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쉼터] 트로트 인기의 재점화가 말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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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연예쉼터] 트로트 인기의 재점화가 말해주는 것

    • 입력 2020.02.03 10:14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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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트로트 인기가 재점화되고 있다. 진원지는 ‘가요무대’나 ‘전국노래자랑’이 아닌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이다. 송가인을 10년 무명 생활을 벗어던지고 일약 스타로 탄생시킨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의 열기를 이어받아 더 큰 조명을 받고 있다.

    ‘미스터트롯’은 방송 5회만인 지난 30일 전국 시청률 25.7%(닐슨코리아)로 종합편성채널 탄생 후 9년간 방송된 전 프로그램을 통틀어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JTBC ‘스카이캐슬’이 마지막 회(2019년 2월)에서 기록했던 종전 최고 시청률 23.8%를 가뿐히 뛰어넘은 것이다.

    방송시간이 영화보다 더 긴 2시간 35분간인데도 시청률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는 워낙 다채로운 트로트 가수들이 노래뿐만이 아니라, 각자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어필했기 때문이다.

    정말 ‘미스터트롯’을 보고 있으면, 실력 있는 트로트 가수들이 이렇게 많을지를 미처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트롯귀공자’ 임영웅, ‘트롯파바로티’ 김호중, ‘찬또배기’ 이찬원, ‘트로트 신동 출신’ 김희재, ‘국민손자’로 부상한 정동원, ‘트로트 BTS’ 장민호 등 가창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참가자가 너무 많다. 이런 친구들이 출전하니 빅매치가 이어지고, 흥미와 흥행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은 그동안 왜 음악프로그램에 나오지 못했을까? 다채로운 트로트 가창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가수 찾기에 소홀했던 TV 제작 관계자의 성찰이 있어야겠다. 한마디로 물갈이가 필요해 보인다.

    트로트는 엄연히 대중음악의 한 장르지만, 두 해전만 해도 매스컴의 무관심 속에 푸대접을 받아왔다. 뽕짝으로 비하되고 서자 취급을 당했다. 지상파는 KBS 정도만 트로트 가수를 구색용으로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트로트는 노래방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나훈아는 2002년 1월호 ‘월간조선’ 오효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노래가 뽕짝일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입니다. 우리는 밥 먹고 나서, 아니면 술 한잔 먹고 나서, 기분이 좋으면 젓가락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춥니다. 여기에 (실제로 손으로 장단을 치며) 가장 잘 어울리는 리듬이 뽕짝입니다. 밥도 먹었으니 배도 부르고, 술도 한잔 먹었으니 기분 좋죠. 그럼 장단 맞춰 흥얼거리며 노래를 하는 겁니다. 이기 바로 뽕짝입니다”라면서 “미국에선 한국식 뽕짝이 나올 수가 없어요. 미국 사람들은 땅이 하도 넓어서 말을 타고 다니게 돼 있어요. 그래서 말잔등 위에서 말발굽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릅니다. 떠그덕, 떠그덕, (노래 부르며) 「아이 원어 고 홈」…. 이게 미국 뽕짝이에요. 반면 우리는 걸어 다녔어요. 걸어 다닐 때의 리듬이 또 바로 뽕짝이에요. (발바닥 장단을 치며)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그런데 지금 집은 없어도 차는 갖고 있는 시대가 됐어요. 그래서 우리 뽕짝도 달라지고 있어요. 조금 리듬이 빨라지고 있습니다”라며 특유의 젓가락론을 펼친 바 있다.

    트로트는 지금도 여전히 MT와 회식, 행사를 신나게 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를 문화적 순기능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트로트가 뒤로 빠져 있었던 것은 평가와 경쟁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TV에 나오는 트로트 가수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신인이 나오지 않는다. 신인이라는 떡잎은 있지만 그것을 발굴해주는 시스템이 부재하다. 한마디로 긴장감 제로 구역이다. 그런데 그들보다 노래를 잘 부르는 트로트 가수가 부지기수임을 알게 됐다. 이건 정당하지 못하다.

