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도연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등잔과 호야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소설가 김도연의 강원도 마음어 사전] 등잔과 호야

    • 입력 2020.09.04 00:01
    • 수정 2020.12.10 14:09
    • 기자명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도연 소설가
    김도연 소설가

    대관령 우리 집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내가 중학교 2학년(1980년)일 때였다.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니 엄마가 반가운 얼굴로 집에 전기가 들어왔다고 알려주었다. 이제부턴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당부와 함께. 내 방에 들어가니 과연 천장에 백열등이 매달려 있었고 스위치를 누르자 전구에 불이 환하게 들어와 마치 대낮처럼 밝았다. 대략 만개 정도의 등잔불을 밝혀놓은 것만 같았으니 엄마의 말대로 더 이상 흐린 등잔불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없게 되었다. 전봇대가 세워지고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밤이면 우리 집은 등잔 두 개와 호야(남포등)로 불을 밝혔다. 
     
    등잔은 깡통으로 만든 등잔이었는데 아버지가 직접 만든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다지 볼품은 없었는데 그래도 밤이 되면 방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이었다. 아버지가 나무로 만든 등잔대 위에 등잔을 올려놓고 저녁을 먹었으며 그 옆에 엎드려 누나와 나는 숙제를 했다. 손가락으로 그림자놀이를 하기도 했는데 벽에는 토끼와 개, 오리, 사슴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나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등잔을 올려놓은 등잔대 아래에는 등잔 때문에 생긴 둥그런 그림자가 있었는데 그 그림자 안에서는 공책이나 책을 펴놓고 숙제를 할 수가 없었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은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는데, 하여튼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의 오묘함은 한동안 나를 사로잡았을 정도였다. 일상의 거의 대부분에 적용할 수 있는 게 바로 그 속담이었다. 그러했기에 나는 심지에서 타오르는 등잔불과 등잔 밑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기곤 했다. 물론 아주 드물게 빠지는 명상이긴 했지만.

    등잔은 석유를 사용했다. 석유를 등잔에 채우고 창호지나 실, 솜으로 심지를 만들었다. 등잔 윗부분에 작은 굴뚝처럼 튀어나온 심지통의 심지에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지름(기름)이 귀하던 시절이라 숙제가 끝나면 바로 등잔불을 꺼야 했는데 이만저만 아쉬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안방에서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들리면 누나와 나는 몰래 등잔불을 책상 밑에 놓은 채 빌려온 만화책을 넘겼다. 가끔 장난을 치다 등잔을 엎어버린 적도 있었는데 쏟아진 기름도 기름이지만 불이 날까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당시 석유 값이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가끔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아랫마을 지름집(기름집)에 석유를 사러 가는 날이 있었다. 유리로 만든 소주 됫병의 목에 고리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기름을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올 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넘어져 병이 깨지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어린 시절 기름병을 깨뜨린 적은 없었다. 

    사실 어린 시절 나는 나만의 전용 등잔을 갖고 싶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몰랐는데 고학년이 되면서 저녁에 등잔을 사용할 일이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낮에 미리 숙제를 해놓으면 별 탈이 없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그건 누나들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공책과 교과서를 펼치기는 했지만 놀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니 숙제를 저녁으로 미루고 우선 노는 일에 몰두하다가 밤이 늦어서야 비로소 다급해지는 것이었다. 등잔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지만 낮에 친구들과 노는 것을 미루고 숙제부터 한다는 것은 나나 누나들에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결국 안방에서 바느질을 하는 엄마 옆에서, 윗방의 책상 앞과 방바닥에서 형제들은 바람에 일렁거리는 등잔불빛에 의지해 숙제를 하느라 바빴다. 그럴 때마다 전기가 들어오는 건넛마을의 신작로 주변에 사는 아이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옛날 산골마을의 집들은 거의 대부분 이곳저곳의 골(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마을도 골이 많았다. 골말, 반장골, 숯돌골, 너머골, 짓골, 새짓골…… 신작로 근처에는 주로 가게와 학교, 면사무소, 지서, 제재소, 술집들이 있었다. 신작로를 따라 기름을 먹인 통나무로 만든 전봇대가 띄엄띄엄 서 있었다. 신작로 주변에 사는 집들은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있었는데 골짜기에 있는 집들은 여러 대의 전봇대 값을 내야만 했다. 그렇기에 골짜기의 가난한 집들은 전깃불은 엄두도 못 내고 등잔불과 호야로 방과 벅(부엌)을 밝혔다. 전봇대 하나의 가격이 당시 얼마였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런데 전기를 쓰는 집의 부모들도 전깃불에 인색하긴 마찬가지였다. 텔레비전을 보러 가면 안방과 윗방을 가르는 벽이 천장과 닿는 곳에 구멍을 뚫고 형광등 하나로 두 방을 밝히고 있었다. 부모님이 있는 안방에서 불을 끄면 윗방도 어쩔 도리 없이 캄캄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또 궁금하다. 당시 전기료는 얼마였을까. 

