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의 세상읽기] 가정의 달, 기다림을 생각하며
  • 스크롤 이동 상태바

    [돌담의 세상읽기] 가정의 달, 기다림을 생각하며

    • 입력 2020.05.20 06:50
    • 기자명 칼럼니스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학성 강원대학교 명예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김학성 강원대학교 명예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우리는 많은 것을 기다린다. 신호등이 바뀔 때를 기다리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군대 간 연인을 기다리고, 합격자발표나 건강검진을 기다린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림이란 어쩔 수 없는 시간을 견디는 힘인데, 기다림에는 합격자발표와 같이 목적과 대상이 뚜렷한 기다림도 있지만 자녀양육과 같이 그렇지 않은 막연한 기다림이 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다림으로 좁히기로 한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다림을 다루기에 앞서 일반적 기다림을 보면 단순한 기다림도 쉽지 않다. 필자도 그렇지만 현대인은 기다림을 좀처럼 좋아하지 않는다. 인터넷 속도가 느리면 짜증 내며, 이야기 전개가 느리면 채널을 돌린다. 광고시간에도 그렇다. 문명의 편의성으로 우리의 삶이 고속화되다 보니, 우리의 신체는 기다림에 취약한 존재가 돼버렸다. 횡단보도를 통과하는 행인의 걸음이 늦거나 신호가 길어지거나, 앞차가 머뭇거리면 한마디 한다. 한 층 성숙해졌다고 보이는 나이인데도 그렇다. 25여 년 전 유럽에서 우리 가족에게 먼저 길을 건너라고 제스처를 보내는 여유 있는 노신사의 모습이 아직도 필자에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매우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자녀에 대한 기다림(이하, 자녀 기다림)은 첫째, 한계를 정하지 않는 기다림이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고,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기다림은, 자녀 기다림이 아니다. 자녀 기다림은 마음속에 ‘빈 공간’을 마련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빈 공간은 자녀가 언제나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열린 공간이다. 또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특별한 목적에 의존하지도 않는 공간이다. 어떤 전조가 없어도, 아니 느끼지 못해도 열어둬야 하는 공간이다.
     
    둘째, 기다림 없는 기다림이다. 자녀 기다림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에 대한 기다림 없는 순수한 기다림이다. 또 조용하며 목적 없는 기다림이다. 그래서 화려하지도 멋져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자녀 기다림은 마치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과 유사하다. 치매 환자는 어떤 계획을 갖고 돌보는 것이 아니다. 그때그때 망가진 부분을 응급처치할 뿐이고, 정성스러운 보살핌만 있을 뿐이다. 환자를 재촉하거나 윽박지르지도 않는다. 마음을 비워야 가능하듯, 자녀 기다림은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셋째, 인생의 일부로 당당히 여기는 기다림이다. 기다리는 과정에서의 기다림의 고통은 삶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지는 경우 정신과 신체가 멈춰버리는 고통이 있을 수 있다. 자녀가 없으면 없어 걱정, 있으면 있어 걱정이다. 자녀 기다림에 동반되는 아픔과 고통은 크지만, 부모 인생에서 불필요한 시간도 쓸데없는 시간도 아니다. 인생의 일부로 여겨야 하고 힘들어도 당당히 받아들여야 한다. 가끔, 아니 적지 않게 자녀 기다림은 삶의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넷째, 기한조차 없는 어처구니없는 기다림이다. 자녀 기다림은 기다린다는 사실도 잊고 기다리며, 언젠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기다린다. 기다림의 배후에 기대나 조건도 없다. 또 기한조차 없다.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기다림이다. 그나마 응답의 보증도 없다. 그래도 기다린다. 마음을 졸이고 기다리고, 지쳐도 기다린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한편 자녀 기다림이 반드시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유익을 주기도 한다. 자녀 기다림은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준다.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바라볼 때, 기다림 속에서 내가 변화되고 성숙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또 내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내 삶의 온기를 유지시켜 준다. 기다림을 멈추는 순간 삶은 끝나게 된다. 

    또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돼가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진정한 기다림이란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껴안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계산도 예측도 보상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이 순간 전체를 껴안는 것이다. 그렇다고 솔직히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는 기다림은 있을 수 없다. 기다림에는 기대, 바람, 희망, 기도가 내포돼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문제는 실행 내지는 실행능력이다. 자녀 기다림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기 때문에 인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기 수양으로 실현할 수도 있겠으나, 그 능력이 부족한 필자는 ‘자녀 기다림’, 즉 오래 참음의 문제를 예수를 주인으로 인정하는 삶을 통해 실현하고자 한다. 쉽고 빠르고 확실하며, 덤까지 있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