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의 딴생각] 무증상자라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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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창수의 딴생각] 무증상자라는 착각

    • 입력 2020.08.30 00:01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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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창수 소설가
    하창수 소설가

    “당국 만류에도...부산·인천·충남 교회 1,400곳 대면예배.” 광복절 광화문집회 이후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던 지난 월요일 포털사이트에 뜬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그 아래에는 질병관리본부 수장의 “아직 정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요지의 불길한 발언이 놓여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스마트폰에 긴급재난문자가 뜨고, 새로운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시청 홈페이지로 접속하는 동안 비어져 나온 낮고 긴 한숨은 홈페이지 상단의 ‘실시간 동향 바로가기’ 박스에 커서를 올려놓고 마우스 왼쪽버튼을 누를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확진자의 동선을 확인하고,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 나와 가족들이 지나온 행로를 되짚어보는 사이 몇 개의 영상이 떠오르고, 지워지고, 때로는 겹쳤다. 어떤 건 상상이고, 어떤 건 현실이다.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안 되는 것도 있다. 지워졌나 싶었던 영상들이 다시 살아나고, 맴돌고, 재생산되었다. 입 밖으로, 거친 숨처럼, 씨...소리가 새나왔다. 

    “나는 아무 증상이 없어. 그런데 나더러 자가격리를 하래. 이게 말이 돼?” 자신이 섬기는 신에게조차 “까불면 죽는다”고 말하던 목사의 오만에 찬 목소리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떠오르는 그 두툼한 얼굴이, 의식 한쪽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멀쩡하다고 호언하던 그는 집회 이튿날 확진 판결을 받았다. 확진 판결을 받고 나자 북한이 바이러스 테러를 한 거라고 주장했고, 확진은 되었지만 증상은 전혀 없다고 장담하던 그는 입원 하루만에 코로나19 특유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정부가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 교회를 핍박하고 있다는 강변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담임목사로 있는 교회의 누적 확진자가 800명을 넘어섰다는 기사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치미는 화 끝에 한숨이 길게, 다시, 빠져나왔다.
      
    세계적인 뇌신경학자 올리브 색스의 임상보고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뇌에 문제를 가진 스물네 가지 유형의 환자가 소개되어 있다. 제목으로 사용된, 자신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환자는 인식장애를 가진 사람이다. 이런 장애를 가진 환자 중에는 장갑을 장갑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눈에는 장갑이 장갑으로 ‘보이지’ 않는다. ‘보는’ 능력은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과 관련이 있으며,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는 환자의 눈에는 ‘실제’가 보이지 않는다. 아내가 모자로 보이고, 장갑이 장갑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 장갑을 건네주며 “이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한참이나 장갑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한다. “표면은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푹 파이고 끝이 다섯 개로 나누어져 있군요. 이건 매우 독특한 형태의 자루입니다.”

    뇌에 이상이 일어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질병이다. 이는 CT니 MRI 같은 의료장비로 검진이 가능하고, 적정한 약물을 투여하거나 수술을 통해 치유될 수도 있다. 그러나 뇌에 질병을 가진 환자가 아님에도 환자와 같은, 때로는 환자보다 더한 이상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인식 장애와 판단 착오는 그들이 가진 이기심에서 기인한다. 그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가 아니라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권력 행사’이며, 실내외를 막론하고 마스크를 꼭 쓰라는 권고는 ‘마스크를 끼지 않고 자유롭게 호흡할 권리를 박탈하려는 술수’이다. 그들이 박탈당한 것이 정말 종교의 자유라면 공연장과 학교를 폐쇄한 건 예술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고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은 것이다. 지금을 전체주의 독재국가로 착각하는 그들의 인식장애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자신을 고결한 자로 자부하는 그들의 판단착오는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하고 심각하다. 무증상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것일 뿐, 그 자체로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 건 그래서이다. 마스크는 내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쓰는, 이타적 ‘백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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