    등잔불은 방에서만 사용했다. 등잔불의 단점은 바람에 약하다. 방문을 열었을 때 바람이 들어오면 불꽃이 흔들거리다가 이내 꺼져버렸다. 바람 앞의 등불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시로 사람이 들락거려야 하는 벅(부엌)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부엌에서는 바람에 취약한 등잔불 대신 호야(남포등)를 사용했다. 우리 집에선 남포등을 호야라고 불렀다. 호야는 남포등에 끼우는, 유리로 만든 둥그런 등피를 말한다. 심지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이 등피가 보호해준다. 바람을 막아준다는 얘기다. 그래서 바람이 많이 드나드는 부엌인데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또 호야는 심지를 올리고 내리는 장치가 있어 불빛의 강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부엌 벽에 걸어놓고 사용했는데 등잔불보다 훨씬 밝았다. 

    단점이 있다면 유리로 된 등피가 석유 타는 연기에 자주 검게 그을렸다. 엄마는 가끔 등피를 꺼내 물에 씻거나 걸레로 닦곤 했다. 잘 닦은 호야를 다시 남포등에 끼우고 불을 켰을 때의 그 따스한 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등잔불이 가지지 못한 따스함이 남포등 불빛에 있는 것이다. 호야의 또 다른 단점은 밀폐된 방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석유 타는 연기는 오래 맡으면 골(머리가)이 아프기 때문이다. 언젠가 등잔이 고장 나서 호야를 방에 들여놓고 숙제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딱딱 아파왔고 콧구멍 주변은 석유 연기로 까맣게 그을렸던 적도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호야가 있을 장소는 부엌이라는 것을. 

    건넛마을에 텔레비전을 보러갔다가 캄캄한 밤 좁은 길을 더듬어 집으로 돌아올 때 멀리서 보이는 희미한 불빛. 문창호지에서 일렁거리는 희미한 등잔불. 흙마루에 올라가 신발을 벗고 방문을 열었을 때 흔들리는 불꽃. 문을 닫으면 천천히 흔들림을 멈추는 등잔불. 그리고 등잔불 아래의 그늘. 나는 그 등잔불 아래에서 태어났고 등잔불 아래에서 저녁을 먹고 공부를 했다. 등잔불은 어린 시절 매일 밤이면 만나게 되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성냥을 그어 등잔의 심지에 불을 붙이면 조금씩 살아나는 불빛, 잠을 자려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등잔불을 껐을 때 찾아오는 어둠과 석유 냄새. 그 등잔과 부엌의 호야는 지금 어디로 사라졌을까.

    전기가 처음 들어온 그날 저녁 나는 내 방의 책상 앞 의자에 앉아 교과서와 공책을 펼쳤다. 시험 기간이었다. 방을 대낮같이 밝혀주는 백열등은 내 머리 바로 위에 매달려 있었다. 한 시간을 그렇게 앉아 공부를 했을까. 까까머리나 다름없던 내 머리가 뜨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백열등이 무슨 난로 같았다. 시골집이라 천장도 너무 낮았다. 머리가 너무 뜨거워져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전기가 이렇게 뜨겁단 말인가! 나는 흙마루에 걸터앉아 달아오른 머리를 한참이나 식힌 뒤에 다시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너무 밝은 백열등을 달았던 게 주요 원인이었다. 하여튼 등잔과 영영 헤어지던 그날 밤 백열등에게 호된 신고식을 당한 셈이었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