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네마] 바그다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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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 시네마] 바그다드 카페

    • 입력 2020.05.25 11:01
    • 수정 2020.05.25 11:50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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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퍼시 애들론 감독 연출의 음악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힐링 영화다.” 

    이와 같은 문장은 필자의 주장이나 저명한 영화 비평가의 한줄 평이 아니다. 세미나 수업에 참석한 학생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인상을 쓰는 리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이다. 영화를 보면서 힐링 되는 감정을 느꼈다고 쓰기도 하고,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인생영화 한편이 새롭게 리스트에 올랐다고들 한다. 그만큼 영화는 묘한 매력이 있다. 딱히 가슴 뭉클한 코드 없이도, 빙그레 웃다 보면 무언가 충만한 감정이 채워지는 작품이다. 

    그런데 사실, 영화는 철저히 기획된 작품이다. 영화가 제작된 시점은 바흐 탄생 300주년(1985년)이 되는 때다. 이와 같은 타이밍에 독일과 미국의 영화기획자들은 '바그다드 카페'를 공동으로 제작했다. 영화가 개봉된 1987년만 하더라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과 헬무트 콜의 중도우파가 집권한 서독의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레이거노믹스가 시작된 시기,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만한 실력을 갖춘 두 나라의 랑데부는 결국 1989년 11월 10일 베를린 장벽을 무너트릴 만한 힘을 발휘했다. 이런 분위기는 세계사의 줄기를 크게 바꿔 1991년 12월 8일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로 이어지게 된다.

    이제 이념논쟁의 틀에서 벗어난 세계질서는 급격하게 자본에게 그 권력을 내어주고 세계화라는 기치 아래 지구촌이 돼갔다. 그 지구촌의 맹주는 미국이었으며 서방의 국가들은 기꺼이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했다. 또 다른 한편으론 ‘달러의 힘’에서 벗어나고자 유럽연합이 발족되고 단일화폐로 통일된 ‘유로 존’을 모색한 시작점이기도 하다. 

     

    바그다드 카페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스틸컷)
    바그다드 카페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스틸컷)

    다시 영화로 돌아와 영화는 마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가 꿈꾸는 조화로운 질서가 무엇인지 제시라도 하듯, 소망성취의 모티브가 영화 곳곳에 디테일로 기호화돼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삼색기와 미국 성조기의 별과 줄무늬 패턴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카페의 미장센에 톤 앤 매너(tone & manner)로 배치돼 있다. 나아가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독일식 에스프레소 커피와 미국식 아메리카노 커피에 익숙해져 간다. 

    그러나 이런 기획 의도와는 별도로, 영화는 풍부한 상상력과 주인공의 인간적인 매력으로 인해 한편의 매직으로 다가온다. 미 서부의 모하비 사막, '바그다드 카페'라는 생소한 이름의 휴게소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휴식과 안정을 찾지 못하던 인물들 사이로, 혜성처럼 나타난 주인공 야스민은 마술처럼 모든 이에게 변화를 경험하게 한다. 이 영화를 처음 보는 청춘들이 느끼는 힐링의 감정은 바로 이 ‘변화’에 있다. 그런데 영화에선 그 변화란 것이 급격한 무엇이 아니라 서로가 닮아가고 모방하는 과정속에서 생성되는 에너지로 묘사돼 있다. 

     

    바그다드 카페. (사진=네이버 영화 스틸컷)
    바그다드 카페. (사진=네이버 영화 스틸컷)

    전술한 바와 같이, '바그다드 카페'는 음악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 극의 후반부에 집중된 뮤지컬 분위기도 그렇고, 극의 전반에 걸쳐 배치된 주제곡 Calling You의 매력적인 보컬만으로도 충분히 그럴만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의 골계가 되는 음악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를 위한 전주곡 1번 C major이다. 이 곡은 극중 야스민과 보조를 맞춘 여성 버디 브렌다의 아들인 ‘살’이 쉼 없이 쳐대는 피아노 연주로 드라마의 후반부까지 이어진다. 

    특히 이 곡은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라는 후대의 평가를 이끈 곡이기도 하다. 기존의 순정율 악기인 현악기로 구현하기 어려운 조바꿈을 현이 고정된 건반악기에 평균율을 적용해 다양한 분위기의 곡을 만들 수 있게 고안한 이가 바흐다. 애초에 오르간 수리공으로 출발한 그는 건반악기의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한 옥타브 내의, 도에서 높은 도에 이르는 12개의 음(반음 포함)을 완벽한 화음을 이루는 피타고라스의 정수비를 따르지 않고 평균을 내어 배치한다. 

    이로써 음이 이탈되는 미세한 차이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조바꿈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분위기의 작곡을 가능하게 한다. 서양음악의 형식이 마련된 역사적인 발명이 바로 평균율이다. 이런 평균율을 적용하게 만든 음악이 바로 장조 12개, 단조 12개를 포함한 클라비어를 위한 24개의 전주곡이다. 

    바흐는 후에 여기에서 더 나아가 특정 가락이나 주제를 반복하거나 즉흥적인 특정 악상을 패턴에 맞춰 끊임없이 변주가 가능한 형식을 고안하는데, 그게 바로 인벤션 그리고 토카타와 푸가다. 이와 같은 형식은 우리를 음악이라는 마법의 주술에 빠지게 하는 힘을 발휘하게 된다. 모방을 통한 패턴의 반복,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들어가는 변주는 끝나지 않는 생성을 가능하게 한다. ‘생성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들뢰즈는 바로 이런 점에 주목해,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형식을 완성한(고전주의) 작품들보다 바흐의 음악이 더 위대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낯선 땅, 모하비사막 인디언의 후손이 보안관으로 활동하고 '바그다드 카페'라는 생경한 이름으로 주유소와 모텔을 운영하는 흑인 브렌다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 주변에 가족처럼 공생하는 이들, 이들 앞에 불쑥 나타난 독일 여성 야스민은 어느 곳 하나 섞일 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불협화음처럼 삐걱대는 카페의 분위기를 조금씩 조화롭게 변모시킨다. 바로 이런 점이 영화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치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바그다드 카페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스틸컷)
    바그다드 카페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스틸컷)

    풍부한 기호와 클래식과 재즈 그리고 뮤지컬로 가득 찬 영화는 건조한 사막을 적신다. 마른 바람이 부는 사막엔 갈증으로 숨차하는 이들이 찾아와 휴식을 취하고 노래와 춤을 즐긴다. 어쩌면 평균율의 마법은 완전5도로 이뤄진 완벽한 화음보다, 조금씩 음이 이탈된 12개의 균질한 반음들이 만들어낸, 불협화음 속에서 조화를 추구하는 생성의 과정이기에 가능했지 않았을까 싶다. 이로써 조를 바꿔가며 우리 내면의 다양한 감정은 음악으로 표현된다. 마치 영화 속 주요인물인 ‘살’의 연주가 시시때때로 다른 감정을 노래한 것처럼 말이다.

    위와 같은 여유가 만들어낸 ‘틈과 주름’이 학생들로 하여금 힐링을 느끼게 했는지도 모른다. 또 연장 선상에서 영화는 결론을 내기보다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이 또한 같은 맥락에서 완벽한 조화가 아닌, 약간은 혹은 때때로 심하게 삐거덕거리기도 하면서 삶의 조화를 모색해 가는 청춘들에게 치유로 다가오는 이유로 보인다. 인생의 결론이 죽음이라는 동일한 경계선에 귀결될지라도 우리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바그다드 카페'는 힐링 영화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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