한다

    슬픔이 배인 눈물 한 방울이 살아 있는 한
    증발하지 않는다, 슬픔의 순도는

    슬픔의 절정 한가운데 사람 냄새 물씬 나는
    피가 꿈틀거린다, 슬픔이 사라진 그때에도
    여전히 체관을 타고 흐르는 진액

    애써 슬픔을 감추고, 포장하고, 토닥이지만
    몸속 선천성 모순의 그림자를 스스로
    밟고 살아가는 슬픔 몇 가닥

    모든 인간은 슬퍼할 그 때 사람이다

     

    *문현미:1998.『시와시학』등단.*백석대학교국어국문과 교수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나는 시인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세월호 침몰 때도 그 꽃다운 아이들의 죽음 때문에 그랬고, 요즈음의 코로나 사태에도 그저 무력함만을 자탄한다. 무력한 시인의 슬픔의 비화를 쓸 뿐이다. 마냥 불안하고 아파서 슬픔의 일기를 쓸 뿐이다.

    그런데 슬픔의 밑바탕에는 가장 인간적인 ‘인仁’의 성정이 자리하고 있다. 맹자의 인지단仁之端은 측은지심에서 우러나온 슬픔이다. 그러므로 슬픔의 절정 한가운데는 언제나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피가 꿈틀거린다. 야생의 슬픔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슬퍼할 그 때, 사람 냄새가 난다고 이 시는 은유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온통 슬픔과 아픔과 불안으로 가득 차 떨고 있다. 도시도, 거리도, 사람도 모두 숨죽여 엎드려 있다. 들숨, 날숨 가운데 점령군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 1월 말에 일어난 그 점령군은 기하급수로 늘어나 확진자는 3월 8일 현재 7천 명을 넘어섰다. 목숨을 잃고 떠난 이도 50여 명이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슬픔을 넘어 죽음과 아픔의 공포에 떨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슬픔이 배인 눈물 한 방울이 살아 있는 한 이 아픔은 증발할 것이다. 온 천지가 봄의 새싹을 밀어 올리듯, 온 국민이 온몸으로 밀쳐내고 있는 이 슬픔 또한, 우리의 깊은 심지心志가 되고 뿌리가 되어 민족혼을 세우는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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