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도연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방간에서 피어나는 이야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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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도연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방간에서 피어나는 이야기꽃

    • 입력 2020.09.18 00:01
    • 수정 2020.12.10 14:07
    • 기자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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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연 소설가
    김도연 소설가

     

                            쿵덕쿵덕 디딜방아 빙글빙글 맷돌방아 
                          돌고 도는 물레방아 혼자 찧는 절구방아야 
                               우리 집 서방 놈 낮잠만 잔다

     

    방아를 찧는 일은 주로 엄마들의 몫이었다. 농사일이 없거나 비가 오는 날에 짬짬이 틈을 내어 엄마는 방아를 찧었다. 방아로 찧을 곡식의 양이 많을 때는 아예 날을 정해서 동네 아줌마와 어울러서 그 일을 했다. 마을에 방간(방앗간)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발로 밟아서 찧는 디딜방아였다. 물레방아와 연자방아는 말로 들어서만 알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주 어린 시절 윗마을에 물레방아가 있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덩치가 큰 물레방아는 굉장히 신기했지만 축축하고 몹시 습했던 공간이었던 것 같다. 디딜방앗간과 물레방앗간은 누가 운영했을까. 개인이 운영했을까, 아니면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했을까. 개인이 운영했다면 사용료를 받았을 것 같은데…… 하여튼 기계방아가 나오기 전까지 마을의 엄마들은 곡식을 찧거나 빻을 땐 어김없이 머리에 함지를 이고 방간으로 향했다. 한 시절 나도 엄마를 따라 방간에 가서 방아다리 좀 밟았던 사람이었다. 

    우리 마을의 방아는 외다리방아가 아닌 두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양다리방아였다. 방간은 헛간처럼 허술하게 지어졌는데 벽에서 바람은 술술 들어왔지만 그래도 지붕에서 물이 샐 정도는 아니었다. 방아의 구조는 다른 농기구에 비해 간단했다. 몸통인 방아채는 통나무로 만들었고 길이는 3미터 가량 된다. 통나무의 밑동에 구멍을 뚫어 나무공이를 박았고 두 갈래로 갈라진 가지를 다리(발판)로 사용했다. Y자 형태의 생김새이고 공이가 있는 쪽이 훨씬 무겁다. 방아채(몸통) 밑에는 두 개의 볼씨(받침대)가 있는데 그 위치는 시소처럼 정 가운데가 아니라 다리 쪽에 가까워서 무게중심이 공이 쪽에 쏠려 있다. 그 까닭은 당연히 방아를 효과적으로 찍기 위해서다. 두 개의 볼씨와 방아채를 연결하는 건 쌀개(굴대)다. 방아채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쌀개를 넣어 양쪽 볼씨에 올려놓는다. 나무공이 아래에는 곡물을 넣는 돌확이 땅에 묻어놓은 독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방아다리 위 천장에는 밧줄 두 개가 매달려 있어 방앗공이를 들어 올릴 때 밧줄을 잡고 방아다리를 밟으면 힘이 훨씬 덜 든다. 마지막으로 괴밑대가 있다. 방아를 찧지 않을 때 방앗공이가 떠 있도록 몸통에 괴어놓는 나무가 괴밑대다. 방앗공이가 썩지 않게 하려는 의도인 듯하다.  

    엄마는 방간에 도착하면 먼저 청소부터 했다. 가장 중요한 곳은 우물처럼 움푹 파인 돌확이었다. 허술한 방간 구조 때문에 흙먼지, 낙엽이 쌓여 있거나 전에 방아를 찧은 사람이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고 가버리는 경우도 더러 생기기 때문이었다. 방앗공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추를 찧은 방앗공이로 수수나 조를 찧을 수는 없었다. 확과 공이의 청소가 끝나면 이제 남은 일은 쿵덕쿵덕 방아를 찧는 일이다. 

