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도반道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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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도반道伴

    • 입력 2020.06.02 06:50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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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반道伴   

                             이상국
        
    비는 오다 그치고
    가을이 나그네처럼 지나간다
    나도 한때는 시냇물처럼 바빴으나
    누구에게서 문자도 한 통 없는 날
    조금은 세상에게 삐친 나를 데리고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 준다
    양파 접시 옆에 묵은 춘장을 앉혀 놓고
    저나 나나 이만한 게 어디냐고
    무덤덤하게 마주 앉는다
    사랑하는 것들은 멀리 있고
    밥보다는 짜장면이 끌리는 날
    그래도 나에게는 내가 있어
    동네 중국집 데리고 가
    짜장면을 시켜 준다

    *이상국:1976년 『심상』등단. *현,한국작가회이사장 *시집「뿔을 적시며」외.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문득 나와 함께 같은 길(道)을 가는 사람, 또는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본다.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외로운가 보다. 모든 생명체는 외롭다. 개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의 시처럼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오나”보다.

    이 시의 화자(話者)도 외롭다. 현장에 있었을 때 주위에 그 많던 사람들은, 또 “시냇물처럼 바빴던 시간”들은 다 어디로 흘러갔을까? 키에르케고르가 제시한, 인간은 영원한 단독자인가? 창밖 나뭇가지에 새 한 마리 날아와 앉는다. 딱 한 마리다. 그도 외로워 나뭇잎 속에 얼굴을 묻고 우는가 보다.

    화자는 “누구에게서 문자도 한 통 없는 날” 세상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조금 삐친 나를 데리고/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 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본질적인 존재Sein가 현실적 존재Dasein인 자신에게 ‘도반(道伴)’이 되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쓸쓸하다. “양파 접시 옆에 놓인 ‘묵은 춘장’ 만큼이나 쓸쓸하다. “저나 나나 이만한 게 어디냐고”서로 위로해 보지만 외로움의 허기는 창밖 저 먼 허공에서 서성거린다.

    “사랑하는 것들도 멀리 있다” 자식들일 게다. 지금 이 순간만은 “그래도 나에게는 내가 있다” 현실적 자아에 대한 지극한 대우다. 본질적 자아 찾기의 순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고, 혹은 잊고 살아가는 날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외로움 속에서의 단독자는 얼마나 고고한, 그리고 이성적인 자아 찾기의 순례인가! 훌륭한 ‘도반’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한다.  잘 다스려 훌륭한 ‘도반’이 되도록 나의 내면을 향하여 성찰하고 묵도하는 자세로 가야할 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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