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길 위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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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길 위의 식사

    • 입력 2020.06.16 06:50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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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의 식사

                                   이 재 무

    사발에 담긴 둥글고 따뜻한 밥 아니라
     
    비닐 속에 든 각진 찬밥이다
     
    둘러앉아 도란도란 함께 먹는 밥 아니라
     
    가축이 사료를 삼키듯
     
    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 밥이다
     
    고수레도 아닌데 길 위에 밥알 흘리기도 하며 먹는 밥이다
     
    반찬 없이 국물 없이 목메게 먹는 밥이다
     
    울컥, 몸 안쪽에서 비릿한 설움 치밀어 올라오는 밥이다
     
    피가 도는 밥이 아니라 으스스, 몸에 한기가 드는 밥이다 

    *이재무:1983년『잚의 문학』등단. *시집「슬픔은 어깨로 운다」외. *계간「천년의 시작」대표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이 시를 보자 울컥 가슴이 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길 위에서 밥을 먹었던가? 새벽 일찍 일터에 나가느라고 허둥지둥 가족들의 밥을 차려놓고, 정작 본인은 입에 대지도 못하고 들뛰었던 날들! 김밥도 없었던 시절엔 길거리에서 파는 부풀린 밀가루 빵조각을 사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시간들! 가슴 한 켠이 아리게 젖어든다.

    어디 그뿐인가!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솔들을 책임져야만 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삶, 얼마나 많은 속울음 삼키며 길 위에서 막걸리 한 잔, 혹은 찬밥 한 덩이로 끼니를 때운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으리라. 자식은 자식들 대로 아침 식사를 거른 채 생활전선으로 뛰어나가는 모습을 등 뒤에서 바라보는 우리 어머니들은 또 얼마나 가슴 짠한 눈물을 삼겼던가!  

    위 시의 작자도 아마 많은 날들을 ‘길 위에서 끼니’를 때웠나 보다. “그것도 비닐 속에 든 각진 찬밥”이란다. 그의 어머니가 이 시를 보았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사발에 담긴” 어머니의 정성으로 차려주는 “따뜻한 밥이 아니라” “가축이 사료를 삼키듯/선 채로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 밥이”란다. 먹으면서도 “울컥, 몸 안쪽에서 비릿한 설움 치밀어 올라오는 밥”이란다.

    한국인의 정서를 이토록 찡한 비유로 공감대를 형상화 시켜 낸 솜씨가 이 시의 극치를 이룬다. 이렇게 길 위에서 먹어야 하는 사실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이건 식사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 허기의 역설적 표현이다. 화자의 진술대로 그런 밥은 “피가 도는 따뜻한 밥이 아니라 으스스, 몸에 한기가 드는 밥이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이렇게 ‘설음의 밥, 사료 같은 밥, 한기가 드는 목메는 밥’을 길 위에서 혹은 일터에서 끼니로 때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서로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열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더 따뜻하고 밝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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