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네마] 영화 '컨테이젼', 바이러스는 어떻게 전파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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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 시네마] 영화 '컨테이젼', 바이러스는 어떻게 전파되는가?

    • 입력 2020.03.09 14:11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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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연출의 영화 '컨테이젼'은 비슷한 소재의 어떤 영화보다도 그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다. 대개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영화들이 음모론에 기반한 미스터리 스릴러 구조를 취하거나 좀비물과 같은 장르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컨테이젼'은 재연 드라마 형식으로 다큐멘터리에 가까워 보인다. 한마디로 건조하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 

    서사 구조 역시 전염병 발생 이틀(Day 2) 후부터 백신이 개발되기까지 약 5개월의 과정이 선형적으로 나열돼 있다. 영화적 장치라면 Day 1을 맨 마지막으로 돌려 최초 감염이 어떻게 전파되게 됐는지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엔딩 몽타주 시퀀스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중간마다 플래시백처럼 표현된 신이 있긴 한데, 회상 장면이 아니라 극 중 질병통제예방센터(CDC)요원들이 CCTV를 모니터하는 장면들이다. 

    여타의 영화적 장치가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극의 몰입감은 남다르다. 리얼리티 때문이다. 오션스 일레븐(2001년 작)으로 유명한 소더버그 특유의 빠른 전개로 사건의 긴박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객관화시킨다. 이러한 편집은 극 중 인물에 이입하지 않고도 관찰만으로도 몰입이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설명을 자제하고 나열된 형식의 파편화된 화면은 어떤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관객을 각성시키기에 충분하다.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재연드라마 형식답게 영화에는 특정 주인공을 쫓아가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각각의 군상을 따라가다 보면 저마다 사정은 복잡해진다. 특히 안타까운 인물은 현장에 급파된 CDC요원 미어스 박사(케이트 윈슬렛 분)인데, 그녀는 주정부 공무원들의 관료주의에 매번 부딪혀 좌절감을 느낀다. 헌신적인 업무수행에도 끝내 바이러스에 감염돼 목숨을 잃게 된다. 반면 프리랜서 기자 앨런(주 드로 분)은 바이러스 관련 가짜 기사로 450만 달러라는 거액을 챙긴다. 검찰에 기소되긴 하지만 막대한 보석금을 내고 여유롭게 풀려난다. 스테레오 타입의 권선징악 같은 것은 아예 없다. 환영주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시쳇말로 리얼 다큐다.

    플롯 역시 밋밋한 선형구조로 돼 있다. 다만 영화적 시간을 거슬러 배치된 마지막 Day 1 신(Scene)만이 도드라질 뿐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매우 효과적인 배치가 됐다. 어떤 부연 설명도 없지만 동물과 인간 간에 종을 뛰어넘는 전염병의 원인이 환경파괴에 있음을 적시(摘示)한다. 박쥐에서 돼지 그리고 인간에게까지 전파되는 소위 인수 감염(人獸 感染) 경로를 압축해 보여준다.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그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무분별한 리조트 개발로 박쥐와 같은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당한다. 첫 번째 고리는 생존의 터전을 잃은 박쥐가 농가로 유입되면서 돼지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그리고 그 돼지를 유통시키는 과정에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바이러스가 전파된다. 안정적인 숙주를 찾은 바이러스는 빠르게 인간을 매개로 생존을 용이하게 하는 변종을 거듭한다. 그리고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는 팬데믹(대유행)으로 치명상을 입게 된다. 자연에 가한 상처가 곪아 부메랑이 돼 한바탕 인간계를 할퀴고 가는 것이다.

    위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미국으로 바이러스를 최초 유입시킨 슈퍼전파자로 등장하는 인물 베스 엠호프(기네스 팰트로 분)는 부동산 개발회사인 애임 엘더슨 사의 직원으로 설정돼 있다. 불도저로 정글을 밀어버리는 장면은 더 이상 첨언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이 영화가 환경 파괴를 고발하면서도 은근한 방식으로 순결주의를 행간에 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바이러스 감염 사례가 발생하게 된 데에는 베스가 저지른 불륜이 주요한 한 원인이 됐다. 베스의 남편 토마스(맷 데이먼 분)는 건강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어 감염의 위험에서 벗어나지만, 죽은 아내에게서 전염된 어린 아들은 목숨을 잃는다.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낙담하고 있는 남편 토마스는 감염 경로에 대한 역학조사를 하는 CDC요원으로부터 아내의 부정(不貞)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러나 슬픔과 분노로 복잡한 속내를 표현하기도 어렵다. 아직 면역력이 없는 살아남은 딸만이라도 반드시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아버지로서 토마스는 딸 조리에게 접근하는 주변 사람들을 극도로 경계한다. 특히 조리의 남자친구 앤드류가 다가오는 것을 막아서는 장면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 아내의 부정이 가져온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이자 순결주의에 대한 강박이 담겨 있는 것이다. 최초 발병의 원인이 환경 파괴였다면 동시다발적인 확산엔 분명 결혼서약을 깬 배우자의 부정이 한몫했음을 전재한다. 여기에는 미국적 이데올로기로서 청교도이즘적인 금욕주의가 기저에 깔려있다. 아내의 죽음을 알리는 의사가 원인불명으로 사망한 베스의 죽음을 전하며 말실수로 성병에 의한 쇼크를 언급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고도로 문명화된 글로벌한 사회에서 전염병의 창궐은 결코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사람은 매개적 동물이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사회는 첨예하게 네트워크화돼 가면서도 인간은 점점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이게 됐다. 전자가 환경파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면 후자는 금욕주의와 연계돼 있다. 어찌하든지 간에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미국의 청교도이즘에 기초한 가족주의가 새삼스럽게도 긍정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모두가 지혜롭게 이 난국을 이겨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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