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네마] 시네마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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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 시네마] 시네마 천국

    • 입력 2020.07.27 09:38
    • 수정 2020.07.27 16:11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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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영화 시네마천국은 중년의 독자들에겐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의외로 청춘들에겐 일종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듯싶다. 필자가 접할 수 있는 범위의 학생들은 이 영화를 다 알고 있었다. 영화음악 때문이지 아닐까 한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배경음악 때문이리라. 

    지난 7월 6일, 거장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을 접했다. 때를 맞춰 극장에서는 그가 참여한 영화들을 재개봉하고 있었다. 상술이라고 폄훼할 이유가 없다. 추모의 한 방식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극장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시네마천국을 극장에서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를 언제 처음 보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도 가물한데, 음악은 또렷했고, 몇 장면은 새삼 다른 기억들을 매개하고 있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비디오를 쌓아 놓고 보던 때였다. 

    가끔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다가도 영화에 빠져 다른 세상에 살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학술적으로 영화를 분석하고 있는 영화학도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저 시간을 죽이고 불안으로 잠식된 영혼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처음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아마도 멋진 미래의 나를 꿈꿔보는 것, 그리고 나의 엘레나는 언제 나타날지 점쳐보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순전히 영화를 보면서 청년시절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땐 그랬지. 풋풋한 사랑을 꿈꿔보기도 하고 영화 속 대사처럼 99번 기다리다 100번째 뒤도 안돌아보고 돌아서는 기분이 어떨까 상상해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약간 철이 들기 시작한 때라 그랬을 것 같은데, 각종 검열이 일상으로 횡행하던 군부독재를 관통하던 시절, 극중 신부가 가위질을 하던 모습이 불편했었다. 그리고 마지막 라스트신, 나이든 주인공 토토가 죽은 알프레도가 선물로 남긴 키스신만 모아 다시 편집한 필름을 보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 비슷한 무엇을 느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한편,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시네마천국 극중 영화관에서 상영되었던 고전영화들 중에서 몇 편을 일삼아 찾아본 기억이 났다.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흔들리는 대지’ 그리고 찰리 채플린의 명작들, 할리우드고전주의영화를 대표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존 포드감독 연출, 존 웨인 주연의 역마차, 커크 더글라스 주연의 율리시스 등 영화 속 영화들에 대해 찾아보고 참고자료를 읽어보던 시절이 떠올랐다. 공부에 치여 유배된 시절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즐거운 추억으로 새삼스레 다가왔다. 

    영화 속 다양한 인물들에 이입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영화가 추억에 대한 영화이며 성장소설의 플롯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토라는 당돌한 꼬마와 극장에서 영사기를 트는 일을 하는 알프레도의 우정이야기는 보편적이면서도 낯설게만 다가왔다. 악동은 어디에든 있기 마련이지만 그런 악동과 우정을 나누는 어른은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국가가 하나의 단일한 가부장제사회이기를 바라던 이들이 정권을 잡고 있던 7,80년대 대한민국에서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낸 탓이겠으나, 한편으론 그런 우정이 부럽고 멋진 모습으로 다가왔다. 한마디로 로망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주위에 그런 우정을 찾긴 쉽지 않았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면 알프레도와 같은 좋은 어른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한동안 정신분석학모델에 빠져 영화를 분석하고 세미나를 열었던 때가 있었다. 어쩌면 현재진행형이지 싶기도 하다. 여전히 정신분석의 후기구조주의모델은 영화를 분석하기 좋은 틀이며 학생들에게 소개해도 전달이 잘되는 파트이기에 수업에서 자주 활용한다. 

    영화에서 어린 토토는 전쟁 중 귀환하지 않은 아버지를 두고 있다. 어머니는 여전히 남편을 기다리지만 전사했음이 자명하다. 애비 없는 자식이 개구쟁이일 때 홀로된 엄마는 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회는 아버지 역할을 대신해주어야 한다. 토토에게 있어 사회적 아버지는 마을성당의 고지식한 신부님이고 영사실의 알프레도다. 