     

    '미스터트롯' 방송화면 /사진=TV조선 
    '미스터트롯' 방송화면 /사진=TV조선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 대박을 친 것은 TV에서 못보던 가창력 좋은 트로트 가수가 많았던 게 큰 이유다. 그것도 다양한 종류의 스타일과 가창력으로. 그래서 나는 트로트 오디션(서바이벌)이 좀 더 많이, 좀 더 다양하게 열리기를 제안한다. 그래야 실력있는 신인들이 계속 나올 수 있다.

    내가 만약 ‘미스트롯’ PD였다면, 출연자들의 의상(스타일)을 최대한 품격 있게 입고 와달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트로트 가수 하면 반짝이 옷 아니면 원색 의상이 연상된다. 그런 촌스런(좋게 말해서 서민적인) 느낌을 바꿔 세련되고 품격있는 스타일의 트로트 가수를 부각시켜 트로트의 이미지까지 바꾸고 싶다. 하지만 ‘미스트롯’은 붉은색 드레스에 미스코리아 미인대회 콘셉트를 차용하다 보니, 저급하다는 지적도 나온 바 있다.

    이미자, 주현미 등 트로트 대스타들이 “나는 트로트 가수가 아니다”고 한 적이 있다. 물론 이미자는 왈츠, 스윙도 불렀고, 주현미는 발라드를 부르면 트로트 가수라기보다는 백지영이나 왁스 계열의 애절한 분위기가 난다.

    트로트 가수가 트로트를 부정하는 것은 이 용어가 가진 협소함과 부정성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트로트 하면 왜색이고, 반짝이 옷에 유행과 상관없는 촌스러운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행사를 뛰려고 부르는 노래(또는 가수) 같은 이미지도 있다.

     

    송가인
    송가인

    트로트는 일제강점기에는 신세대들이 부른 노래다. 1930~40년대 동아일보에는 젊은 애들이 저런 노래(트로트)를 불러 어떻게 하겠냐 하고 기성세대들이 탄식하는 모습의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신세대는 구세대가 돼 ‘도발’보다는 ‘체제안정’의 이미지가 강해졌다. 대중문화란 시간이 지나면 올드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보편적인 정서에 품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시도가 이뤄져야 하는 데, 트로트는 그렇지 못했다. 트로트의 단세포적인 가사들이 새롭고 발랄하게 바뀌어야 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아주 그냥 죽여줘요~’ 같은 원색적 표현은 지양했으면 한다.

    쉬우면서도 상징과 비유가 포함된 재기발랄한 가사들이 나왔으면 한다. 요즘 노래는 멜로디 못지않게 가사가 중요하다. 앨범마다 메시지를 던져 세계관을 형성하는 방탄소년단을 보면 가사(스토리텔링)의 비중이 더욱 커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트로트는 가사가 별로 분석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건 가사가 쉽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오래전부터 트로트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왜색성, 이식성이고 또 하나는 품격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전자는 이제 극복돼 논할 가치도 없어졌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시작됐냐가 아니라, 우리의 정서를 얼마나 반영해 공감대를 형성하느냐다.

    우리 트로트는 스탠더드 팝 등이 섞여 있어 엔카와는 많이 다르다. 시간이 흘러 장윤정의 ‘어머나’는 폴카 리듬의 ‘흥(興)’이 가미되며 선배의 ‘한(恨)’의 트로트와 또 다른 느낌을 줘 ‘네오 트로트’로 불렸다. 트로트에 록, 힙합(랩), EDM, 어쿠스틱, 소울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할 수 있고, 실제로 ‘트로트엑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에서 이런 점을 보여주고 있다.

    트로트가 품격이 없다는 점도 동의하기 힘들다. 설령, 동의해도 좋다. 지금부터 품격을 높이면 된다. 아무 곳에서나 불린다는 점이 수준 낮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보편성을 지닌 것이다. ‘미스터트롯’을 온 가족이 함께 본다는 시청자들이 많다. 트로트는 흔치 않은 세대교감, 세대통합의 노래다.

    트로트 후배들은 ‘이미자, 나훈아, 남진, 주현미, 장윤정 워너비’가 되려고 하기보다는 독자적인 컬러로 승부를 걸어야 트로트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다. 실제 그런 모습이 ‘미스터트롯’에서 나타나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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