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쓰레기] 중. 캔 10원, 페트병 15원···고물상 대신한 회수 로봇 ‘네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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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되는 쓰레기] 중. 캔 10원, 페트병 15원···고물상 대신한 회수 로봇 ‘네프론’

    춘천시 4억원 이상 들여 자원 수거기 설치
    한 자루 가져와 매일 포인트 모으는 시니어
    수거 기기 용량 제한돼 허탕 칠 때도 빈번
    경제적 효과는 아직 부족, 시민 의식은 확대

    • 입력 2022.02.20 00:02
    • 수정 2022.02.28 14:32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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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 주워 용돈 벌이하는 시니어
    최저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진 지난 16일 오전 11시 30분쯤 석사동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캔·페트병 자동 수거기(기기명 ‘네프론’) 앞에 시니어 두 명이 큰 자루를 들고 한참을 서 있었다. 모자와 마스크로는 미처 가려지지 못한 노인의 귀가 빨갛게 얼어 있었다.

    자동 수거기를 통해 1인당 하루에 적립할 수 있는 용량은 캔과 페트병을 합쳐 100개 정도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이모(66·석사동)씨는 그의 사정을 알고 동네 이웃들이 함께 모아준 캔과 페트병을 들고 와 이곳에서 매일 포인트로 교환한다. 본인과 남편, 동생 등의 아이디를 활용해 한 번에 200~300개를 적립한다.

    지난해 8월부터 매일 같이 수거기를 이용하고 있다는 안모(70·석사동)씨도 투명 페트병을 모아 자루째 들고 왔다. 이미 아침 일찍 방문했지만, 기기 용량이 가득 차 발길을 돌렸던 안씨는 이날 두 번째 수거기를 찾았다. 안 씨 역시 여러 개의 아이디를 이용해 200여개의 페트병을 기기에 넣었다.

     

    투명 페트병을 한 자루 가득 모아 온 안모(70·석사동) 씨가 지난 16일 춘천시 석사동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캔·페트병 자동 수거기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권소담 기자)
    투명 페트병을 한 자루 가득 모아 온 안모(70·석사동) 씨가 지난 16일 춘천시 석사동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캔·페트병 자동 수거기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권소담 기자)

    본지 기자가 이들과 함께 있던 30분 동안에만 네프론에는 수거 용량의 3분의 1 수준인 500개 이상의 캔과 페트병이 쌓였다. 지난 4개월 동안 안씨가 자동 수거기를 통해 적립한 포인트는 10만원이 넘는다.

    안씨는 “모아온 플라스틱이 옷의 원료가 된다고 해 더 열심히 모으고 있다”며 “노인들이야 날씨가 춥고 돈이 얼마 안 돼도 캔을 주워 모아오지만, 젊은 사람들도 참여하게 하려면 가격을 더 잘 쳐줘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고물상에 갖다 주는 것보다는 시세를 조금 더 잘 쳐주니까 용돈 벌이 삼아 매일 수거기를 이용한다”며 “이틀에 한 번꼴로 기기 용량이 꽉 차 있어 허탕 칠 때가 많은데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고 더 자주 수거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AI 기술 활용한 순환 자원 수거기
    춘천에는 14대의 캔·페트병 자동 수거기가 설치돼있다.

    수퍼빈(대표 김정빈)이 개발한 순환자원 회수 로봇 ‘네프론’은 △춘천시청 △한림대 △석사동 미리네공원 △읍·면·동 행정복지센터(효자1동·동내면·약사명동·신사우동·신북읍·강남동·석사동·근화동·소양동·퇴계동·후평3동) 등에서 만날 수 있는 파란색의 기기다.

    춘천시는 지난 2019년 9월 최초로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순환자원 회수 로봇 5대를 도입했다. 이어 2020년 7월 4대, 2021년 7월 5대를 각각 신규 설치했다.

    수거기에 쌓인 재활용 자원은 시와 계약을 맺은 수퍼빈에서 수거한다.

    별도 배출된 투명 페트병은 경기도에 있는 재활용 처리 공장으로 운송돼 의류용 장섬유로 재생된다. 이는 민간에서 주민들이 직접 모은 품질 좋은 플라스틱을 활용해 자원순환 경제를 구축하자는 취지다.

     

    캔·페트병 자동 수거기 '네프론'에 모아진 자원을 수퍼빈 관계자가 수거하고 있다. (영상=MS투데이 DB)
    캔·페트병 자동 수거기 '네프론'에 모아진 자원을 수퍼빈 관계자가 수거하고 있다. (영상=MS투데이 DB)

    이용자가 투입한 자원은 포인트로 적립되며, 2000원 이상 포인트가 모이면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25일부터 단독주택에서의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이 의무화됨에 따라 이를 장려하기 위해 캔은 개당 10원, 페트병은 개당 15원의 가격을 적용해 포인트로 교환해준다.