    내 역할은 천장의 밧줄을 잡은 채 방아다리에 오른쪽 발을 올려놓고 방아를 찧는 일이었다. 그러면 엄마는 방앗공이 옆에 앉아 돌확 속의 곡물을 반복해서 손으로 섞어주었다. 엄마의 역할은 얼핏 보기에 아주 쉬운 일 같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허공으로 올려갔던 방앗공이가 내려와 곡식을 찧고 다시 올라가는 그 짧은 사이에 돌확 속에 손을 넣어야 했다. 손을 조금이라도 늦게 빼면 육중한 방앗공이에 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치지 않으려면 재빠르게 넣어 곡식을 휘젓고 공이가 내려오기 전에 꺼내야 하는데 나는 겁이 나서 엄두도 못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방아다리를 밟는 일이 내게 돌아왔는데 처음엔 소꿉놀이를 하는 것처럼 재미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하고 힘들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힘이 빠져 방아를 끝까지 들어 올리지도 못하고 내려놓기 일쑤였다. 다행인 것은 지칠 때쯤이면 다른 집 아주머니들이 방아 찧을 곡물을 들고 방간으로 찾아왔다. 그제야 나는 방아다리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방간에 아주머니들이 모이면 쿵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금세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디딜방아가 마을 아주머니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아였다면 우리 집에는 나무절구가 있었다. 아버지가 아름드리 박달나무를 깎고 파서 만든 절구였는데 크기는 어른 키의 반만 했다. 보통 절구통이라고도 불렀다. 홍두깨와 비슷하게 생긴 절굿공이도 꽤 무거웠다. 언젠가 나는 손오공이 여의봉을 다루듯 그것을 들고 머리 위에서 돌리며 힘자랑을 하다가 떨어뜨려 장단지뚜꼉(장독소래기)을 깨트린 적도 있다. 당연히 엄마에게 된통 혼이 났는데 그나마 장독을 깨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엄마는 방아를 빻거나 찧을 곡식의 양이 많지 않을 때는 주로 절구를 이용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무르익어 가던 어느 일요일, 방에 엎드려 만화책을 보다가 된(뒤란)에서 절구질하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았다. 엄마가 물에 불린 찹쌀을 절구에다 찧고 있었다. 떡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도 절구질을 해보고 싶어 엄마에게 공이를 건네받아 허공에 번쩍 들었다가 힘차게 내려쳤다. 그런데 이런 젠장, 찹쌀에 달라붙은 절굿공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공이에 물을 묻혀서 쳐야만 엉겨 붙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된에 절구가 있다면 방에는 맷돌이 있었다. 우리 집의 맷돌은 대부분 찰강냉이를 갈거나 두부를 할 콩을 가는 데에 사용했다. 맷돌은 아래짝과 위짝의 크기가 같은 둥근 돌의 형태였다. 아래짝에는 한가운데에 수쇠가 박혀 있고 위짝에는 암쇠가 있어 아무라 돌려도 두 짝이 벗어나지 않고 잘 붙어 있었다. 위짝에는 나무로 만든 맷손을 박는 구멍과 곡식을 넣는 구멍이 있다. 맷돌질 역시 처음에는 재미있지만 두부콩처럼 양이 많아 긴 시간이 소요될 때면 지루하고 힘들다. 오른손으로 갈다가 힘이 들면 왼손으로 갈기도 하고, 두 사람이 맷손을 잡고 같이 돌리기도 한다. 그 사이 사이 구멍에 곡식을 넣으면서.

    강냉이밥을 할 마른 강냉이를 타갤 때는 넓은 보자기를 깔아놓고 맷돌질을 했지만 물이 섞여 있는 두부콩을 갈 때는 많이 달랐다. 함지 위에 맷다리를 걸치고 그 위에 맷돌을 올려놓는다. 강냉이를 타갤 때는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던 맷돌은 두부콩을 갈 때면 스르륵 스르륵 부드러운 소리를 냈다. 겨울 새벽 아버지와 엄마가 두부콩을 맷돌질하며 나누는 이야기를 윗방에서 잠결에 듣다가 오줌이 마려워 밖으로 나가면 어김없이 함박눈이 내렸다. 나는 반쯤 감긴 눈을 감은 채 마당에 쌓아놓은 내 키보다 높은 눈 더미에다 노란 오줌구멍을 만들며 생각했다. 오늘은 두부를 먹을 수 있겠구나.

    사실 맷돌과 관련된 기억은 내 기억 중에서 가장 멀리 기억이다. 어느 날 낮잠에서 깨어난 나는 젖이 먹고 싶어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윗방에서 누나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기어서 문지방을 넘어가 엄마에게 젖을 달라고 했는데 예상과 달리 뺨을 얻어맞았다. 전과 다른 엄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서 엉엉 울고만 있었는데 얼마 후 엄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다시 문지방을 넘어갔다. 온화한 표정의 엄마는 누나에게 맷돌질을 맡기고 젖을 꺼내 내 입에 물려주었다. 나는 훌쩍거리며 엄마의 젖을 빨았다. 그러나…… 엄마의 젖은 예전의 달콤했던 그 젖이 아니라 도저히 삼킬 수가 없는 쓰디쓴 젖이었다. 막내여서 늦게까지 젖을 떼지 못했던 내게 그날 엄마는 젖에다 쓰디쓴 약초를 발라놓았던 것이다. 젖을 떼게 하려고. 그날 엄마의 작전은 주효했고 나는 마침내 숟가락을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나 맷돌 한 짝을 들 수 있게 되었고 절굿공이로 떡을 찧었고 엄마와 함께 방간에 가서 무거운 방아다리를 밟았다. 한없이 고맙다는 말을 엄마에게 전하고 싶다. 다시 추석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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