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네마] 영화 '1917', 우리는 어떤 선을 따라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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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 시네마] 영화 '1917', 우리는 어떤 선을 따라가고 있는가!

    • 입력 2020.03.02 10:17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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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함께 92회 아카데미영화제에서 경합을 벌여 화제에 오른 작품이 있다. 바로 샘 멘더스 감독의 영화 '1917'이다. 무려 9개 부문에 후보작으로 노미네이트됐고, 이 가운데 촬영·음향믹싱·특수효과상 3개를 수상했다. 

    감독은 어린 시절에 들었던, 제1차 세계대전에 전령으로 참전한 자신의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솜씨 좋게 영상으로 재현해낸다. 현장감 넘치는 촬영과 재봉선이 보이지 않는 편집기술로 구현된 화면과 음향을 따라가다 보면 개인으로서 한 사람의 젊은이가 경험한 전쟁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절실하게 경험하게 된다. 

    부조리한 전쟁을 비극적 아이러니로 풀어낸 걸작은 아무래도 반전소설로 유명한 독일작가 E. M. 레마르크의 작품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수업시간에 담임선생 말에 속아 같은 반 친구들은 졸업과 동시에 자원입대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사실은 학도병으로 청소년들)이 겪는 전쟁은 그들이 상상한 명예와는 거리가 멀다. 어떤 명분도, 의미도 찾을 수 없는 허무 그 자체에 불과했다. 

     

    영화 '1917' 스틸컷
    영화 '1917' 스틸컷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지난한 참호전으로 인해 전장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마저 지쳐버린다. 그들은 그런 허무 속에 하나둘씩 차례로 무의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작가는 극의 마지막, 맑은 가을 하늘을 쳐다보며 전쟁을 버텨내던 주인공 폴 바우머 마저 기어이 전사자(戰死者)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전선의 상황을 알리는 한 통의 전보에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어디 있단 말인가?

    사실 20세기 초반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19세기 말 유럽 열강 간에 벌어진 식민지 쟁탈전이라는 이름의, '세계지도 위에 선긋기 게임'에서부터 촉발된 예정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유럽사회는 희망에 들떠있었다. 

     

    영화 '1917' 스틸컷
    영화 '1917' 스틸컷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과학 문명의 발달로 자신감에 충만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희망은 참호라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폐기됐다. 더 많은 식민지와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제국주의 욕망은 부메랑이 돼 유럽대륙을 진흙 구덩이의 생지옥으로 바꿔버렸다. 

    전시 초기 금방 끝날 것으로 여겼던 전쟁은 피비린내로 범벅된 채 지리멸렬하게도 4년을 끌게 된다. 참전국 간의 맹렬하면서도 무의미한 영토 쟁탈전은 식민지가 아닌 유럽의 한복판에 또 다른 형태의 '끝나지 않는 선긋기 게임'을 벌이다가 오천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남기고 겨우 막을 내린다. 한마디로 당시 인류가 상상하지 못한, 아니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무시무시한 참상이 펼쳐졌다.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 스틸컷'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 스틸컷'

    위에서 언급된 전자의 선긋기는 힘을 가진 자가 지도에 먼저 직선을 어떻게 긋느냐에 따라 피지배국들의 운명을 가르는 엽기적인 유럽열강들의 놀이였다. 유럽의 식민지가 된 국가와 민족들은 저마다 쌓아온 사회문화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당한 채 식민지쟁탈전이라는 광기의 역사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유럽이라는 비좁은 땅에서 벌어진 후자의 선긋기 역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밀어내기일 뿐이었다. 부연하자면 참호전이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전선을 두고 참전국 간에 총력전을 치러야 했던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역시 지리상 어떤 맥락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전자와 차이가 있다면 전선이 밀고 밀리는 가운데 유럽 특유의 완만한 구릉지의 곡선과 닮을 꼴을 이뤘다는 점이다. 제국주의 제복을 입은 냉혈한의 칼날이 벤 직선과는 상이한, 미로처럼 펼쳐진 참호의 전선은 꼬여만 가는 전쟁의 양상과 닮아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참호의 모습
    제1차 세계대전 참호의 모습

    참호와 참호 사이 죽음의 공간,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를 두고 좁다란 그물망을 이루며 전선은 유럽의 북쪽, 북해에서 출발해 내륙 깊숙이 스위스 산악지대가 시작되는 국경까지 이어진다. 그 총길이가 1000㎞나 되고,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참호만도 300㎞에 달했다. 

    참호 사이를 잇는 망들을 일직선으로 펼치면 지구 한 바퀴 둘레에 해당한 4만㎞에 달한다고 하니 사실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그 틈 사이사이 병사들이 빼곡히 앉아 수많은 포격과 전투를 견뎠다고 생각하면 더욱 머리가 복잡해져 버린다.

    그러나 지도상에서 보면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할 만큼 뺏고 뺏기는 '땅따먹기 전투'에 불과했다. 요약하자면 지구본 위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직선을 그을 권리를 맘껏 누리고자 하는,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고, 제힘을 과시하기 위해 적성국의 땅을 1인치라도 더 빼앗기 위해 젊은이들을 참호 속에 몰아넣고 몰살하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이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다.

     

    영화 '1917' 스틸컷
    영화 '1917' 스틸컷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끝날 것 같지 않은 참호의 선을 따라가고, 주검으로만 접근 가능한 노 맨스 랜드를 두 눈을 뜬 채 바라보며 건너게 된다. 또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선을 조금만 벗어나면 아름답게 펼쳐진 초원과 숲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역설적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현재형으로 끊지 않는 쇼트의 연결로 인해 마치 고도로 정밀화된 FPS(First-Person Shooter)게임을 제3의 관찰자의 시점에서 쫓아가는 리얼리티를 경험하게 된다. 

    다만 영화의 설정이 기존의 FPS 게임과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수행하는 미션이 '공격을 취소한다'는 명령을 전달하는 전령이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슈팅 행위가 상대적으로 자제되어 있다. 명분을 잃어버린 전쟁의 전투현장에서 더 이상 무의미한 죽음을 막기 위한 전령의 고군분투를 경험하는 것은 유의미해 보인다. 

    텍스트상으로 접하는 전쟁은 과거형이나 혹은 먼 미래형으로 위치되기 마련인데, '1917'에선 실상 전투는 현재형이라는 사실을 두 명의 전령이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레마르크가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현재형'으로 기술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기도하다. 이로써 우리는 영화를 보는 동안  반전(反戰)을 위해 '전투를 체험하게 한다'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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