    독일의 보증금 제도 ‘판트(Pfand)’와 유사하다. 독일의 경우 물건을 사들일 때 냈던 보증금을 빈 병 반환 기계를 통해 환급한다. 춘천시가 도입한 모델은 위탁 기업에서 포인트를 지급하며 재활용 자원 수거를 유도하고, 모인 자원을 수거해가는 시스템이다.

    ▶비용 대비 자원 순환경제 실효성 있나
    네프론의 기기값은 3000만원에 달한다.

    춘천시는 캔·페트병 자동 수거기 구매비로만 4억2000만원을 지출했다. 기기 한 대당 연 관리비는 460만원, 월평균 38만원 수준이다.

    MS투데이는 캔·페트병 자동 수거기가 자원순환 경제 모델 구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투입 비용 대비 경제적 효과를 산출했다.

    수퍼빈이 춘천시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 말까지 춘천에서 AI 순환자원 수거 로봇을 사용한 사람은 2만2147명에 달한다.

    해당 기간 자원 누적 회수량은 캔 49.4t, 투명 페트병 59.9t이다. 월평균 캔은 1.8t, 페트병은 2.2t이 각각 수거됐다.

    기기 도입 시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14대 기기의 수거량을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1대에서 캔 128.57㎏, 페트병 157.14㎏이 각각 수거됐다.

    한국환경공단의 재활용 자원 가격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강원지역 알루미늄 캔 시세는 ㎏당 1214원, 압축 페트병 시세의 경우 ㎏당 309원이다. 춘천 내 자동 수거기 한 대를 통해 월평균 캔 15만6083원, 페트병 4만8556원 등 합계 20만4639원어치의 재활용 자원이 모이게 된 셈이다.

    지난해 12월까지 네프론을 통해 누적된 적립 포인트는 6809만8831원이다. 적립 포인트는 △2019년 74만7595원 △2020년 1634만5425원 △2021년 5100만5811원 등으로 지속 증가해왔다. 춘천시민들은 수거기를 통해 월평균 240만원어치의 포인트를 적립했다.

    시는 수퍼빈 측이 사용자에게 환급하는 포인트 중 일부를 올해부터 예산에서 보조하기로 하는 등 적극적으로 캔·페트병 수거 시스템 알리기에 나섰다.

     

    선별 수거된 투명 페트병은 고품질 재생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선별 수거된 투명 페트병은 고품질 재생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설비 구축비용과 정기적인 관리비용 대비 실질적인 경제적 자원순환 효과는 아직 크지 않다. 다만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에 대한 의식을 환기하고 자원순환의 필요성을 고취한다는 점에서 호응이 높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활용도에 비해 기기 당 페트병 500개, 캔 700개 등 수거 용량의 한계가 있어 현장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회원 가입과 현금 환급 과정에서 주 사용층인 시니어들이 느끼는 ‘디지털 소외감’도 문제다.

    석사동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만난 이모(66) 씨는 “2~3만원씩 포인트가 쌓이면 현금으로 환전하는데, 과정이 복잡해 매번 동생에게 부탁해야 한다”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미 시장에서의 자원 가치가 높은 투명 페트병이나 알루미늄 캔보다는 선별이 쉽지 않고 재활용이 어려운 병뚜껑이나 배달 용기 등 PP, PE를 수거해야 한다는 시민사회 영역의 의견도 있다.

    지난해 ‘마을 형 자원순환 플랫폼 협동조합 모델발굴 사업’을 진행한 송현섭 환경운동가는 “자동 수거기의 목적은 일상에서 쉽게 재활용 자원을 모아 수거하고 제대로 된 분리배출의 필요성을 환기하는 데 있다”며 “독일에서 시장성이 떨어지는 얇은 페트병에 더 높은 보증금을 책정한 것처럼 소비자들에게 능동적인 재활용을 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돈 되는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인식 중요
    캔·페트병 자동 수거기 사업을 추진한 춘천시 자원순환과는 올해 기기 추가 설치보다는 현재 운영 중인 기기의 유지 보수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또 회수기 용량 초과와 오류 발생을 보완하기 위해 이달 중 대면 수거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황순옥 춘천시 자원순환과 재활용팀 담당은 “순환자원 회수 로봇은 주민 스스로 재활용 자원을 분리 배출하도록 유도하고 자원순환의 가치를 익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올해 단독주택에서의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이 의무화된 만큼 시민들이 수거기를 활용해 적극적인 분리배출에 나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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