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로 알아보는 유럽 문화 ‘보졸레 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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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로 알아보는 유럽 문화 ‘보졸레 누보’
  • 객원기자
  • 승인 2020.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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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 술을 사기 위해 편의점을 갔다. 보통 술을 살 때는 맥주, 막걸리, 소주, 청하 중에서 골랐다. 그때만 하더라도 기자가 술 자체의 맛보다도 그저 취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술을 사마셨던 때였다. 사실 매우 안좋은 음주 문화의 전형에 젖어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다른 걸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때 1+1 주류 상품이 눈에 띄었다. 바로 ‘보졸레 누보’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기자는 와인을 제대로 즐겨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 마트에서 5000원 이하의 상품이 있을 때 사곤 했던 것이 전부였다. 그때도 특별한 와인 취향이 있어 산 것이 아니라 저렴한 값에 색다른 술을 마셔보자는 마음이 더 컸다. 그때 보졸레 누보는 2만5000원이었다. 기자에게는 주류로 소비하기에는 꽤나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그래도 와인 두 병에 그 정도 가격이면 나쁘지 않은 듯 싶어 골랐다. 1+1 행사도 언제나 계속되는 것이 아니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와인 맛을 보자는 마음이 컸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병을 따서 천천히 맛을 봤다. 과일 향이 짙으면서도 과일 특유의 달달한 맛은 덜하고, 그렇다고 떫은 맛이 강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보졸레 누보가 와인 입문자들과 와인 애호가들 중 어느 한쪽의 소비층을 만족시키기에는 다소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와인 특유의 떫은 맛을 내는 성분인 타닌이 보졸레 누보에서 비중이 적은데, 그렇다고 이탈리아 와인에서 종종 느껴지는 적당한 정도의 달달함도 없다.

실제로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보졸레 누보에 대한 평은 낮다. 그런데도 보졸레 누보가 어떻게 한때나마 세계적인 와인 브랜드이자 프랑스의 문화 코드 중 하나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사실 보졸레 누보는 와인 자체의 가치보다도 마케팅 요소로 인해 주목받은 케이스다. 보졸레 누보의 생산지는 보졸레 지방으로 명목상으로는 부르고뉴 지방이다. 하지만 '피노 누아' 품종의 포도로 와인을 제조하는 부르고뉴 지방과는 달리 보졸레 지방은 환경상 피노 누아 품종을 재배하지 못하고 '가메(Gamey)' 품종의 포도를 재배해왔다.

가메로 제조된 포도주는 오래 보관할 수 없으며 제조 후 빠르게 음용해야 한다. 오랜 기간의 숙성을 중시하는 다른 주요 와인들과 달리 가메 품종으로 제조된 보졸레 누보는 6개월이 지나면 맛이 변질되고 상할 정도여서 구매 후 가능한 한 빨리 마셔야 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하지만 보졸레 누보의 이러한 특징이 역으로 세계 와인 시장에서 희소성을 띄게 됐다. 빠른 제조와 유통이 요구되는 만큼 자연에서 갓 재배돼 제조된 신선한 포도주를 맛볼 수 있다는 역발상을 통해 해외 소비자들의 주목을 이끌어낸 것이다.

1985년 보졸레 누보의 수요가 높아지자 아예 프랑스 정부는 보졸레 누보의 판매 개시일을 매년 11월 셋째주 목요일로 정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각국의 유통업체들이 갓 판매 개시된 보졸레 누보 수입을 위해 프랑스로 몰려든다. 또 프랑스에서는 보졸레 누보 판매 개시일에 맞춰 지역 축제가 열린다. 보졸레 누보가 단순한 기호식품의 차원을 넘어 지역 문화 촉진의 매개체가 된 것이다.

/김용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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