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네마] 영화 ‘극한직업’과 ‘프랜차이즈’의 본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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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 시네마] 영화 ‘극한직업’과 ‘프랜차이즈’의 본래 의미

    • 입력 2020.02.10 09:39
    • 수정 2020.02.10 10:33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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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화가 박수근에 관한 일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젊은 시절 박수근은 평등주의 사상에 고무돼 있었던 듯싶다. 귀갓길에 자식들에게 사다 줄 사과를 한 봉지 사더라도 그는 시장에 있는 모든 과일가게를 들렀다고 한다. 각 상점에서 한 두 개씩 사과를 사서 가족이 먹을 양 만큼을 모아 집으로 가져갔다는 말이다.

    사실 그는 미군 부대 PX에서 군인들을 상대로 손수건에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던 가난한 화가였다. 그러나 그는 꾸준히 국전에 응모해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작품 활동도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의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한 민중의 삶 속에서 공감을 통해 공유의 정서를 실천한 진보적 예술가이기도 하다. 

    화가 故 박수근(1914.2.21~1965.5.6)
    화가 故 박수근(1914.2.21~1965.5.6)

    박수근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가 박완서의 데뷔작이자 자전소설인 '나목(裸木)'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박완서는 젊은 시절 박수근과 직장동료로서 인연이 있다. 그녀는 화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파리 하나 없는 앙상한 나무들이 죽은 고목(枯木)이 아니라 여름의 찬란한 녹음을 위해 지금은 발가벗고 있는 가난한 나무(裸木)라는 은유로 소설의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불쑥 박수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데는 얼마 전 영화 '극한직업'에서 극 중 마 형사역으로 출연한 배우 진선규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전한 에피소드 때문이다. 그가 밝힌 훈담(薰談)은 영화에 출연한 주요 배우들이 모두 치킨 광고의 섭외에 응하지 않기로 했고, 또 그동안 철저하게 그 약속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아마도 만약 출연배우들이 특정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과 광고계약을 맺었다면 그 출연료가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극구 사양했다고 하니 미담임이 분명하다. 영화의 모티브에 녹아있는 프랜차이즈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의 애환과 희망의 정서를 공유하고 실천하고자 판단한 그들의 선택은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분명 훌륭한 사례로 전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영화 '극한직업' 스틸컷
    영화 '극한직업' 스틸컷

    본래 프랜차이즈란 단어의 의미는 '특권'을 뜻한다. 좁은 의미론 선거권을 말하는데, 국가가 개인에게 부여한 권리를 일컬음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민주적인 국가가 국민들에게 선거로 대표를 뽑을 수 있는 권력을 분배함으로써 되돌아오는 변증법적인 방식으로 그 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현대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이다. 조직과 개인이 일종의 권한을 나누고 상호 간에 윈윈을 도모하는 모델이랄 수 있다.

    반면 현재에 와선 마케팅 전략의 차원에서 운영되는 비즈니스 모델로 그 의미가 바뀐 지 오래다. 그간 프랜차이즈 사업엔 본사의 '갑질' 행태와 같은 부정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본래의 취지대로라면 건강한 프랜차이즈 모델은 모기업의 횡포보다는 본점과 프랜차이즈 지점과의 상호 호혜적인 방식으로 상생을 추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마땅하다.

    흥미롭게도 프랜차이즈 치킨 가게를 소재로 한 영화 '극한직업'에 등장한 배우들이 이미 시장을 선점한 프랜차이즈 치킨 회사와의 광고계약을 맺지 않음으로써 본래 프랜차이즈란 단어의 의미를 회복했다. 다시 말해서 화가 박수근이 나눔을 실천하는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평등을 실천했다면 역설적이게도 극한직업에 출연한 배우들은 적극적인 거부로써 실천을 수행한 것이다.

    여하튼 화가 박수근이 일상에서 실천한 공유의 정서는 일종의 균형감이랄 수 있는데, 같은 맥락에서 영화 극한직업의 배우들 역시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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