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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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봄밤

    • 입력 2022.03.02 00:00
    • 수정 2022.03.02 16:03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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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밤 
     
                                              김정미

     

    까마귀 부리는 그날 운세였다

    환풍기 날개 깊숙이 붉은 패를 밀어 넣고

    아랑곳하지 않는 사이, 제발과 잠시 사이

    불타버렸다

     
    고딕의 자세를 놓쳐버린 기둥모서리들이

    홀로 어두워져 얼룩을 남기고 흐느끼다가 깊어졌다

     
    오늘은 비를 맞아도 젖지 않는다는 이상한 점괘처럼

    죽은 새를 죽은 패로 자꾸 잘못 발음했다

    퉁퉁 불은 손금에서

    검은 재가 묻은 새를 본 것도 같다

    울면 아무래도 나쁜 패를 손에 쥐는 일이어서

    나는 조용하게 눈물 밥을 지었다

     
    깊은 어둠들이 고요를 건너와 나를 응시하는

    저, 적의 가득한 눈동자를 어디서 보았을까

    모른 척 하고 싶었지만 모른 척 할 수 없는

    부리 잃은 봄밤이었다

    *김정미: 2015년 「시와 소금」 등단. 2008년 동서커피 전국공모 수필부문 최우수상 수상.  
    *시집 「오베르밀밭의 귀」 「그 슬픔을 어떻게 모른 체 해」, 산문집 「비빔밥과 모차르트」 등.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봄밤’! 참으로 서정적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제목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암시하는 분위기는 사뭇 어두운 이미지다. 운명론적인 어떤 사건과 상황을 묘사한 시다.

    신화에서는 ‘운명론’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일찍이 그리스의 호메로스는 모든 인간사(人間事)를 신의(神意)에 종속시키는 비인격적 힘의 존재를 믿고 그것을 모이라라고 불렀다. 또 헤시오도스는 운명을 주관하는 3명의 여신에 관해서 말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모이라라고 불리는 이 여신들 가운데 인간의 탄생을 주관하는 클로토는 생명의 실을 뽑아내고, 라케시스는 모든 인간들의 생애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며, 가장 연장(年長)인 아트로포스는 생명의 실을 끊는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초월적인 존재, 즉 신들에 의해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예측 불가하게 일어난 어떤 사건을 다분히 운명론적인 것에 귀결시켜 암시적으로 시를 전개하고 있다. “까마귀 부리는 그날 운세였다”라든가 혹은 “오늘은 비를 맞아도 젖지 않는다는 이상한 점괘처럼/죽은 새를 죽은 패로 자꾸 잘못 발음했다”에서 화자는 어두운 심상과 불온한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특히 “퉁퉁 불은 손금에서/검은 재가 묻은 새를 본 것도 같다”는 등의 진술은 현실적 인식을 넘어 운명론적인 체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정서적 환유다.
     
    릴케는 말한다. “시는 감정이 아니라 체험이다”라고. 이 시의 화자는 어떤 불온한 꿈, 혹은 재난의 비의가 함의된 체험을 운명론적인 미학으로 시적 알레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 운명론적인 재난은 “검은 재가 묻은 새를 본 것도 같다”고 환유한 이미지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검은 재가 묻은 새”라는 것은 결국 ‘불에 타 죽은 날짐승’을 상징화 한 것이다. 이렇게 화자는 ‘봄밤’에 일어난 어떤 비극적 사건과 상황을 담담하면서도 유연한 암시로 승화시켜 시적 우월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상징성이 곧 시의 고고한 품격이자 시적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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