    권위에 웃음과 꾀로 저항(?)하는 토토는 루치노 비스콘틴의 영화에 등장하는 저항하는 노동자의 일면이다. 알프레도가 영사실의 영사기를 창문 밖으로 돌려 광장의 마을주민들에게 영화를 틀었을 땐, 그는 ‘아버지란 이름’을 뗀 눈먼 아버지가 된다. 어린 토토가 과열로 불이 난 영사실에서 알프레도를 구해 나오고 이제 그들은 우정을 넘어 대타자의 자리를 내어주고 받는 관계가 형성된다. 

    화제로 성당에서 운영하던 극장은 문을 닫게 되고, 로또에 당첨된 나폴리사람이 새로 극장을 짓고 알프레도를 대신해 토토를 고용한다. 전통적인 질서가 무너지고 전후복구체제 속에 급속히 자본화되는 이탈리아의 모습을 압축하고 있다. 이제 제법 청년의 모습을 갖춘 토토는 자연스런 호르몬의 추동으로 자신의 짝을 갈망하게 된다. 

    토토는 기차역에서 우연히 알레나를 보게 된다. 순간 알레나는 그의 모든 것이 된다. 그녀의 관심을 끌고,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키스하는 일이 세상의 전부가 된다. 두 사람사이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그들은 사랑을 나누지만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운명의 방해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들은 헤어진다. 군대를 제대하고 낙심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온 토토에게 알프레도는 떠날 것을 주문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다시 일하려는 토토가 끝내 그 자리에서 늙고 마침내 자기처럼 눈먼 아버지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영화, 율리시스(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이름을 ‘노 바디(nobody)’라고 알려주고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고 도망치는 장면은 토토의 앞길이 정주의 삶이 아니라 유목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은유이다. 알프레도는 토토의 인생에 등장하는 특별한 조연으로, 우정을 나눈 친구이자, 사회적 아버지이며 그 아버지의 이름을 일찌감치 포기한 눈먼 아버지이다. 그리고 그는 청년이 된 토토에게 어느 누구보다도 진솔한 멘토였다. 

    7월 들어, 나이와 상관없이 ‘동시대인’이라고 믿고 싶었던 이들이 세상을 등졌다. 영화음악분야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던 1928년생, 엔니오 모리꼬네가 전설이 되었다. 1956년생, 우리시대의 사회적 멘토라고 믿었던 이가 어처구니없게도 불명예스러운 일로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영화 시네마천국 비디오를 열심히 틀고 또 틀던 청춘시절, 비디오를 켜지 않은 공허의 시간을 채워준 공일오비의 음악! 그 음악의 중심을 잡아주던 원년 베이스 주자 조형곤씨가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분명 나의 멘토였다. 

    영화 속 중년의 토토가 알프레도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그의 유년의 공간은 먼지와 함께 부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주변으로 하나둘씩 보이는 이들은 노년이 되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주함 없이 부유하듯, 성공한 영화감독으로 살아온 중년의 토토, 극중 살바토레 감독은 알프레도가 선물로 주고 간 편집된 키스신들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떤 의미의 눈물일까? 

    무엇을 연민하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저기서 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도 일어설 줄 모르고 있었다. 몇은 코를 훌쩍이고 몇은 눈이 아픈 듯 비비고 있었다. 시간을 보려고 스마트폰을 꺼내는데 그 위로 떨어지는 눈물방울 하나, 보채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극장을 나서며,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에 애써 감정을 숨겨보지만 마음 한구석 허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중년의 나이가 되기까지 어떤 이들의 멘토가 되기를 꿈꿔본 적은 있지만, 되어본 적은 없다. 이제는 관용구처럼 사용하는 안도현 시인의 시어처럼 누군가에게 따듯했던 연탄이어본 적이 있던가. 살며 사랑하며 수줍게 살아갈 나날들 속에, 잊혀 지지 않을 것 같던 이들 역시 추억너머로 사라지고 그 추억을 추억하던 이들도 사라질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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