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의 세상읽기]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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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의 세상읽기]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 

    • 입력 2020.07.30 00:00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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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성 강원대학교 명예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김학성 강원대학교 명예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리차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2019, 사이언스북스)을 읽었다. 진화론의 전설로 불리는 책을 읽지 않고 진화를 평가하는 게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는 ‘눈먼 시계공’을 경쟁적으로 극찬한다. “최고의 진화생물학 입문서”, “종의 기원 이후의 가장 중요한 진화론 책”, “우연이 아니라 과학 법칙에 따라 생명체가 만들어졌음을 명쾌하게 설명한다”고 한다. 그러나 ‘눈먼 시계공’은, 아닐 것으로 짐작했지만 정말 아니었다. 구입하기엔 돈이 아깝고, 읽기엔 시간이 아깝다.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필자는 도킨스가 말한 부분을 (  ) 안에 페이지 숫자를 소개했다. 꼭 필요한 분들은 ‘빌려서’ 표시된 내용만 확인하면 된다.
     
    ‘눈먼 시계공’은 첫째, 현란한 표현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가며, 종간 진화를 인정하지 않는 듯하면서 결국은 인정한다. 아메바가 인간으로 바뀌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을지 모른다고 하면서, 그러나 아메바가 아주 조금 다른 종류의 아메바로, 다시 조금 더 다른 종류의 아메바로, 그리고 또... 변해가는 과정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고 한다(406). 또 귀는 피부가 진동을 느끼고, 진동을 느끼는 촉각이 만들어지고, 이후 귀로 진화한다고 한다(157). 또한 눈을 가진 동물은 눈을 전혀 갖지 않았던 선조에서부터 진화했다고 한다(380). 아무것도 없는 피부의 일부분이 눈으로 바뀌기까지는 1000 단계의 유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한다(504). 도킨스는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의 미세하고 점진적인 변화가 엄청날 정도의 수많은 단계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그에겐 시간만 주어진다면 안되는 것이 없게 된다.

    둘째, 이상한 논리를 도입해 논란이 되는 일의 의미를 묽게 만들고 있다. “우리 지구가 생물을 지니는 유일한 행성인가 아니면... 우주에는 최소한 10²⁰ 적당한 행성이 있다... 다른 행성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한다(238). 다른 행성에서 생명탄생이 가능할 수도 있으니, 결국 지구에도 생명탄생이 가능하다는 묘한 논리다. 지구의 생명탄생을 입증하지 못하면서 교묘하게 쟁점을 묽게 하고 있다.

    또 포유류와 조류의 공통조상인 ‘괴이한 중간형’들이 모두 죽었고 멸종했기 때문에 ‘공통조상’을 알 수 없다고 한다(426, 431). 만일 공통조상에 관한 완전한 화석기록이 있다면 여러 동물을 따로 이름 붙일 수 있는 개체 그룹으로 분류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니, 화석기록이 풍부하지 않은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426)고 한다. 별 웃기는 걱정을 다 하고 있다. 
     
    셋째, 원칙이 없고 자기 해석하고 싶은 대로 둘러대서 해석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실러캔스라는 물고기는 2억 5000만 년 훨씬 전에 번성했고 공룡과 마찬가지로 멸종된 것으로 생각되어 왔는데, 1938년에 발견되었다. 그런데 지금껏 살아 있는 이유에 대한 도킨스의 설명이 가관이다. 그는 자연선택이 그것을 변화하지 않는 방향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다고 하며, 심해에서 능숙하게 생활할 수 있었기에 굳이 진화할 필요가 없어, 중지했다고 한다(401).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화하지 않았다는 말인데, 원칙이 없다. 

    넷째. 교묘한 자기 정당화 논리에 갇혀있다. 모든 진화의 원천은 자연선택이라고 하면서, 생물의 탄생은 누적적 선택의 결과라고 한다. 한 세대의 선택된 최종 산물은 다음 세대 선택의 출발점이 되고, 반복된다. 자연선택은 마음의 눈도 없어서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하지 않으며,  전혀 앞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자연선택이 자연의 시계공 노릇을 한다면, 그 건 눈먼 시계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연은 실제로 ‘필요한 것은 수용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도태’시키고 있다. 전혀 앞을 보지 못한다는 눈먼 시계공이, 잘도 본다. 

    다섯째, 어이가 없는 주장도 넘친다. “대리석 조각상의 손이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것이 가능하며, 그 일은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265). 대리석에 있는 모든 분자들이 같은 순간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손이 움직일 것이라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또 시간만 충분하다면 원숭이가 아무렇게 타자를 두들겨서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칠 수도 있다고 한다(90). 
     
    여섯째, 이솝우화와 같은 것도 많다. 조류의 날개는 파충류의 비늘에서 진화했다고 하는데, 새의 깃털의 특성상 비늘에서 날개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가장 힘든 부분은 조류의 폐다. 폐와 같은 호흡기관은 조그마한 기능 불량도 수 분 내로 죽음을 초래할 정도로 동물의 생명에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폐가 어떻게 점진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접근방법을 과학이라고 하는데, 우화와 구별되지 않는다.  

    기독교의 창조론에 관해서도 한 마디하고 있는데, 아주 심플하다. “창세기 속의 이론을 분쇄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창세기 신화는 중동지방 유목민의 특정 부족들 사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가 개미의 배설물에서 창조되었다는 서아프리카 지방의 한 부족의 신앙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한다(509). 이게 전부다. 창조주의 천지창조를 ‘개미의 배설물에서의 세계 창조’로 말하는 것은 ‘언어의 타락’이다.    

    ‘눈먼 시계공’은 혼탁하고 걸러지지 않은 글이어서, 정수시설이 미흡한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혼탁한 글들이 넘치는 시대여서 정수(淨水)가 필요한데, 정수기준은 상식뿐이다. 상식에 반하는 오염된 논리는 멀리해야 한다. 남들을 속이려면 자신부터 속여야 하는데,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도킨스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을 잘 이겨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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