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의 세상읽기] 민족의 소중한 유산 3·1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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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의 세상읽기] 민족의 소중한 유산 3·1 운동

    • 입력 2020.02.26 10:11
    • 수정 2020.02.26 14:38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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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성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김학성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3·1절을 기념하는 이유는 3·1 운동과 그 정신을 바로 알아야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역사를 쓸 수 있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역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3·1절 행사는 한낱 과거 역사에 대한 의례적 기념이 돼서는 안 되며 반일만을 확인하는 행사에 그쳐서도 안 될 것이다. 3.1 운동이 이루어진 1919년 당시 인구 1679만 중 200만 명이 넘게 투쟁대열에 참여했으니 3·1 운동은 일제에 대한 전 국가적 '항거'였다. 대규모 거사를 모의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던 총칼의 무단통치 시절이어서 전 국민이 봉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1 운동은 첫째, 국민이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해주었다. 조선이나 대한제국의 국민은 임금의 백성으로 신민(臣民)에 불과했지만, 3·1 운동은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며 모든 국민이 지배주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신민은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저항했고, 국민이 됐다. 

    둘째, 조선 및 대한제국과 결별하게 해주었다. 3·1 운동의 독립의지는 한 달 만에 상해임시정부를 출범시켰고, 임시정부는 대한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희생했고 헌신했다. 순종이 버젓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는 왕조복귀 대신 공화국을 선택했다. 나라를 빼앗긴 군주에 대한 책망이었다. 대한이란 국호사용과 관련해 대한은 망한 국호이며 일본에 합병된 국호이니 사용하지 말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대한은 일본에게 빼앗긴 국호이니 다시 찾아 독립했다는 의미를 살리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대한이 국호로 유지됐다.
     

    3·1 운동 당시 덕수궁 앞 모습.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3·1 운동 당시 덕수궁 앞 모습.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셋째, 불의에 눈감아서는 안 됨을 보여줬다. 대한은 동방의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였지만 어두운 시대에 좌절하지 않았고, 대동단결해 함성과 외침만으로 모든 불의에 용감히 맞섰다. 3·1 운동 전후로 우리 민족은 중국, 미국, 러시아 등에서 일본에 무장으로 항거했고 독립을 얻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경주했다. 일제는 '수많은 유관순'을 감옥에 가두었지만 그들의 독립의지까지 가두지는 못했다.
     
    넷째, 제국주의의 탐욕을 꾸짖었다. 1910년대의 국제정세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자신들의 배를 마음껏 채우던 탐욕의 시기였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가지게 됐고,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에 대한 독점권을 열강으로부터 인정받자,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았다. 3·1 운동은 이러한 제국주의에 반기를 들었고, 침략자 일본의 오만을 꾸짖었으며 전 세계 약소민족에게 희망을 가져다줬다. 3·1 운동 이후에 등장한 간디의 불복종 운동, 중국의 5·4 운동도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3·1 운동의 영향으로 된 것이며 이는 아시아 · 아프리카 모든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히사시가미라 불리는 일본식 헤어스타일 때문에 기생이라고 오해받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3·1운동 첫날의 만세시위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히사시가미라 불리는 일본식 헤어스타일 때문에 기생이라고 오해받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3·1운동 첫날의 만세시위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다섯째, 의로운 분노를 깨우쳐 주었다. 분노를 모르는 자는 자립할 수 없다. 당시 아시아 전체를 휩쓸었던 막강한 일본의 군사력에 대한 분노 표출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3·1 운동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분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줬다. 의로운 분노는 계산을 모르기에 엄청나게 큰 힘과 동력을 만들어낸다. 한국인의 힘과 저력은 분노의 원류인 3·1 운동에서 나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고 세계는 여전히 탐욕스럽다. '미중일러'의 동북아의 흐름은 예나 지금이나 도도하며 우리의 현재도 동북아의 격랑 한가운데 놓여 있다. 과거와 다른 것이 있다면 한반도가 두 동강 난 상태에서 대립하고 있다는 점뿐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이념·계층·세대 간 대립과 갈등에 놓여있고,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특히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너무 심해 국민통합이 불가능할 정도로 국론이 분열돼 있다.
       
    3·1 정신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한민족 근대정신의 뿌리다. 우리는 불가능에 도전한 선조들의 항거 정신을 되새기며 1910년의 국권 피탈의 원인을 냉철히 돌아보아야 한다. 3·1 운동은 국권침탈의 고초를 겪으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자주독립의 굳건한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더 없이 소중한 우리 모두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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