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은가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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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은가락지

    • 입력 2020.09.16 00:01
    • 수정 2020.12.10 14:07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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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가락지 
               

                                    고 진 하

    이슬처럼 몸이 가벼워진 노모를 
    치매 요양원에 모셨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당신이 거쳐하시던 좁은 방구석에서
    당신이 끼시던 은가락지를 찾아냈다

    언제 누가 당신 손가락에
    은가락지를 끼워주었는지 기억에 없다
    두 짝의 고리 안팎이 닳아 반질반질하다
    슬픔도 닳고 기쁨도 닳아
    두 짝 한 고리 흰 실에 챙챙 묶여 있다

    맑은 정신 탁 놓으시기 전
    어서 죽어야 할 텐데, 하시며
    이승과 저승 한 고리로 흰 실에 묶어 끼시던
    당신 은가락지, 왜 쑥 빼 던지고 가셨을까

    오늘 이슬처럼 가벼운 몸으로 드신
    개나리꽃 만발한 정토요양원,
    두고 온 노모의 말 없는 음성을 듣는다
    이제 난 더 이상 묶을 것이 없다고,
    짝 없는, 한 고리의 정토에 들었다고

    *고진하:1987년『세계의 문학』등단 *시집:<얼음수도원><거룩한 낭비>외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산다는 것, 목숨이라는 것, 무엇일까? 이 세상 하나의 문을 닫고 또 하나의 다른 문으로 들어가신 어머니에 대한 시다. 생전(生前)에 나의 어머니가 뱉으셨던 말이 가슴을 치고 달려온다. “내가 왜 집이 없냐? 자식이 없냐?” “내가 왜 여기 와 있어야 하냐?”던 그 말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무너진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그 문으로 들어가 계실까?   

    이 시의 화자도 “이슬처럼 몸이 가벼워진 노모를/치매 요양원에 모셨”단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정작, 어머니는 ‘치매’라서 어떤 문으로 본인이 드셨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들은 텅 빈 심정으로 방안을 정리했나 보다. 그런데 어느 한 구석에서 “언제 누가 당신 손가락에/ 끼워주었는지” 모르는 “두 짝의 고리 안팎이 닳아 반질반질한” 반지를 발견하였는가 보다. 어머니의 “슬픔도 닳고 기쁨도 닳아/두 짝이 한 고리 흰 실에 챙챙 묶여 있다” 어머니 살아온 날들이 손마디처럼 묶여 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승과 저승 한 고리로 흰 실에 묶어 끼시던/당신 은가락지, 왜 쑥 빼 던지고 가셨을까” 화자는 어머니가 놓고 간 이유를 다 알면서도 역설적 표현으로 요양원에 두고 온 어머니를 마음 아파하는 것이다. 그 반지를 어디다 두었는지 손가락에 끼었는지 기억조차 하실 수도 없는 어머니를 “개나리꽃 만발한 정토요양원,”에 맡기고 온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반지를 통하여 “두고 온 노모의 말 없는 음성을 듣는” 것이다.

    가을 잎새처럼 싸-아-한 아픔이 밀려온다. 지금도 “정토요양원” 같은 그 문 안에는 자신이 일평생 끼었던 반지도 잊고, 자식들 이름도 잊고, 멀뚱멀뚱 자식이 찾아가도 ‘댁은 뉘시오? 어디서 오셨수?’ 하는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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