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거리보다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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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거리보다 먼

    • 입력 2020.06.30 06:50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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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보다 먼
     
                                                            이 용 주
     
     
    빛과 소리가 차단된 거리에서 
    부풀었다 스러지는 햇살무늬, 지루한 하루를 닫고 뱉어낸 말은 
    닫히고 닫히는 마네킹이 된다
    접었다 펼치면 끝과 끝이 멀어지고 서로 다른 얼굴을 맞댄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캄캄한 침묵하기,
      
    너를 모르듯 나를 박제하고 
    바람 속을 지나간 날개 부화한 새를 기다린다 
    침묵으로 쏟아지는 햇빛처럼 새들이 사라진 길 위에서
    말이 사라진 거리에서  
    내 그림자마저 지워진 어둠 속을 걷는다
     
    잃어버린 기억이 불빛에 닿는 순간 시간은 어둠에 감겨 돌아간다
    어둠은 언덕을 넘어 길과 길에게 닿는다
     
    반 페이지만 넘기는 거리,
    거리는 점점이 어둠을 데리고 흘러가고
    너와 나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이용주: 2014년『시와 세계』등단 *시집「가면을 벗다」외. *현,서울시청서부수도사업소근무.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벌써 5개월째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좀처럼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늘 아침 모 일간지에는 ‘독감처럼 코로나 동거시대’란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의료계에서조차 ‘종식은 불가능한 목표’라니 참으로 암담하다. 신은 위대하다고 했다. 인간의 오만에 대하여, 자연의 순리를 거스름에 대하여, 그 순리 앞에 겸손하지 못함에 대하여, 벌을 내리는 것은 아닌 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위의 시, 「거리보다 먼」은 이렇게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오늘 우리들 삶의 거리, 삶의 단절, 삶의 모습과 현실적 상황을 모던한 감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빛과 소리가 차단된 거리에서”/“서로 다른 얼굴을 맞댄 나에게/돌아오는 것은 캄캄한 침묵하기”이다. “너를 모르듯 나를 박제하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자칫 우리들 사이사이의 “거리두기보다 더 먼” ‘마음의 거리’가 존재양식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 저어된다.

    “말이 사라지는 거리에서” ‘침묵하기’가 권장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참 어두운 세상이다. 이 어둠 속에서 하나의 희망은 마음의 거리는 좁혀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우리는 지금 서로 “반 페이지만 넘기는 거리”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서로 멀리하면서 살고 있다. “거리는 점점이 어둠을 데리고 흘러가고/너와 나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장 리카르두의 말처럼 “문학은 배고픈 아이들에게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아이들이 이 세상에 존재해 있다는 사실을 추문(醜文)으로라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 이 시대, 한 시인의 아픈 심상이 ‘온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염원’으로  거리 좁히기가 하루 빨리 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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